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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유메마츠] Extra 松_히로인[S]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유메마츠] 10. 비타민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유메마츠

# NL마츠

# 오소마츠

# 쥬시마츠

 

 

히로인 10

 

 

 

 

메이의 상처를 봐준 후, 서점에 다녀오겠다는 쵸로마츠와 약속이 있다는 토도마츠가 함께 외출했다. 오소마츠는 화장실에 갔고, 카라마츠는 옷을 갈아입고도 소파에 드러누워 잠을 자고 있다. 새벽에 잠을 자지 않은 탓이구나, 생각하다가도 본인은 원래 프로젝트를 맡을 때면 잠을 자지 않는 게 태반인지라 괜찮았지만 술까지 마신 오소마츠는 어째서 피곤해하지 않는지 메이는 신기했다.

 

자리에서 슥 일어서는 이치마츠를 향해 짐볼 위에서 널브러져있던 쥬시마츠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이치마츠 형―아! 어디 가?"

 

"고양이. …아."

 

 

턱에 걸쳐있던 마스크를 위로 끌어올리던 이치마츠는 쥬시마츠의 옆에 앉아 그의 파카만큼이나 노란 짐볼을 쿡쿡 찌르며 놀고 있던 메이가 자신을 바라보자 동작을 멈추고 도륵 눈을 굴렸다.

 

 

"…그, 메이는 나중에 보러 가는 게…"

 

"에?"

 

"어제 그 녀석들, 밥도 다시 챙겨줘야 하고, 그러려면 다시 거기 가야하는데… 혹시 모르니까."

 

 

뭔가를 변명하듯 중얼거리는 이치마츠의 입꼬리에 붙은 작은 밴드를 보며 메이는 생각했다. 아니, 가겠다고 한 적 없는데.

 

좁은 골목길은 고양이들의 안식처와도 같았고 그곳에서 그 난리를 피웠으니 고양이들이 그곳에 계속 머물고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었다. 기껏 마련해줬는데 엎어진 물과 밥그릇, 메이 자신은 갑작스레 발생한 험악한 상황에 그것들에 대해서는 생각도 하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치마츠는 그런 것들을 벌써 생각하고 마음을 쓰고 있었구나.

 

 

"역시 내 말이 맞네."

 

"뭐가."

 

"이치마츠는 섬세하고 상냥한 사람이라고."

 

"윽?!"

 

"이치마츠 형―아가 불타오른다!"

 

"아니야…! 으, 너 말이야…. 훅 들어오지 좀 말아줄래…."

 

"응? 내가 어딜 들어갔는데?"

 

 

오, 부끄러워한다. 메이는 같이 가겠다 한 적 없다고 심술궂게 말하는 대신, 그 상냥한 마음씨가 따뜻해서 이치마츠의 빨개진 얼굴을 모른 척 고개를 갸웃했다.

 

으으윽, 알 수 없는 신음을 흘리던 이치마츠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다녀올게, 말한 후 문을 닫고 나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소리를 들으며 메이는 쥬시마츠와 얼굴을 마주보고 푸흐흐 웃었다.

 

 

"이치마츠~ 친구들 보러 가는 거? 랄까, 에, 얼굴이 빨간데?"

 

"…오소마츠 형."

 

 

화장실에서 나오던 오소마츠가 현관으로 향하는 이치마츠에게 아는 체를 했다. 돌아본 이치마츠의 얼굴이 제 색깔같아서, 오소마츠는 킥 웃으며 이치마츠의 얼굴을 가리켰다. 가만히 오소마츠를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제 얼굴을 쓱 더듬었다.

 

 

"힘내."

 

"에? 뭐? 에? 이치맛쨩?"

 

 

영문모를 한 마디를 남긴 채 마스크를 코까지 올려 덮은 이치마츠는 뒤에서 제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그대로 집을 빠져나갔다. 메이가 왜 인기가 많은지 알겠어. 고생 좀 하겠네, 오소마츠 형.

 

 

"오소마츠 형―아! 즐거운 응가 쌌슴까~?"

 

"응―, 쥬시마츠!"

 

"즐거운 응가라니, 뭐야 그거 무서운데."

 

"이치마츠는 왜 저래? 얼굴이 새빨간데?"

 

"에―. 원투펀치로 기브! 했어!"

 

"아?"

 

"메이의 판정승―!"

 

"이예~"

 

"예이~"

 

"에에, 전혀 이해 안 되는데요―?"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는 오소마츠는 서로를 바라보며 해실해실 웃는 쥬시마츠와 메이를 불만족스럽다는 듯 바라보다 픽 웃어버렸다. 카라마츠가 누워 자고있는 소파의 아래에 엉덩이를 붙인 순간, 메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아, 나 전화 좀."

 

"그냥 여기서 받아도 되는데?"

 

"그럼 조용히 하고 있어."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이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에게서 고개를 돌린 메이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한번 톡 건드리고 제 귀에 가져다댔다.

 

 

"여보세요? 제인?"

 

 

통화의 내용은 들을 수 없었지만, 스피커 너머에서는 간간이 작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화를 계속 힐끔 바라보던 오소마츠는 여성이라고 판단되는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흥미없다는 듯 만화책을 집어들었다. 짐볼 위에 배를 깔고 누워 몸을 흔들던 쥬시마츠는 오소마츠의 시선과 메이의 상태를 유심히 지켜보았다.

 

 

"네, 프로젝트 끝나고 몸이 좀 안 좋아졌어요. 나아질 동안은 세이브 파일로 대체해야할 거라고 생각해요. 네, 그렇죠. 아, 그건 괜찮아요. 세이브 파일 상으로는 클라이맥스까지 완성되어 있거든요. 네. 하하, 고마워요, 그럴게요."

 

 

네, 네, 네. 몇 번의 같은 대답 후 전화를 끊은 메이는 어깨를 들썩이며 큰 숨을 쉬었다. 누구야? 누구야아―? 쥬시마츠가 짐볼에서 주르륵 흘러내려와 메이에게 불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아, 내 원고 담당자야."

 

"여자야?"

 

"여자야. 정식으로 말도 했으니 세이브 파일을 넘겨도 되겠다. 이만 돌아갈게."

 

"다시 오는 거지?"

 

"에?"

 

"상처, 아직 사라지지 않았잖아?"

 

 

오소마츠가 메이의 손을 가리켰다. 얼굴에도 뒷목에도. 여러 곳의 상처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고 데미지가 큰 건 아무렴 손임이 틀림없었다. 제 손을 내려다보던 메이는 쥐락펴락 손을 움직여보았다. 욱씬거리는 통증은 확실히 덜했지만, 붕대로 감아놓아서이기도 하고 자유롭게 움직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메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눈치챈 오소마츠는 씨익 웃었다.

 

 

"별로 괜찮잖? 너희 오빠에게 둘러댈 만한 핑계가 생각나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있어도 되니까?"

 

"에, 음. 하지만 솔직히 불편하잖아? 그럴게, 너희 어제도 나 때문에 1층에서 잤고,"

 

"그럼 우리가 메이랑 같이 여기서 자길 원해? 그래도 괜찮아? 아무도 거절할 사람 없는데?"

 

"…뭔가 기분나빠."

 

"어째서!"

 

"완전 민폐잖아, 나."

 

"괜찮아! 장남의 이름으로 허락한다! 이의있나, 쥬시마츠!"

 

"없슴다!"

 

"좋아! 결정!"

 

"그거 내 의사는?"

 

 

오소마츠가 어깨를 으쓱거리자, 쥬시마츠가 따라 어깨를 으쓱거렸다. 똑같은 두 얼굴이 똑같이 행동을 하니, 분신에 다른 옷을 입혀둔 것만 같은 그림이라 메이는 푸후흐 웃음을 터뜨렸다.

 

 

"고마워. 일단 그건 보류하고, 어쨌든 원고는 보내야 하니까 잠시 집에 다녀올게."

 

"에? 집에?"

 

"여기서 작업하려면 잠깐이어도 프로그램이 깔려있는 내 노트북이 필요해. 오빠도 지금은 출근해서 집에 없으니까, 다녀올게."

 

"아―잇! 네, 저요! 메이 씨! 의견 있습니다!"

 

"네―, 쥬시마츠 씨에게 발언권 드립니다~"

 

"그걸 왜 네가 주냐고. 뭔데? 쥬시마츠?"

 

"제가 메이를 따라 메이의 집에 다녀오고 싶습니다!"

 

"에?"

 

"에?"

 

 

번쩍 손을 들고 눈을 빛내며 말하는 쥬시마츠를 보고 오소마츠와 메이가 동시에 되물었다.

 

 

"메이, 지금 아프잖아? 다쳤잖아? 내가 메이의 짐을 들어줄게!"

 

"아니아니, 그렇게 짐이 많지도 않고,"

 

"다쳤잖아?"

 

"한 손을 다친 거지, 움직이지 못할 정도도 아니고,"

 

"아프잖아?"

 

"그러니까 그 정도는,"

 

"다쳤잖아―? 아프잖아―?"

 

"…쥬, 쥬시마츠 씨? 무서운데요…?"

 

 

점점 다가오는 얼굴이 시야를 가득 채워가자, 뒤로 물러나던 메이는 공포심마저 느꼈다. 삐질 땀을 흘리며 협박 비슷한 제안을 몰아붙이는 제 동생을 바라보며 오소마츠는 쩝 입맛을 다셨다. 그러고보니 메이가 유일하게 개인적으로 시간을 보내지 못한 사람이 쥬시마츠였다. 쥬시마츠는 모든 형제들과 친해진 메이와 자신도 친해지고 싶다며 타이밍만 기다리고 있었지.

 

 

"꽤나 열렬하네, 쥬시마츠~ 나쁘지 않지 않아? 메이?"

 

"사, 상관은 없지만… 굳이 그렇게까지 해주지 않아도, 우와아, 알았어! 같이 다녀와줘, 쥬시마츠!"

 

"와아―이! 해냈다! 이겼다아―."

 

"승리의 개념인 거야?"

 

 

시계방향으로 돌아가는 얼굴이 기괴해서 메이는 결국 두 손을 들어보이며 항복의 표시를 내비쳤다. 메이는 다쳤으니까 내가 데려다줄게―! 쥬시마츠가 메이를 번쩍 안아들었다. 으악, 쥬시마츠! 다리를 다친 게 아니니까! 걸을 수 있으니까?! 메이가 쥬시마츠의 옷깃을 부여잡으며 버둥거리자, 쥬시마츠는, 그렇구나! 걸을 수 있구나~! 하고 메이를 다시 내려놓았다.

 

폭풍같은 상황에 숨을 고르는 메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보던 쥬시마츠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돌렸다.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오소마츠의 눈빛에 담긴 의미를 몰라 고개를 기우뚱거리던 쥬시마츠는 핫, 하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오소마츠 형―아, 미안! 쥬시마츠가 오소마츠에게 두 손을 모아보이자 오소마츠는, 에? 하고 영문을 몰라했다.

 

 

"다녀오겠머스루머스루~! 허스루허스루~!"

 

"머스루? 그게 뭐야? 근육? 다녀올게."

 

"조심히 갔다와―."

 

 

쥬시마츠와 함께 방을 나서는 메이의 뒷모습을 눈으로 좇다가 오소마츠는 텅 빈 문가를 한참 바라보며 가슴께의 파카 위를 손가락으로 긁적거렸다.

 

방금 명치 쪽이 가려웠는데, 뭐지?

 

 

.

 

 

.

 

 

.

 

 

.

 

 

.

 

 

"실례하겠머스루머스루~! 허스루허스루~!"

 

"네에―, 좀 평범히 좀 들어오세요―."

 

 

메이를 따라 들어선 쥬시마츠는 쉬지도 않고 고개를 홱홱 돌려댔다. 구조도, 인테리어도 다른 집이라지만 뭐 특별한 것도 없는데 뭐가 그리 신기할까. 메이는 혹시 쥬시마츠가 저러다 부엉이처럼 180도 고개가 돌아가지는 않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쥬시마츠, 여기서 기다릴래? 올라가서 이것저것 챙겨올게."

 

"메이의 방 구경해도 돼―?"

 

"에? 뭐 볼 것도 없는데?"

 

"카라마츠 형―아가 메이의 방 창문에서는 내가 야구하는 강변이 잘 보인다고 했어! 전망이 좋대! 나도 보고싶어!"

 

"아―. 응, 좋아. 올라가서 오른쪽 방이야."

 

"출발―! 도오―옹!"

 

 

늘어난 다리로 순식간에 윗층에 올라간 쥬시마츠를 보고 혀를 내두르며 메이가 타박타박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채 다 올라가기도 전에 쥬시마츠가 발칵 문을 크게 열어재끼자 메이는, 야! 하고 큰소리를 쳤다. 우당탕 뛰어들어가는 모양새가 카이 또래의 짓궂은 남자아이같아서 메이는 웃으면서도 고개를 저었다.

 

 

"메이의 방! 앗, 야구―!"

 

"잠깐! 뛰어내리면 안돼―!"

 

 

창문 너머로 펼쳐진 강변을 보자마자 창문에 와락 매달리는 몸을 끌어당기며 메이는 따라가겠단 쥬시마츠가 무언의 협박을 하며 얼굴을 들이미는 바람에 겁에 질렸던 본인과 별개로, 그를 말리지 않은 오소마츠를 원망했다.

 

한바탕 요란했던 소란이 끝나고 쥬시마츠를 침대에 앉혀둔 메이는 얌전히 있으라며 엄포를 놓았다.

 

 

"얌전히 있어. 안 그러면 화낼 거야."

 

"얌전히 있으면 뭐해줄 거야~?"

 

"뭘 해줘야 해?"

 

"야구! 나랑 야구하자, 메이! 그럼 얌전히 있을게!"

 

"야구…. 후우, 응, 알았어. 대신 조용히 있어야 하니까?"

 

"아이아이―사!"

 

 

대답은 잘해요, 메이는 무심코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손을 거두었다. 노트북을 파우치에 집어넣고, 안경집과 필통, 작은 노트 한 권까지 주섬주섬 가방에 집어넣는 중이었다.

 

 

"이건 뭐야아―?"

 

"악, 깜짝이야! 쥬시마츠!"

 

"타핫―! 메이, 스프링같아! 팡 튀어올라!"

 

"너 진짜―,"

 

 

기척도 없이 다가온 쥬시마츠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튀어오른 메이는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았다. 으르릉 노려보는 메이에게, 미안해! 웃어보인 쥬시마츠가 책장에 올려진 하얀 약통을 집어들었다. 작은 움직임에도 잘그락, 안에서는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아, 그거."

 

"먹을 거야? 맛있는 거?"

 

"누가 봐도 약같지 않니?"

 

"약?! 메이, 아파?! 환자?! 죽어?! 시한부―?!"

 

"안 죽어―!"

 

 

그건 분명 저번 프로젝트가 시작하던 날, 카이가 보육원에 등원하는 길에 케이토와 함께 준비한 것이라며 선물로 준 비타민이었다. 책장에 올려놓고 까맣게 잊고 있던 것을 쥬시마츠가 발견해내 모처럼 사랑스러운 오빠와 동생의 사랑에 대해 회상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메이는 옆에서 콰광 돌을 맞은 듯한 얼굴로 심각해져있는 쥬시마츠에게 버럭 소리쳤다.

 

 

"그건 오빠랑 카이가 선물로 준 비타민이야. 깜박하고 있었네."

 

"비타민―?"

 

"아, 쥬시마츠 하나 먹을래? 꺼낸 김에."

 

"와―이, 정말임까! 감삼다―! 먹고 싶어―!"

 

"아."

 

"아!"

 

 

입으로 쏙 들어오는 작은 알갱이가 혀에 닿자 빠르게 녹았다. 으음, 달아! 이건 무슨 맛이지? 오렌지? 레몬? 상큼하고 달아―! 맛있어! 흐느적거리는 팔을 위로 흔들어대며 호들갑스럽게 맛평가를 하는 쥬시마츠에게, 그래그래, 맛있어, 응응―, 영혼없이 형식적으로 호응을 해주며 메이는 비타민까지 챙겨넣은 가방의 지퍼를 찌익 당겼다.

 

가방끈을 어깨에 걸치고 품에 노트북이 든 파우치를 안고서 메이는 가자며 쥬시마츠의 등을 떠밀었다. 방을 나서기 전, 쥬시마츠는 메이가 품에 안고 있던 노트북 파우치를 쏙 가져갔다.

 

 

"뭐야? 이리 줘."

 

"메이의 짐을 들어주겠다고 했잖아? 들어줄게!"

 

"아니, 나도 말했잖아? 짐이 많이 없다니까? 겨우 이게 다라고?"

 

"가방도 줘!"

 

"사람 말 좀 들을래?"

 

"메이, 지금 아프잖아? 다쳤잖아?"

 

"아니, 그러니까,"

 

"다쳤잖아?"

 

"그,"

 

"아프잖아?"

 

"……."

 

"다쳤잖아―? 아프잖아―?"

 

"…부, 부탁드립니다아…."

 

"응! 걱정마―! 욧샤―!"

 

 

또다시 고고고 다가오며 부담스러운 위압감을 내뿜는 커다란 입을 마주하고 메이는 삐질삐질 고개를 끄덕였다. 쥬시마츠는 뒤로 쑤욱 물러나 헤헤 웃으면서 메이의 어깨에 걸쳐있던 가방끈을 휙 끌어내렸다. 쑥 팔이 빠지자 그것을 위로 붕붕 흔들어 돌리면서 쥬시마츠는 우다다다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잠, 쥬시마츠! 그렇게 휘두르면 가방끈이 끊어져! 야! 하지마, 멈춰 바보야!"

 

 

복도를 내달리는 쥬시마츠를 황급히 따라 가며 메이가 소리치자, 앞서 달려가던 몸이 우뚝 멈추었다. 그 바람에 깜짝 놀란 메이는 급히 몸에 제동을 걸었지만, 제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앞으로 휘청거린 몸은 그대로 쥬시마츠의 등으로 푹 처박혔다. 아직 부어있는 이마가 찌릿거렸다.

 

 

"…아우, 아파라―. 너어― 말이야, 쥬시마츠…?"

 

"앗! 메이, 아파? 미안함다!"

 

"멈추란다고 그렇게 갑자기 멈춰버리면 말이야, 말을 잘 듣는다고 해야할지, 이 종잡을 수 없는 녀석."

 

"아핫―!"

 

"칭찬 아니니까 웃지마."

 

 

웃지마, 메이의 그 한마디에 쥬시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늘 헤벌레 벌어진 입을 꾹 다무는 것만으로도 워낙 밝은 이미지가 쉽게 반전되어버렸다. 그리고 메이는 그런 타입의 사람을 한 명 더 알고 있었다.

 

 

누나? 나 이제 웃어도 돼?

 

 

이럴 줄 알았어. 또 네가 생각날 줄 알았어. 자신을 바라보는 쥬시마츠는 역시 그 사람을 생각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어 메이를 혼란스럽게 만든다. 감정에 솔직하고 객관적인 메이가 딱 하나, 헷갈리는 감정은 이렇게 간혹 생각나는 사람에 대한 것이 그리움인지, 또는 원망인지.

 

그 질문에 나는 뭐라고 답했더라.

 

 

"메이? 이제 웃어도 돼―?"

 

 

그 얼굴에 띄워진 것과 같은 표정으로 바라봐오는 그 사람에게, 난…

 

 

"메이―?"

 

"아? 응? 에? 뭐? 뭐가?"

 

"무슨 생각해~?"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위에 솟은 바보털이 뿅뿅거리며 흔들렸다.

 

 

"이제 웃어도 돼―?"

 

 

또다시 물어오는 쥬시마츠의 입꼬리가 씰룩거리고 있었다. 으응, 사실 별로 진심도 아니었는데, 메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 얼굴에는 또다시 커다란 웃음이 파앗 피었다.

 

그 얼굴을 보면 손을 움직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아마,

 

톡 머리에 닿는 손에 쥬시마츠는 자연스레 몸을 조금 수그렸다. 그는 쓰다듬어주는 것도, 쓰다듬어지는 것도 좋아했다. 메이의 손이 머리 위를 슥슥 지나다녔다.

 

이렇게 쓰다듬었던 것 같은데. 흘러사라지는 알 수 없는 말을 잡아챈 쥬시마츠는, 정작 메이가 짓고 있는 웃음은 따뜻하지 않아서 소매로 입을 가렸다.

 

어째서 저런 얼굴을 하는 거지?

 

 

.

 

 

.

 

 

.

 

 

.

 

 

.

 

 

"다녀왔머스루머스루! 헛스루헛스루!"

 

"다녀왔어. 어라? 토도마츠랑 쵸로마츠, 돌아왔네?"

 

"응, 방금 막. 어디 다녀와?"

 

"응, 집에."

 

"집? 아, 너희 오빠는 출근했겠구나."

 

"응. 아까 담당자에게서 연락도 왔고, 오늘치 원고는 보내줘야 하니까."

 

"쥬시마츠 형은 어디에… 에, 그 짐들은?"

 

"메이 거야! 내가 들어줬어!"

 

"에."

 

"에."

 

"에? 표정들이 왜 그래? 앗, 야 쥬시마츠! 가방 그렇게 휘두르지 말라니까!"

 

 

도―옹! 와당탕 뛰어들어간 쥬시마츠는 왓세왓세, 를 연발하며 계단을 올랐다.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를 뒤로 하고 후다닥 쥬시마츠의 뒤를 따라가는 메이를 보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가 중얼거렸다.

 

 

"…오소마츠 형, 집에 있을 텐데."

 

"귀찮아지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터벅터벅 계단을 올랐다. 점점 가까워지는 방 안에서는 쥬시마츠의 큰 웃음소리와 메이의 조금 곤란해하는 듯한 목소리, 오소마츠의 장난스러운 웃음소리가 들렸다.

 

 

"다녀왔어."

 

"다녀왔어."

 

"오, 어서와."

 

 

의외로 오소마츠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맞이해와서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들의 시선을 느끼고 쥬시마츠가 밝게 웃었다.

 

 

"괜찮아! 오소마츠 형―아가 허락해줬어!"

 

"아? 뭘?"

 

 

아냐아냐, 쥬시마츠가 고개를 젓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도 어쩐지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오소마츠는 눈만 깜박거렸다.

 

메이는 벽에 기대 앉아 쥬시마츠에게서 건네받은 파우치 속 노트북을 꺼냈다. 토도마츠가 노트북에 관심을 가지고 메이에게 다가갔다. 이거 얼마 전에 새로 나온 기종 아니야? 토도마츠가 물었다. 글쎄? 회사에서 제공해준 거라. 메이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제가 쓴 소설이 전자책 베스트셀러로 선정된 것에 대한 상품이라고 설명하는 메이를 보며 토도마츠는 초롱초롱 눈을 빛냈다.

 

 

"아앗! 메이! 야구! 야구하기로 했잖아?"

 

"에? 야구? 지금?"

 

"나 메이의 집에서 얌전히 있었는데―!"

 

"하지만 내가 침대에 얌전히 앉아있으라고 했더니 내 옆에 불쑥 나타나서 날 놀래켰잖아. 가방을 휘두르면서 달리기도 했고? 그건 전혀 얌전하지 않았는데."

 

"우으으… 하지만…"

 

"그리고 지금은 일해야 하는걸."

 

"그럼 메이의 일이 끝나면 괜찮슴까? 나 기다리는 거 잘해―!"

 

"저기, 쥬시마츠? 유감스럽지만 저 손으로는 야구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해."

 

"그, 그런―!"

 

 

쵸로마츠가 메이의 손을 가리키며 말하자 쥬시마츠는 큰 충격을 받은 것처럼 휘청거리다 녹아내리듯 바닥으로 길게 널브러졌다. 이런, 쥬시마츠 형, 정말 기대하고 있었나보네. 토도마츠가 쥬시마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으며 위로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쩔 수 없다는 듯 웃는 메이를 보고 오소마츠는, 이미 손을 다쳐서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 그런 거구만, 하고 메이에게 새삼 감탄했다.

 

 

"그럼 이렇게 하자, 쥬시마츠. 손이 나아지면 야구하러 가자!"

 

"…진짜?"

 

"응! 투수도, 포수도, 타자도, 전부 할게!"

 

"몸은 한 갠데 그걸 어떻게 다 한다는 거야?"

 

"애초에 둘인데 어떻게…"

 

"그거야~ 쥬시마츠가 분열하면 해결되는 거잖?"

 

"…그렇구나!"

 

"그렇구나, 라니, 그렇게 납득해버리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게 쥬시마츠 장르라며."

 

"메이 적응력 빠르구나…."

 

"와아―! 정말 좋아! 메이가 얼른 나았으면 좋겠다―! 아픈 거 다 날아가라, 해줄게!"

 

 

아하하, 고마워―, 메이는 제 손을 꼬옥 붙잡아주는 쥬시마츠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린 아이같아서 귀엽네!

 

 

"쥬시마츠 군―, 형아도 손 꼭― 해주세요오―."

 

"에? 오소마츠 형―아도 손이 아픈 검까?"

 

"응―, 갑자기 아파졌어."

 

"그럼 오소마츠 형―아도 아픈 거 다 날아가라!"

 

"오오, 효과가 있는 것 같아!"

 

 

메이는 그저 사이가 좋네―, 라고만 생각했다. 더 나아가면, 그래, 어쩌면 2n살의 성인임에도 한결같이 밝고 해맑기만 한 형제에 대한 대우라고만 생각했다.

 

오소마츠가 쥬시마츠와 메이가 있는 곳으로 다가가 메이의 손 대신 제 손을 쥬시마츠의 손 위에 올려두며 자연스럽게 대화에 섞여들어가는 것을 보고 쵸로마츠와 토도마츠는 역시, 하며 시선을 맞췄다.

 

 

"근데 메이, 야구할 줄 알아?"

 

"몰라."

 

"…진심이야?"

 

"쥬시마츠가 알려주겠지~ 나 몸 쓰는 거 잘해."

 

"헤에, 맨날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만 두드릴 거잖아?"

 

"그만큼 체력을 몸에 축적해놓는 거다 멍청아. 시비거는 거야?"

 

 

메이가 다친 손을 치켜올리자 오소마츠는 낄낄 웃었다.

 

 

.

 

 

.

 

 

.

 

 

.

 

 

.

 

 

카라마츠의 손거울로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있는 메이를 발견하고 이치마츠가 인상을 찌푸렸다.

 

 

"…뭘 하고 있는 거야."

 

"오우, 이치마츠."

 

"가까이 붙어앉지마, 쿠소병이 옮아."

 

"으엑."

 

"야 왜 그래. 저기, 나 말이야. 이거 좀 가라앉지 않았어? 잘 안 보이지 않아?"

 

 

메이의 옆에 찰싹 붙어앉아있는 카라마츠를 발로 꾹꾹 밀어내는 이치마츠를 말리고서 메이가 오물거리는 제 입꼬리를 가리켰다. 이치마츠와 카라마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긋 메이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약은 발랐지만, 약을 바른다고 상처가 하루만에 아물리가.

 

 

"뭘 먹고 있는 건가?"

 

"비타민."

 

"뭐해?"

 

 

드륵 문이 열리고 오소마츠가 들어왔다. 뭐 잘못한 것도 없는데 그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쑥 머리를 뒤로 빼고 말까지 더듬었다.

 

 

"까, 깜짝이야. 오소마츠 형."

 

"오, 오소마츠, 화장실 간다고 하지 않았나."

 

"쥬시마츠가 배탈이 났는지 변기를 점령했어. 뭐 먹은 거라고는 아까 메이가 준 비타민밖에 없다던데."

 

"앗. 상한 건가? 나 방금도 하나 먹었는데."

 

"메이, 그런 게 있으면 장남 님도 달란 말이야아―!"

 

"메이가 동생인 줄 아는 건가. 오소마츠 형 미쳤어?"

 

"상했다잖아 바보야."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던 토도마츠와 옆에서 책장을 팔랑 넘기던 쵸로마츠가 한심하단 눈으로 넌지시 태클을 걸었다.

 

 

"랄까 그래서 셋이 뭐하고 있었어?"

 

"메, 메이가 입술의 상처를 봐달라고 해서…"

 

"입술?"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의 등을 무릎으로 콕 찍었다. 말이 끝나기도 전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위해 이치마츠와 카라마츠는 조금 뒤로 물러섰다.

 

 

"상처가 왜?"

 

"이거 많이 나아지지 않았어? 잘 안 보이지 않아?"

 

"흠. 왜? 집에 돌아가게?"

 

"오빠가 모르기만 하면 되니까."

 

"다른 상처들은 어쩌고? 멍도 아직 가라앉지 않았잖아?"

 

 

쵸로마츠가 지적했다. 음, 생각하던 메이가 답했다.

 

 

"등은 옷을 입으면 가려지고, 이마도 앞머리로 가리면 돼. 소매가 긴 옷을 입으면 손목도 가려질 거고."

 

"손은? 손이 제일 심하잖아."

 

"아직 멀쩡하진 않지만 뭐, 핑계를 찾으면 되지. 예를 들어… 뜨거운 물을 쏟았다던가?"

 

"그냥 며칠 더 있지 그래."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민폐야. 어느 정도 감춰질 수 있을 때 돌아가는게 좋겠어."

 

"아아―, 이게 다 카라마츠 때문이야. 카라마츠가 메이가 자는 동안 기웃거리니까 메이가 부담스러워하는 거잖아?"

 

"무, 무뭇, 무슨 소리인가! 요바이[각주:1]라도 한 것처럼 말하지 마라 오소마츠!"

 

"누가 누구랑 사귄다는 거야!"

 

"아무도 그런 말 안 했으니까?!"

 

"쿠소마츠! 너 이새끼 드디어 미쳐버렸냐! 죽어!"

 

"아아니다―! 나는 단지 메이가 악몽을 꾸길래… 으악, 체인톱 집어넣어라! 이치마아츠!"

 

"그만해! 그건 어디서 나온 거야―!"

 

 

시시때때로 요란스러워지는 형제들의 방이 잠잠해진 것은 토도마츠가 목욕탕에 가자며 자리에서 일어선 후였다. 결국 집에 돌아가기로 한 메이가 나가는 김에 같이 가자는 쵸로마츠의 말에 주섬주섬 짐을 챙기는 동안 쥬시마츠와 오소마츠를 제외한 형제들은 먼저 밖에 나가 남은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화장실에 있는 쥬시마츠 몫의 목욕용품들까지 챙긴 오소마츠는 결국 화장실을 들렀다 가야겠다며 마지막까지 남았다. 메이가 짐을 다 챙기기를 기다리다 메이의 노트북 파우치를 가로채 옆구리에 낀 오소마츠는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

 

 

"이리줘."

 

"들어줄게."

 

"괜찮으니까."

 

"싫은데에―."

 

"쥬시마츠랑 둘이 똑같네 아주."

 

"그럼 메이 쨩은 이거 들어줘, 공평하게."

 

"에?"

 

 

제 짐을 두고 오소마츠와 옥신각신하던 메이는 오소마츠가 건네는 목욕바구니를 받아들었다. 어이가 없어 가볍게 숨을 뱉으며 실없이 웃었다. 그리고 급습하는 머릿속 위화감에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

 

 

"메이? 왜 그래?"

 

"에? 아아니, 아무것도?"

 

 

시야가 울렁거렸다. 통증이라기보다는 찌릿찌릿한 약한 전류가 이마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낯선 느낌이었지만 그간의 두통에 비하면 견디지 못할 만큼도 아니라서 메이는 오소마츠가 돌아보자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저었다.

 

뭐지, 이 느낌은? 그것은 계단을 전부 내려와서도 사라지지 않아서 메이는 화장실에서 나오며, 뱃속이 텅 비었어―! 소리치는 쥬시마츠와 알았으니 이거나 들라며 쥬시마츠의 목욕용품이 담긴 바구니를 건네는 오소마츠를 바라보고 머리를 긁적였다.

 

우당탕―. 오소마츠와 쥬시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떨어진 바구니에서 쏟아져나온 각종 목욕용품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머리를 짓누르고 있는 손이 아닌 벽을 짚고 있던 손이 삐끗 미끄러지자 몸이 앞으로 기울었다.

 

 

"메이."

 

 

그 몸을 앞에서 받쳐들며 오소마츠가 메이를 불렀다. 정신을 잃은 것도 아니었지만 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쓰러지던 얼굴에는 분명 표정이 없었다.

 

힘이 없는 다리가 푹 꺾이자 오소마츠는 천천히 자리에 앉았다. 품에 안긴 몸은 오소마츠의 몸이 움직이는대로 인형처럼 축 늘어졌다.

 

오, 오소마츠 형―아…. 쥬시마츠가 걱정스럽게 부르자 오소마츠는, 쥬시마츠, 일단 저것들 정리 좀 해줘, 떨어진 것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쥬시마츠가 그것들을 주섬주섬 담는 동안, 오소마츠는 불규칙적으로 메이의 이름을 반복해서 읊조렸다.

 

세 번째 이름을 부를 때는 심장이 조여들었고, 네 번째 이름을 부를 때는 긴장해버려서 입으로 고르는 호흡이 떨렸다. 새벽에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다. 심각한 것 같지 않아서 병원에 가지 않는다고? 이게 심각이 아니면 대체 뭔데? 아―, 내일이라도 묶어서 병원에 끌고가야 하려나. 메이가 듣는다면 기겁할 생각을 하며 다섯 번째 이름을 불렀을 때, 몸이 움찔 떠는 것을 느끼고 오소마츠는 메이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메이. 메이?"

 

"…으."

 

"괜찮아? 정신 들어? 아, 정신은 원래 있었지."

 

"…뭐, 지. 뭐? 뭐야 이거."

 

 

눈을 질끈 감고 깜박깜박거리던 메이는 현재의 그림을 파악했다. 넘어져있는 오소마츠, 그 위에 안겨있는 자신. 올려다본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서 메이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서 뒤로 물러났다.

 

 

"죽고 싶어?"

 

"에. 나 아무것도 안 했는데?"

 

"죽고 싶냐고!"

 

"죽고 싶을리가 없잖…. 랄까 나 아무것도 안 했다니까? 나 왜 욕 먹는 거?!"

 

"죽어."

 

"메이 쨩? 내 말 좀 들어주면 안될까…? 쥬시마츠! 뭐라고 좀 해봐! 형아 아무것도 안 했잖아!"

 

"응! 메이! 오소마츠 형―아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아직은 뭐야?"

 

"메이가 넘어지려는 걸 오소마츠 형―아가 받아줬어!"

 

 

험악한 분위기를 뿜어대는 메이의 눈치를 보며 쥬시마츠가 말했다. 메이는 쥬시마츠에게로 향했던 시선을 내렸다. 평소에도 능글맞고 가볍고 알 수 없지만 분명 저건 거짓말하는 눈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억울해하는 오소마츠와 마주하지 않더라도 혼란스러운 건 누구보다 메이 자신이었다.

 

오소마츠에게 안겨있었던 것은 둘째치더라도, 기억이 없었다. 아무것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계단에서 내려와 화장실 앞에서 오소마츠와 쥬시마츠가 짧게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본 후부터 지금까지, 분명 그들을 보고있었음에도 오소마츠와 쥬시마츠가 언제 복도를 걸어왔고, 자신이 들고있던 바구니가 왜 떨어졌고, 자신이 왜 넘어지려 했는지까지의 길지 않은 순간들을 기억할 수 없었다.

 

계단에서 느꼈던 위화감은 생생히 기억했다. 통증도 아니고, 어지럼증도 아니었다. 다만 그것으로부터 이어진 경험이라 확신한 메이는 순간적으로 아득한 공포를 느꼈다. 지금까지는 막연한 아픔이어도 기억이 사라지진 않았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을 벌인다는 것은 불안하고 두려운 일이었다.

 

메이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오소마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가오는 오소마츠를 그저 바라만보는 메이의 양볼을 가볍게 잡고 주욱 늘렸다.

 

 

"악, 아파!"

"뭘 멍하니 있어? 자자, 얼른 나가자구! 늦는 걸 싫어하는 녀석들이니까~"

 

 

제 뺨을 매만지며 흘겨보는 메이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걸음을 재촉하며 오소마츠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졸졸 쫓아오며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 있는 쥬시마츠에게 살짝 웃어보이자, 쥬시마츠는 옅게 고개를 끄덕였다.

 

 

 

 

색색의 한텐이 거리를 나란히 걸었다. 양 옆에서 왁자지껄하게 들리는 대화 가운데에서 오소마츠는 옷깃이 주욱 늘어나자 슬그머니 걸음을 늦췄다. 옷을 부여잡은 소매가 나가떨어지고 오소마츠는 뒷머리에 손깍지를 꼈다.

 

 

"메이는 괜찮다구, 쥬시마츠."

 

 

크지 않은 목소리에 쥬시마츠가 끄덕 고개를 주억거렸다.

 

 

"원래 빈혈이 있대. 두통도 조금 있고, 안 그래도 병원에 가려고 했다니까 너무 걱정하지마."

 

 

사실 병원은 안 가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뒷말은 굳이 하지 않은 채 오소마츠는 평소처럼 활발하지 않은 쥬시마츠의 머리를 슥슥 헝클였다.

 

 

"이런이런! 쥬시마츠 군~ 언제 그렇게 메이한테 푹 빠져버린 거야아―?"

 

"오소마츠 형―아, 아까 있잖아?"

 

"응?"

 

"메이의 집에 갔을 때, 메이가 이제 웃어도 된다고 해서 웃었는데 말이야?"

 

"…에? 그럼 그 전까진 안 웃고 있었어…?"

 

 

뭐니 그거, 새로운 놀이? 오소마츠가 갸웃거렸지만 쥬시마츠는 신경쓰지 않고 제 할 말을 했다.

 

 

"메이가, 이렇게 쓰다듬어줬던 것 같은데, 하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줬어! 그런데 그건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닌 것 같았어."

 

"무슨 소리야?"

 

"날 가만히 쳐다보다가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웃어줬는데, 그 표정은 좋은 표정이 아니었어. 슬픈 표정이었어. 뭔가를 그리워하고, 아파하는 얼굴이었어."

 

"그랬구나."

 

"메이는, 그때도 머리가 아팠을까? 아까처럼 어지러웠던 걸까?"

 

"흠. 쥬시마츠, 네가 먹었다던 비타민 말이야? 그것 때문에 배탈이 난 거야?"

 

"난 그럴 거라고 생각해. 왜냐하면 배탈나기 전에 먹은 거라곤 비타민 뿐이었는걸!"

 

"쥬시마츠가 화장실에 갔을 때에도 메이는 그걸 먹고 있었는데, 메이는 왜 아무렇지도 않지?"

 

 

어쩌면 그 비타민에 문제가 있었던 걸까? 오소마츠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코로 내뱉었다.

 

계단에서 메이가 멈춰섰을 때, 그래서 오소마츠가 돌아봤을 때, 메이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둘러댔지만 오소마츠는 메이의 눈살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던 것을 봤다.

 

제 품에서 벗어나 황급히 뒤로 물러났을 때, 자신을 내려다본 얼굴에 떠오른 것은 혼란 그 이상의 공포였다. 오소마츠나 형제들의 앞에서도 픽픽 넘어지고 휘청거리면서도 한 번도 짓지 않았던 얼굴이었다.

 

빈혈? 두통? 오소마츠는 어쩐지 자꾸만 다른 생각이 들었다. 비타민이라던 하얀 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1. 남자가 밤에 연인의 침소에 잠입하던 것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