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おそ松さん 2F/[유메마츠] Extra 松_히로인[S]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유메마츠] 6. 토도마츠의 친구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유메마츠

# NL마츠

# 토도마츠

 

 

히로인 6

 

 

 

 

장장 5일에 걸쳤던 프로젝트가 끝났다. 시침과 분침이 정확히 10과 12를 가리키는 아침, 메이는 수많은 파일을 메일에 담았다.

 

 

"다했다…. 다했다…. 다했어…."

 

 

흐흐흐, 입에서 흘러나온 힘빠진 웃음 섞인 말이 며칠을 밤새워 너덜너덜한 멘탈을 재촉했다. 딸깍딸깍 마우스를 클릭해 화면을 닫고 컴퓨터를 끄는 것조차 벅찼다. 수면부족으로 다급한 정신머리는 자꾸만 옆에 있는 침대로 향했다.

 

하긴. 편하게 자라고 놓은 침대를 보기만 하는 것은 그것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일 뿐더러, 효율적이지 못한 일이지. 알고 있다고. 빽빽하게 가득찬 책상을 치우는 것도 미뤄버리고, 메이는 침대로 뛰어들었다.

 

아아―, 행복하다. 푹신한 베개 위로 아무렇게나 널브러진 머리카락이 콧김을 따라 움직이며 얼굴을 간지럽혔다. 환한 아침이든 쓰라린 공복이든 개의치않고 메이는 눈을 감았다. 원래 프로젝트 하나가 끝나면 3일의 유급휴가가 주어진다. 담당자에게는 최종본과 함께 멘션을 남겼으니, 몸이 스스로 일어날 때까지는 알람없이 잠만 잘 생각이었다.

 

 

 

 

.

 

 

 

 

.

 

 

 

 

.

 

 

 

 

"나왔어―!"

 

"어서와―. 랄까 왜 화가 났어?"

 

"들어봐!"

 

 

토도마츠는 분명 아침에 귀여운 여자아이와 데이트가 있다며 들떠 나갔다. 가끔 이렇게 씩씩거리며 돌아오는 건 십중팔구 여자문제였다.

 

같은 동정에 니트 주제에 여자문제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체가 못마땅했지만, 그래도 사랑스러운 동생이 버둥거리는 것은 조금 귀엽기도 하고 우스꽝스럽기도 해서 짓궂은 형들은 관심없는 척하면서도 막내동생의 투정에 귀를 기울였다.

 

쿵쾅거리며 들어와서는 신경질적으로 가방을 던지듯 내려놓고 토도마츠는 두 명의 무경험자 사이에 풀썩 앉았다. 무경험자 첫째 장남은 만화책을 펄럭이며 코를 파고 있었고, 무경험자 셋째 삼남은 구인잡지를 훑어보며 의미없는 구직활동을 하고 있었다.

 

 

"분명 그 아이, 남자친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 부정적으로 대답했다고? 물론 없다, 라고 단정지어 말하지는 않았지만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게 남자친구라는 듯이 이야기했단 말이야?"

 

"헤에―. 그래서? 숨겨둔 남자친구한테 걸리기라도 한 거?"

 

"바로 그거라구! 왜 남자친구가 있으면서 번호를 물어보는 건데?! 그런 거 동정한테 기대하라고밖에 들리지 않는 게 당연하잖아?!"

 

"아니, 네가 동정인지는 그쪽에서는 모르니까."

 

"발칙한 톳티―? 벌받는 거라구-. 형아들은 혹시라도 형아들의 사랑을 동생들이 배신이라고 생각하고 상처입을까 염려해서 집에서 2D 언니야들이랑만 노는데, 톳티는 사려깊은 형아들은 개무시하고 밖으로 나도니까 그런 꼴을 당하는 거야~"

 

"개같은 논리 펼치지마! 랄까 그냥 능력이 안 되는 것 뿐이잖아! 나는 코 파면서 가랑이나 긁어대고, 안쓰러운 탱크탑에 특허내고 싶어하고, 고양이 흉내내면서 앙앙거리는 아이돌이나 쫓아다니고, 도M인지 도S인지 헷갈리지만 알고 싶지도 않은 이상한 성벽이나 갖고있고, 쥬시마츠인 형들이랑은 다르니까!"

 

"고양이 흉내내면서 앙앙거린다니?! 냐 쨩 모욕하지마! 는 어째서 쥬시마츠는 그냥 쥬시마츠인 건데?!"

 

"쥬시마츠 형은 장르니까?"

 

"너 쥬시마츠를 제외한 형들을 너무 최저로 생각하는 거 아니냐?"

 

"어쨌든~ 남자친구 있는 거 알았으면 그냥 깔끔하게 제끼면 되는 거잖~? 밤에 혼자 화장실도 못 가서 고양이 컨셉잡고 엉덩이 흔드는 레이카나 쫓아다니는 딸딸마츠 형아를 굳이 깨우는 톳티를 좋아하는 특이취향의 여자애들은 톳티 스마트폰에도 많고~"

 

"톳티를 욕할 거면 톳티만 욕하라고!"

 

"아이 참, 새삼스럽게 징징대지마 시코마츠~"

 

"죽여버린다!"

 

"그냥 잊어버리라구, 톳!티! 그 여자애한테 반했어? 뭘 갑자기 그런 걸로 고민하는 거? 그 애 남자친구가 해코지할 것도 아닌데. 저울질하는 여자애같은 거 네 쪽에서 사양해버려~"

 

"화가 나는 건 그 부분이라고! 아까 그 여자애랑 시내에 나갔을 때, 그 애 남자친구로 보이는 사람이랑 마주쳤거든? 우락부락하고 덩치도 엄청 컸었어! 얘기를 들어보니까 그냥 다툰 것 같은데, 여자애가 연락은 일절 무시하니까 쫓아온 것 같았어. 대충 상황파악이 끝나서 둘이 알아서 하라고 나는 돌아가려는데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다짜고짜 나한테 달려들려는 거야! 난 번호를 달라길래 준 것밖에 없다고!? 왜 자기가 여자친구 단속 못하고 엄한 데 화풀이하는 건데!? 물론 귀여웠고! 나도 좋았지만! 남자친구가 있다는 거 알았으면 혹시 얽힐 거 귀찮아서라도 거절했을 거라고!?"

 

"그래서 어떻게 했어?"

 

"도망쳤지! 그 주먹에 맞았으면 내 등은 이치마츠 형만큼이나 굽어졌을 거야."

 

"흐―응―."

 

"후. 하지만 문제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고. 이거 봐!"

 

 

토도마츠는 제 스마트폰을 쵸로마츠를 향해 들어보였다. 반대편에 앉아있던 오소마츠가 어느새 슝 쵸로마츠 옆자리로 자리를 옮겨 토도마츠의 스마트폰을 함께 바라보았다.

 

미안해, 나는 그에게 마음이 없어, 네가 좋아, 만나고 싶어, 달지만 욕심이 가득한 한 마디 한 마디가 모여 토도마츠의 스마트폰 액정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그 말풍선 안에 간간이 보이는 이모티콘은 귀여웠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토도마츠의 표정은 무시무시했다.

 

오소마츠는 심술맞은 얼굴로 뿌우 양 볼에 바람을 채웠고, 쵸로마츠는 그 볼을 꾸욱 눌러 바람을 빼며 토도마츠에게 말했다.

 

 

"남자친구랑 헤어지고서 널 다시 만나겠다는 거야?"

 

"그런가봐. 이런 문자가 몇 분에 한 번씩 온다고?! 이젠 싫어! 무서워! 얼굴이 귀여운 거랑 마음이 예쁜 건 별개였어!"

 

"서얼―마 스토킹이라도 하겠어? 정 뭐하면 경험이나 쌓고 오던가~"

 

"그게 사랑하는 동생한테 장남으로서 할 말이야?! 우리 중에 제일 연애경험 많은 건 나니까!?"

 

"그래봤자 동정이잖? 형아가 말한 경험은 좀 더 어른스러운 세계라구~"

 

"아아! 이젠 나도 몰라! 시내나갔다가 똑같은 일이나 당해버려! 형들도 나랑 같은 얼굴이니까!"

 

"저 새끼 저거 성질머리하고는."

 

 

흥! 토도마츠가 무식한 발걸음으로 2층으로 올라갔다. 닫힌 거실 문을 바라보며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기대있는 제 어깨를 들썩였다. 비키라는 뜻이었는데 몸이 떨어지지 않자,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의 볼을 쥐고 있던 손을 움직여 힘을 주었다.

 

 

"아하!(아파!)"

 

"꺼지라고 한번 하면 좀 꺼져라. 앙?"

 

"자모해뜨미다―.(잘못했습니다―.)"

 

"어휴."

 

 

오소마츠가 어눌한 발음으로 버둥거리자 쵸로마츠는 그제서야 손에 힘을 풀었다.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물러난 오소마츠는 퉁퉁 부은 볼을 쓰다듬다 보던 만화책을 끌고와 벌러덩 누웠다.

 

 

"다녀왔머스루머스루~ 헛스루헛스루!"

 

"다녀왔다."

 

"어서와―. 어라, 벌써 풀었어?"

 

 

병원에 갔던 쥬시마츠와 카라마츠가 돌아왔다. 머리와 팔, 다리를 감싸고 있던 붕대가 사라져있어서 쵸로마츠는 놀라 물었다. 원래 머리에 감아놓았던 붕대만 풀러간 거 아니었나?

 

 

"훗. 이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고통스럽게 하지 못하는 길-티한 나의 바디! 사실 여신의 은총을 받아,"

 

"데카판 박사에게 뼈가 빨리 붙는 약을 달라고 부탁했어! 그래서 일주일동안 그거 먹었더니 뼈가 빨리 붙었대! 병원에서 기적이라고 했어!"

 

"난 또―. 진짜 고릴라인가 했어. 무식한 회복력."

 

"난 사람이다, 오소마츠. 그 약은 뼈가 빨리 붙는 약이라서 얼굴의 밴드는 계속 붙이고 있어야 한다더군. 흉이 지면 안 되니."

 

"그렇구나. 어쨌든 이번 일은 미안하게 됐어, 카라마츠. 우리가 할 말은 아니지만 그래도 빨리 나아서 다행이야."

 

"아아. 이젠 정말 괜찮다! 신경쓰지 마라, 브라더. 그나저나… 몸도 완전히 나아졌으니, 이 빚을 갚아야 하는데."

 

"빚? 메이가 병원비 내준 거 말하는 거?"

 

"아아. 병원비 뿐만이 아니더라도 심리적으로도 도움 받은 게 많다. 보답으로 뭔가를 해주고 싶은데…."

 

"그럼 나도!"

 

"넌 또 왜. 제발 쓸데없는 짓 좀 하지마."

 

"나도! 나도 보답!"

 

"쥬시마츠, 넌 그 애한테 받은 게 없잖아."

 

"내가 좋아하는 형―아들이랑 친구가 돼줬으니까 나도 보답할래! 나랑도 친구하자고 할래!"

 

"내 동생이 너무 착해서 형아 죽어―!"

 

"오소마츠 형―아?! 죽으면 안됨다!"

 

"아주 나이스한 마음가짐이다, 쥬우시마츠!"

 

 

시끄러워! 메이, 미안! 쵸로마츠는 왜인지 메이에게 사과하고 싶어졌다.

 

 

 

 

.

 

 

 

 

.

 

 

 

 

.

 

 

 

 

토도마츠는 조금 전의 일을 회상했다.

 

오늘도 여전히 니트인 마츠노 가 여섯쌍둥이는 모두 똑같이 빈둥거리는데 굳이 콕 집어 자신에게 심부름을 부탁하는 마츠요의 말을 듣자마자, 그는 승리에 찬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형제들의 눈빛과 마주했다.

 

그것에 반발하며 사다리게임을 제안했지만, 여차저차 결과로 결국 자신은 심부름꾼이 되었다. 분명 모두 보는 앞에서 종이를 꺼냈고 한 명씩 단 하나의 선을 그었지만 어째서인지 정해진 것처럼 자신이 걸려버리자 토도마츠는 부정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은 사와야하는 물건들이 적힌 리스트와 바구니를 들고 길을 걷고 있었다.

 

분명 짠 거야, 그 망할 동정들! 그게 동정이랑 무슨 상관인데, 태클을 걸어줄 쵸로마츠는 지금 그의 곁에 없었다. 뾰로통해하면서도 하나씩 재료를 사며 토도마츠는 생각했다. 아, 오늘은 카레인가보다! 형들에 대한 미움은 순식간에 저멀리 사라진 채였다.

 

 

"이제 양파만 사면 되겠다."

 

 

어느새 하나만을 남기고 전부 바구니에 담겨있는 것을 보고 토도마츠는 좋아좋아, 역시 나는 빨라, 괜히 어깨를 들썩였다. 망할 장남 오소마츠 형이었으면 분명 어느 유혹에 못 이겨 목록에 없는 것에 돈을 썼다가 재료 하나 두개는 빼먹고 사왔을 것이고, 착하고 귀엽지만 또라이인 쥬시마츠 형이었으면 분명… 됐다. 바구니라도 잘 가져오면 칭찬 스티커 3개는 붙여줘야지.

 

양파~ 양파~ 흥얼흥얼거리던 토도마츠는 곧 발걸음을 멈추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자신과 눈을 마주치고 있는 여자의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그 느린 표정변화를 두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며, 토도마츠는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망했다.

 

 

"토도마츠 군~!"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그녀와 토도마츠 사이를 메꾸었다. 손을 방방 흔들며 달려오는 여자를 바라보며 뒤돌아 도망치기엔 남자로서의 자존심이 상하고, 함께 웃으며 반기기에는 마츠노 토도마츠로서의 자존심이 상해서 그는 멋쩍은 얼굴로 그저 폭풍이 불어닥치길 기다렸다. 휘휘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다행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남자친구로 보이는 남자는 주변에 없었다.

 

 

"토도마츠 군! 내 문자 못 봤어? 답장이 없길래 걱정했어!"

 

"아, 아아… 그게, 확인은 했는데 깜박해버렸네."

 

"그렇구나! 확인은 했구나? 그럼 답은? 토도마츠 군은 날 어떻게 생각해?"

 

 

뭘 어떻게 생각해! 이미 나에게 있어서 넌 바람피다 걸렸는데 그것도 모자라 남자친구와 헤어지려고 새 남자를 욕심내는 여자애일 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던 것을 내뱉을 수 없어서 토도마츠는 부자연스럽게 웃었다. 삐질삐질 땀방울이 앞머리 뒤로 맺혔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하지.

 

수많은 여자들과 연락했고 만나보고 지나쳤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것을 숨기다가 걸렸음에도 이렇게까지 들이대오는 경우는 처음이라 토도마츠는 어떻게 해야 큰 소리가 오고 갈 일 없이 이 상황을 벗어날 수 있을까 고민했다.

 

 

"저기, 사실은 나 여자친구가 있어!"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다 내놓은 답이 고작 이거였다.

 

…? 당황한 여자를 바라보며 토도마츠는 쩌적 몸이 굳는 것을 느꼈다. 여자친구가 있다니! 동정인데! 무경험인데! 니트인데! 이런 젠자아앙-! 그럼 나도 여자친구가 있으면서 낯선 여자가 번호를 요구할 때 넙죽 줘버린 쓰레기가 되는 거잖아! 이럼 내가 이 여자애랑 다를 게 없잖아! 토도마츠는 좌절했지만 이미 한번 뱉은 말, 되돌릴 수는 없었다.

 

 

"거짓말하지마, 토도마츠 군. 그럼 왜 나한테 번호를 준 거야?"

 

"그게 말이지…. 나는 유이 쨩이랑 친구가 되고 싶었어! 유이 쨩은 귀엽고, 착하고, 잘 웃었으니까…. 하지만 남자친구가 있는 건 몰랐어. 그럴게, 유이 쨩에게 내가 남자친구 있냐고 물었을 때 있다고 하지 않았잖아? 그러다 전에 유이 쨩의 남자친구를 만나고 이건 잘못된 거라는 걸 알았어. 유이 쨩에게 남자친구가 있었고 유이 쨩이 나에게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걸 알았다면 유이 쨩에게 번호를 주지 않았을 거야. 내가 오해하게 만들었다면, 정말 미안해."

 

 

만약 형들이 있었다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거짓말을 늘어놓는다고 혀를 내둘렀겠지. 토도마츠는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려 애썼다. 이 표정 하나면, 쥬시마츠 형도, 이치마츠 형도, 카라마츠 형까지도 전부 넘어간다고! 하나같이 바보들이지만!

 

여자는 울 것처럼 부들부들 떠는가 싶더니, 고개를 들었다.

 

 

"…거짓말."

 

"…에?"

 

"토도마츠 군은 거짓말쟁이구나. 하지만 괜찮아, 그런 일을 겪었으니 이해해. 하지만 토도마츠 군, 토도마츠 군은 여자친구같은 거 없잖아? 그렇지?"

 

 

안 먹혔어?! 어째서! 토도마츠는 당황해 자신이 넋이 빠진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모르고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는 후후 입을 가리고 웃으며 토도마츠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섰다.

 

 

"내 마음은 진심이야, 토도마츠 군. 그 사람에게 난 더이상 설레지 않아. 토도마츠 군은 다르잖아? 토도마츠 군이랑 있으면 즐겁고, 토도마츠 군은 귀엽고 멋있어. 나한테 맞춰주고, 말도 예쁘게 해줘. 난 토도마츠 군이 좋아. 토도마츠 군이랑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과는 당장이라도 끝낼 수 있는 걸."

 

 

그러니까 아직 그 사람이랑 헤어지지도 않았다는 거잖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거잖아?! 대체 뭐야, 이 여자애! 남자를 킵해두고 다니는 거야?! 토도마츠는 경악했다. 자신이 동정인 건 맞지만, 여자를 자주 만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임자있는 여자를 건드렸다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혹시 모를 사랑의 투쟁같은 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 저기, 미안하지만 나는 정말 여자친구가,"

 

"토도마츠 군. 그런 점도 귀엽지만 나도 여자라구? 그렇게까지 해서 유이를 버리려는 거라면 정말 슬플 거야."

 

 

3인칭 스킬! 귀여운 여자애가 쓰면 그만큼 귀엽지 않을 리가 없겠지만, 지금 그녀가 그 기술을 쓰는 건 역효과일 뿐이다. 끈질기고, 의외로 영악한 여자다. 토도마츠는 힘껏 머리를 굴렸다.

 

그때였다.

 

저 뒤에서 걸어오는 사람은, 최근 오소마츠와 카라마츠, 그리고 쵸로마츠까지 친구가 됐다며 입이 마르도록 자랑하던 그 아이가 틀림없었다. 린도 메이였던가.

 

장을 보는 건지 한 손에는 바구니를, 다른 손에는 종이를 들고 걸어오는 메이를 보고 토도마츠는 손을 들었다. 계산이고 나발이고, 유일하게 잡은 지푸라기였다.

 

 

"메이―!"

 

 

갑자기 이름이 불리자 메이는 고개를 들었다.

 

이름이 불린 쪽에는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에… 오소마츠? 카라마츠? 쵸로마츠? 아니, 아니다. 같은 얼굴이긴 하지만, 분명 분위기가 달랐다. 분홍색의 파카가 눈에 익었다.

 

 

"뭐야, 여기 있었던 거야―?"

 

 

제발. 제발 말을 맞춰줘! 여자가 메이를 돌아보는 틈을 타, 토도마츠는 입모양으로 외쳤다. 도와줘! 메이는 눈살을 찌푸렸다.

 

하긴. 쌍둥이이긴 하지만 오소마츠의 말로는 메이는 모든 형제들을 구분할 수 있다고 했다.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쵸로마츠고 구별해냈고, 현관에서 충돌한 것을 제외하면 개인적으로는 마주친 적 없는 이치마츠와 쥬시마츠도 알고 있다고 했다. 입고 있는 옷의 색깔만 봐도 그들이 아니면 토도마츠라는 것을 알아채긴 하겠지만, 친하지도, 마주해서 달가운 상대도 아닐텐데 그녀가 자신을 위해 연기를 해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이게 마지막 수단인데! 어떡하지! 여자가 메이와 토도마츠를 번갈아 바라볼 때마다 토도마츠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했다.

 

메이는 가만히 서있다 걸음을 옮겼다. 다가오는 메이를 보고 토도마츠는 일말의 희망을 붙잡았다. 하지만 말없이 다가오는 얼굴에는 표정이 없어서 토도마츠는 다급히 말했다.

 

 

"같이 장보려고 했는데 메이가 전화를 받질 않아서 혼자 와버렸어! 왜 전화 안 받았어? 스마트폰에 토도마츠, 라고 확실히 뜨지 않았어? 혹시… 그때 일로 아직 화난 거야?"

 

 

토도마츠, 나는 토도마츠야. 상황설정을 대충 알려주면서 제 이름을 흘리는 토도마츠를 보고 메이는 대충 감을 잡았다.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앞에서 갈팡질팡하며 자신을 쳐다보는 모르는 여자, 도와달라며 알지도 못하는 설정을 제게 들이미는 남자.

 

메이는 입을 열었다.

 

 

"화는 안 났는데… 네가 지금 들고 있는 건 내가 어제 하려고 적어놨던 거야. 버리는 걸 깜박했는데, 그걸 들고 온 거야?"

 

"에? 진짜?"

 

"그래, 오늘 건 이거라고. 카레는 어제 먹었잖아?"

 

 

토도마츠가 들고 있던 리스트를 뺏어 읽으며 메이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됐다! 토도마츠는 미소가 흐르는 걸 겨우 참아내며 메이의 옆에 바짝 다가섰다. 조금 달콤한 향기가 나는 것 같았다. 작가라더니, 짜여진 판에 녹아드는 실력이 보통이 아니었다. 다급한 상황을 함께 버틸 동료가 생겼다는 느낌에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래서… 이 사람은 누구?"

 

 

메이가 여자를 힐긋 바라보았다. 토도마츠가 아, 그게, 뒷말을 흐렸다.

 

 

"…진짜, 진짜 토도마츠 군의 여자친구?"

 

 

나이스. 여자가 먼저 말을 꺼내주었다. 여자친구라는 설정. 이제 확실히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게 된 메이는 빳빳히 고개를 들었다.

 

 

"맞는데, 토도마츠 군의 여자친구. 누구세요?"

 

"그게… 내가 어제 얘기한… 메이랑 싸우고 화가 나서 번호 주고받고 데이트했던…"

 

"아아. 그 사람이 이 사람? 근데 여기 같이 있고, 진짜 여자친구냐고 확인한 거 보면… 토도마츠 군에게 여자친구가 있는 걸 못 믿나보네."

 

 

토도마츠가 속삭이듯 얘기하자 메이는 움찔거리는 여자를 위아래로 훑었다. 다분히 의도적으로 무례함을 가득 담은 시선에 토도마츠는 속으로 감탄했다. 학창시절을 미국에서 보냈다더니, 연극부라도 했던 건가. 대충 던진 설정으로도, 진짜같은 연기가 실감났다.

 

 

"토도마츠 군은 진짜 여자친구가 있어요, 바로 나. 알았으면 둘이 어떤 짓을 했든, 이제는 그만해줬으면 해요."

 

"그건,"

 

"화가 나서 준 거라고 했잖아요? 괜한 의미부여말고. 귀여운 당신을 충분히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을 거잖아요?"

 

 

메이의 말은 날카롭지만 나긋나긋해서 얼굴을 붉히며 여자는 후다닥 뒤돌아 달려갔다. 여자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게 되고나서야, 토도마츠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후아―! 진짜 깜짝 놀랐다."

 

"괜찮아?"

 

"으응. 아! 정말 고마워! 덕분에 정말 살았어!"

 

 

메이가 쪽지를 건네주며 묻자, 토도마츠는 그 쪽지를 받고 벌떡 일어서 메이에게 손을 내밀었다. 헤헤 웃는 토도마츠와 악수하며 메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나는 마츠노 토도마츠야."

 

"알아. 아까 네가 얘기했잖아."

 

"그런가! 오소마츠 형이랑 카라마츠 형이랑 쵸로마츠 형이랑 친구라면, 혹시 나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

 

"그럼. 막내잖아? 마츠노 토도마츠. 마츠노 가 여섯쌍둥이 중 귀여운 막내 포지션을 맡고있는 드라이 몬스터, 였나."

 

"…그 별명은 어떻게…"

 

"누구겠어?"

 

"오늘이야말로 해치워버리겠어, 오소마츠 형."

 

 

메이가 손가락을 인중에 가져다대며 누군가를 흉내내자, 토도마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안 그래도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형이 이상한 말을 해대면 나머지 형제들에게도 이미지 타격이 생길 거라 걱정했더니만, 아예 직접 부끄러운 별명을 떠벌리고 다녀? 쵸로마츠 형한테 똥꼬털이나 태워달라고 해야지. 토도마츠는 다짐했다.

 

 

"아까 그 여자애는 누구? 너를 좋아하는 애?"

 

"아―, 비슷하달까. 남자친구가 있다고 말하지 않고 나에게 호감이 있다길래 번호를 줬는데, 얼마 전에 데이트하다가 남자친구한테 걸려서 나까지 죽을 뻔했다니까?"

 

"헤에―. 너무하네."

 

"그런데 남자친구한테 걸리고서도 날 좋아한다고, 원하면 헤어질테니 만나달라고 계속 연락을 하는 거야! 엮이기 싫어서 무시하다가 이렇게 만나버렸지 뭐."

 

"인기많네, 토도마츠는."

 

"그렇지도 않은걸…. 정말 그렇다면 지금껏 동정인 이유가… 아, 방금 들은 건 잊어!"

 

 

여자애 앞에서 무슨 동정이야기를 하는 거야! 토도마츠가 손을 휘휘 저으며 말하자, 메이는 씨익 웃었다.

 

 

"괜찮아, 다 알고 있으니까. 너희 전원 동정에, 니트에, 쓰레기라며?"

 

"…누가 그렇게까지, 설마 이치마츠 형이랑 만났어?"

 

"이치마츠 형? 아니? 내가 만난 건 오소마츠랑 카라마츠, 쵸로마츠 뿐이야. 아, 너까지 넷이네."

 

"그 셋은 동정에, 니트에, 쓰레기가 맞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동정은 맞지만, 알바경험도 있고! 마음만 먹으면 일하면서 잘 살아갈 수 있다고! 쓰레기도 아니고!"

 

"알았어알았어~"

 

 

이 말투는 보통 카이를 달랠 때 쓰는 말투인데. 메이는 제 입으로 내뱉은 말을 상기하며 킥킥 웃었다. 정처없이 걷던 발이 문득 멈추고 토도마츠는 메이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

 

"나 어디 가는 거지?"

 

"에?"

 

"난 아직 살 걸 전부 못 사서. 조심히 가."

 

"에? 에? 잠, 잠깐만!"

 

"응?"

 

 

메이가 등을 돌리자, 토도마츠는 저도 모르게 다급히 메이를 붙잡았다. 메이가 다시 돌아보았다. 토도마츠는 우물쭈물 얘기했다.

 

 

"아, 그, 어차피 장 보는 거라면 같이 가지 않을래? 나도 아직 양파 못 샀고?"

 

"나야 괜찮은데, 너는 괜찮겠어? 거의 다 샀잖아? 나는 한참 남았는데."

 

"괜찮아~ 어차피 집에 가봤자 할 일도 없고, 망할 형들이나 마주쳐야하고~"

 

"망할 형들이구나."

 

"앗, 잊어줘, 방금 내 멘트. 같이 가자. 아, 장 다 보면 스타바 갈래? 얼마 전에 신메뉴 나왔던데, 먹어봤어? 같이 먹어보지 않을래?"

 

"즉흥적인 계획이 참 알차네―."

 

 

토도마츠는 메이와 나란히 걸으며 생각했다. 자기보다 머리 하나 크기만큼 작은 메이를 힐긋 내려다보았다. 분명 쵸로마츠에게서 메이가 사준 푸딩을 받았던 날에는, 자신도 친해질 수 있다고 자신만만했던 것 같은데. 마주치는 순간 베스트 프렌-드가 될 자신이 있다고 의기양양했던 것 같은데.

 

현실에서는 오히려 그녀에게 가짜 여자친구를 부탁하고, 빚을 졌다. 귀여운 여자애랑 만났을 때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쓰는 평소의 자신과 달리, 오늘, 메이의 앞에서는 동정이라던가 망할 형들이라던가 가식없는 말을 대놓고 내뱉었다. 신경쓰지 않을 만큼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메이는 귀엽고, 센스도 좋고, 눈치도 빠른 사람이었다. 토도마츠가 금방 잠시동안 겪었던 메이는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니 싫지는 않았다.

 

이미지를 굳히는데 실패했더라도 딱히 초조하거나 그렇진 않았다. 오히려 편했고,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미 형들에게 조금 면역이 생겼으리라 생각해버려서 그런가.

 

그러고보니 그날 사준 푸딩은 참 달았지. 우리도 언제든 사먹을 수 있었던 건데.

 

 

"저기,"

 

"메이라고 불러. 이름 알고 있잖아?"

 

"응. 메이, 저번에 쵸로마츠 형한테서 준 푸딩, 맛있었어. 고마워."

 

"아, 응. 그거 맛있더라. 너희 집 어른들 몫도 산 건데, 엄마랑 아빠 드렸어?"

 

"…그랬어? 못 봤는데."

 

"딱 보니까 범인새끼는 너희 장남인 것 같구나. 주먹이 근질근질한걸?"

 

"아! 그러고보니까 나 너한테 이를 거 있어."

 

"일러?"

 

 

토도마츠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이윽고 보여준 사진은 분명 쵸로마츠가 잠에 든 듯 눈을 감고 있는 다른 형제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장면이었다.

 

 

"보기 좋네. 형제의 뜨거운 우애를 주고받는 이 장면을 왜 나한테?"

 

"이 사진이 그렇게 보인다면 메이 안과 가봐야겠는데? 그날 쵸로마츠 형한테 메이가 그랬다며? 싸우면 화낼 거라고. 이거 쵸로마츠 형이랑 쥬시마츠 형이 싸우는 거야!"

 

"…쥬시마츠는 자면서도 싸워? 최강이네?"

 

"그게 아니라아―, 오소마츠 형이 쵸로마츠 형이랑 메이만 편의점에 갔다왔다고 쵸로마츠 형한테 따질 때, 쥬시마츠 형이 몰래 쵸로마츠 형 몫의 푸딩을 먹어버렸거든~ 그래서 쵸로마츠 형이 자고있는 쥬시마츠 형한테 토해내라고 하는 상황이야!"

 

"아… 쵸로마츠는 영원히 고통받는구나. 다시 사다주지 뭐."

 

"에에?! 메이 너 혹시 천사!?"

 

"…너도 안과 가봐야겠는데? 대체 내 등에 어디 날개가 보이는 거?"

 

"안돼! 사준다면 나도 사줘!"

 

"그게 핵심이구나. 드라이 몬스터 맞네."

 

"아! 아니야!"

 

 

토도마츠가 절레절레 손을 흔들었다. 아, 양파. 마침 마찬가지로 양파가 필요했던 메이는 토도마츠와 사이좋게 양파를 나눠샀다. 다른 재료를 순차적으로 구매하고, 마침내 모든 필요한 것을 사고서 그들은 집으로 향했다.

 

 

"메이 네는 오늘 저녁 뭐야?"

 

"전골. 너희는 카레?"

 

"응. 아무래도 사람이 8명이니까, 재료도 엄청나게 필요하다구―. 무거워! 아, 메이 거 들어줄까?"

 

"됐어. 네 거 무겁다며?"

 

"에이~ 그냥 한 말이야! 하―나도 안 무거워."

 

"나도 안 무거워. 고마워."

 

 

 토도마츠의 바구니는 메이의 바구니보다 훨씬 컸다. 그 안을 빼곡히 가득 채운 재료들을 힐긋 바라보고 메이는 제 바구니를 토도마츠의 반대편 손으로 옮겨들었다.

 

으아―, 상냥해. 토도마츠는 메이를 흘긋흘긋 바라보았다. 오늘 이 이야기를 형들한테 했다간, 분명 쵸로마츠 형 꼴이 날 거야. 푸딩을 사서 밤늦게 돌아왔던 날, 형제들 전원에게―물론 토도마츠 자신도 포함이었지만― 시달리던 쵸로마츠를 떠올리며 토도마츠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 메이. 그러고보니 카라마츠 형 말이야, 붕대 풀었어."

 

"뭐? 벌써? 회복력 무슨 일이야? 고릴라야?"

 

"하하하! 고릴라래! 그게 아니라, 우리가 잘 아는 박사가 있거든. 데카판이라고, 이것저것 연구하고 만드는 사람인데 그 사람이 약을 만들어줬어. 뼈가 빨리 붙는 약이래. 맨날맨날 먹었더니 뼈가 벌써 붙었어. 대단하지?"

 

"대단하다―."

 

"대신 뺨에 난 상처는 아직 좀 더 있어야 한다나봐. 그래서 얼굴에 붙은 밴드 빼고는, 전부 괜찮아졌어."

 

"다행이네. 너희는 반성 많이 했어?"

 

 

메이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토도마츠는 잠시 말을 삼켰다. 메이와 처음 만났던 날이 생각났다.

 

그들은 사랑하는 형제를 다치게 해놓고, 그 형제를 돌봐준 사람에게 괜한 화풀이를 했다. 그것은 잘못을 마주하고싶지 않은 어리광이기도 했고, 모르는 사람에게조차 잘못이라고 여겨지는 게 창피한 투정이기도 했다.

 

카라마츠를 위해 돈을 내주고, 자리를 내주고, 마음을 내주고, 자존심까지 내준 이 사람은 그를 간호해주고, 제 공간을 빌려주고, 진심어린 조언도 해주고, 경계하는 그들에게 고개까지 숙여가며 부탁까지 해줬는데. 그들은 본인들의 자존심이 중요해서 마지막까지 쑥스러운 인사 한 마디, 고맙다는 보답 하나 해주지 않고 끝까지 고집만 세웠다.

 

그들은 여섯이서 하나고, 누군가 나이며 내가 누군가였는데. 그들 중 한 사람을 지켜준 건 그들을 지켜준 거나 다름없는데. 화가 난 듯 일침을 쏘아붙이던 메이는 오히려 끼어들어 미안하다며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 그리고 분명 어색하고 껄끄러웠겠지만, 그럼에도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도 친구로서 연결되어주었다.

 

분명, 내게도 그렇겠지. 토도마츠는 질문하고 신경쓰지 않는 메이를 힐긋 내려다보며 걸음을 늦추었다.

 

 

"그럼! 반성도 많이 하고, 생각도 많이 했어!"

 

"잘했네. 카라마츠가 너희 이야기 진짜 많이 했어. 너희들 전부 좋은 녀석들이고, 자랑스러운 형제들이라고. 많이 소중히 여기더라. 사실 너희도 그렇다는 걸 나는 느낄 수 있지만, 그 녀석은 잠깐 본 내가 보더라도 너무 단순하고 순수해서 직접 말하고 보여주지 않으면 모르는 사람이더라고. 아마 몰랐을 거야."

 

"그래도 메이 덕분에 이젠 알 거야. 우리가 말하지 않아도 카라마츠 형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는 걸. 이제 아프지않게 할 거고! 아, 하지만 카라마츠 형이 아픈 말을 하는 건 고쳐지지 않을 것 같아…."

 

"응, 아프긴 하더라, 그거. 어쨌든 그날은 미안했어, 너희 일에 끼어들어서."

 

"아니야~ 메이 덕분에 카라마츠 형이랑도 화해했고, 우리 형제들도 더 사이 좋아졌어! 모두 메이랑 친해지고 싶어하는걸? 나도 그랬고! 그날은 우리야말로 미안했어. 그리고 고마워, 카라마츠 형을 돌봐줘서."

 

"하하, 조금 부끄러울지도."

 

 

조금 뺨을 붉히는 메이를 보고 토도마츠는 슬며시 웃었다.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그리고 쵸로마츠도 아닌 척하면서 은근 메이와 가깝다는 것을 자랑한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이 기분을 형제들 앞에서까지 숨기는 일을 할 수 있을까? 토도마츠는 고민했다.

 

 

"어이―? 거기."

 

 

그때 들린 목소리가 본인들을 부르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어서 메이와 토도마츠는 그저 걸었다.

 

 

"무시하는 거냐?"

 

 

하지만 한번 더 목소리가 들려와서, 메이와 토도마츠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뭐야? 메이의 변화없는 표정과 달리 토도마츠의 얼굴은 굳어졌다.

 

저 녀석, 어떻게 또 여기에. 아까 메이와의 환상적인 콜라보레이션으로 뿌리친 여자의 남자친구였다. 이미 이전에 그로부터 도망친 전적이 있었던 토도마츠는 그 얼굴을 보고 직감했다.

 

아. 그 보기보다 영악했던 여자가 어떤 수를 썼구나.

 

 

"허―? 진짜 여자친구가 있었네?"

 

"뭐야."

 

"거기 귀여운 언니~ 언니 옆에 있는 놈이 어떤 놈인지나 알고 만나는 거야?"

 

 

메이는 유쾌하지 않은 그의 말투에 눈살을 찌푸리며 토도마츠를 힐끔 바라보았다. 입을 꾹 다문 딱딱한 얼굴이 보였다.

 

여자친구? 어떤 놈인지 알고 만나냐고? 메이는 머리를 굴렸다. 혹시…

 

 

"그 녀석은 언니야처럼 귀―여운 여자친구를 두고서 남의 여자친구나 꼬시고 다니는 기생오라비같은 새끼라고. 조금 전에도 내 여자친구가 당했거든? 우리가 언니야도 상처받기 전에 먼저 이야기해주는 거니까, 감사인사는 나중에 하고 그 놈만 두고 가."

 

 

역시. 흠집이 난 자존심을 잡고 바들바들 떨며 도망가던 여자를 떠올리고 메이는 한숨을 쉬었다. 이런 귀찮은 상황, 꼭 소설 속에나 나올 법했다. 이런 유치한 상황 따위 내 소설에는 백그라운드로도 넣지 않지만.

 

 

"뭔가 착각하는 것 같은데, 당신 여자친구가 먼저 꼬신 거야."

 

"뭐야?"

 

"가만히 있는 내 남자친구한테, 넌 귀엽고 멋있다, 맞춰주고, 말도 이쁘게 해준다고 먼저 들이댄 건 당신 여자친구라고. 당신한테는 더 이상 설레지도 않고, 내 남자친구와 만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당신과 헤어지겠다고 하던데? 당신과 이 사람은 다르다고."

 

"이게 어디서 거짓말을!"

 

"토도마츠. 스마트폰 줘봐."

 

"에, 에…?"

 

"그 여자랑 나눈 메일 있을 거잖아? 라인같은 거."

 

"아, 으, 으응."

 

 

메이는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토도마츠에게 손을 내밀었다. 버벅거리며 패스워드를 풀고 여자와 나누었던 대화를 액정에 띄워놓고 토도마츠는 메이의 손에 스마트폰을 넘겨주었다.

 

슉슉 거의 일방적으로 그쪽에서 날아온 말풍선을 넘겨보고 메이는 남자들을 향해 스마트폰을 건넸다. 그것을 가로채듯 빼앗아가 바라보는 남자들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 변했다.

 

메이는 고개를 기울였다. 정의롭고 공평한 메이는 아무리 오해를 했어도 난데없이 나타나 상황설명없이 욕지거리부터 내뱉는 이 남자들에게서 반드시 사과를 받아내고 싶었다.

 

 

"확인은 끝났나?"

 

"이, 이이…"

 

"보이지? 대부분 그쪽에서 연락오는 거. 내 남자친구는 나랑 싸워서 화가 나서 방황했던 거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와 이야기가 끝났어. 당신들이 끼어들 틈은 없어. 그러니 당신의 여자친구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방황했던 건, 당신 여자친구랑 해결해. 내 남자친구는 당신과 마주쳤던 그날부터 당신 여자친구에게 조금의 간섭도 하지 않았으니까. 봐, 연락온 것도 대부분 무시했잖아."

 

 

남자의 손에서 스마트폰을 가져온 메이는 토도마츠에게 다시 건넸다.

 

 

"용건 끝났지?"

 

 

가자. 메이가 몸을 돌리자, 토도마츠는 깜짝 놀라며 그녀를 따라 몸을 돌렸다.

 

머, 멋있어…. 토도마츠는 메이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가며 뒤를 힐끔힐끔 곁눈질했다. 남자들이 어떤 상태로 서있는지는 시야에 잡히지 않았지만, 아마 창피하겠지. 토도마츠는 자신보다 작은 뒷모습을 바라보며 새어나오는 웃음을 억눌렀다.

 

 

"야 이것들아아―!"

 

 

깜짝이야. 워낙 큰 소리에 메이가 어깨를 움찔거리며 놀랐다. 고개를 돌리자 금방이라도 터질 것처럼 새빨개진 얼굴로 성큼성큼 다가오는 남자들이 보였다. 뭐야, 용건이 또 남았어?

 

메이의 옷자락을 꼭 잡으며 토도마츠는 불안한 눈으로 점점 다가오는 몸을 바라보았다.

 

 

"이것들이 어디서 남의 여자친구를 함부로 팔아먹어! 내 여자친구는 이럴 사람이 아니라고!"

 

"하?! 직접 눈으로 보고도 못 믿겠어? 당신 여자친구가 일방적으로 매달린 거잖아!"

 

"누가 누구한테 매달려! 쪼끄만 년이 조작질이나 해?! 하긴, 그 콩알만한 가슴을 좋아해줄 남자가 없으니 저딴 바람둥이같은 놈이나 만나는 거겠지! 끼리끼리 놀아난다더니!"

 

 

메이의 눈이 점점 가라앉았다. 이런 미친 새끼가. 솟구치는 분노와 수치심에 저도 모르게 입에서 욕설이 흘러나오자, 그것을 잡아채고 남자가 달려들었다.

 

 

"이게 얻다대고 욕을,"

 

 

퍼억 ―

 

양파 세 개가 하늘을 날았다. 얼굴을 부여잡고 뒤로 넘어가는 남자를 바라보는데, 뜨겁고 부드러운 무언가가 손을 감싸왔다. 그것이 토도마츠의 손이라는 것을 메이는 달리다 깨달았다.

 

뒤에서 들리는 괴성과 무시무시한 악다구니를 애써 무시하는 듯 토도마츠는 간혹 윽, 윽, 하는 신음을 내며 내달렸다. 그에게 끌려가듯 함께 달리는 다리보다 그에게 잡힌 손이 더 아파서 메이는 힘든 줄도 모르고 그를 따라 바삐 다리를 움직였다.

 

어딘가에서 겨우 남자들을 따돌리고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토도마츠는 멈춰섰다. 메이도 멈춰섰다.

 

헉. 허억. 허억―. 흑. 후아―!

 

여러 숨소리가 허공을 메웠다. 이 곳이 집 앞이라는 것을 알고 메이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제일 안심되는 곳까지 달린 거구나. 메이는 헉헉대면서 침을 삼켰다.

 

 

“메이! 괜찮, 아?”

 

 

본인도 숨을 고르느라 말 한 마디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돌아보는 얼굴은 땀에 젖어있었다.

 

 

“응! 괜찮…”

 

 

어라, 그러고보니 나, 여기까지 뛰어온 거야? 괜찮은 거야? 그럴게, 나 원래…

 

의식없이 대답하던 말이 멈추고, 뇌 속에서 다른 그림이 떠오르자 기우뚱 몸이 흔들렸다.

 

 

“메이!”

 

 

토도마츠가 다급히 무너지는 몸을 붙들었다. 여러 채소가 담긴 바구니가 바닥에 떨어졌고, 그 안에 있던 내용물들은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머리가 아파. 너무 어지러워. 금방이라도 새까매질 것 같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에 메이는 토도마츠의 팔을 붙잡고 머리를 부여잡았다. 귀에 물이라도 들어간 듯 불리는 이름이, 그의 목소리가, 주변의 소리가 뿌얘졌다.

 

뭐지, 어떡하지, 왜 이러는 거지. 난 그저 회상했을 뿐인데, 떠올렸을 뿐인데. 원래의 내가 천식이었다는 사실을. 뛰는 것은 커녕 빠른 걸음으로 걷는 것조차 힘겨워했던 호흡기질환 환자였다는 사실을.

 

한참을 머리를 싸매고 고통스러워하던 메이는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맑아지는 정신으로 고개를 들었다. 금방이라도 울 듯이 울상을 짓는 얼굴이 보였다.

 

아, 토도마츠는 다른 형제들보다 눈동자가 크구나. 뜬금없는 차이점을 발견하고 메이는 옅게 웃었다.

 

 

“괜찮아졌어.”

 

“진짜? 진짜로? 안색이,”

 

“곧 돌아올 거야. 네가 꽉 쥐고 뛴 손이 더 아픈걸? 하하.”

 

“에?”

 

 

손바닥을 비롯해 손등부터 손목까지 새빨갛게 물든 손바닥 자국이 선명했다. 토도마츠는 어떡해,를 연발하며 발을 동동 굴렀다.

 

메이는 주섬주섬 바닥에 떨어진 바구니를 주워들었다. 제 것과 토도마츠의 것을 구분해 바구니에 넣고서 메이는 제 바구니에서 양파 두 개를 꺼내들었다.

 

 

“에?”

 

“아까 바구니로 그 놈들 머리 때릴 때, 양파 세 개 날아갔어.”

 

“이걸 나한테 주면 너는? 또 사러 가게? 위험하잖아!”

 

“나는 당장 필요한 게 아니었어. 미리 사놓으려고 했는데, 어차피 내일까지 쉴 테니까 내일이라도 다녀오면 돼. 아까 내가 괜히 도발만 안 했어도 그렇게까지 일이 커지진 않았을텐데, 미안하네.”

 

“메이가 왜 미안해! 그 무식한 새끼들이 멍청한 거지! 자기 여자친구에 눈이 멀어서 죄없는 사람들한테 덤벼들고!”

 

“놀랬겠다. 들어가서 좀 쉬어. 난 들어가볼게.”

 

“…응. 너도.”

 

 

손을 흔들고 집안으로 들어가는 메이를 보고 토도마츠는 시무룩해하며 집안으로 들어왔다.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는 마츠요 대신 냉장고에서 무언가를 찾던 쵸로마츠가 테이블에 바구니를 올리고 내용물을 꺼내는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아, 왔어? 무슨 일 있었어? 왜 표정이, 에, 양파는? 왜 두 개 뿐?”

 

“…오는 길에 일이 좀 있었어.”

 

“일? …토도마츠, 너 괜찮아? 무슨 일이야?”

 

“양파가…”

 

“찾아보면 하나 정도는 집에 더 있을 거야. 그것보다 무슨 일인데? 괜찮은 거야? 차 마실래? 홍차? 보리차?”

 

 

절레절레 고개를 내젓는 토도마츠를 데리고 쵸로마츠는 거실로 들어섰다. 잠에 빠진 듯 오소마츠는 누워있었고, 거울을 보던 카라마츠가 아는 체를 했다.

 

 

“오, 톳티. 는 얼굴이 무슨 일이지? 굉장한데.”

 

“장보고 오는 길에 일이 있었대. 무슨 일인데?”

 

“…내가 전에 말했던 여자애…”

 

“여자애?”

 

“아, 그게―,”

 

 

쥬시마츠와 병원에 가느라 이야기를 못 들었던 카라마츠에게 대략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쵸로마츠는 다시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응, 그 애가 왜?”

 

“장을 보러 갔다가 그 애를 또 마주쳤는데… 엮이기 싫어서 여자친구가 있다고 거짓말을 했더니 믿질 않아서… 우연히 지나가던 메이한테 도움을 청했어.”

 

“메이? 메이를 만났어?”

 

“그럼 메이가 토도마츠의 여자친구 역할을 해주었다는 건가?”

 

 

끄덕 고개를 끄덕인 토도마츠에게 뭐라 말을 하려던 카라마츠는 조금 의아해했다. 그런 거라면, 저렇게까지 시무룩해할 필요가 없지 않나?

 

 

“그런데? 이야기가 잘 안 풀린 건가?”

 

“아니, 이야기는 잘 풀렸어. 메이가 잘 맞춰준 덕분에 여자애는 포기하고 돌아갔고…. 메이도 저녁거리를 사러 왔다길래 같이 장을 보다가… 스타바에 들러서 뭐라도 먹으려고 가고 있었는데, 그 여자애의 남자친구가 자기들 무리를 끌고 왔어.”

 

“뭐?”

 

“메이가 내 스마트폰에서 그 여자애랑 대화한 기록까지 보여줬는데… 대부분 일방적으로 온 연락이고, 난 거의 답을 하지 않아서 이걸로 됐겠지, 하고 돌아가려고 했어. 그런데 갑자기 거짓말하지 말라고 날뛰는 바람에…”

 

“그래서?”

 

“도망쳤어, 집까지.”

 

“집까지 쫓아온 거야?”

 

“아니. 중간에 포기한 것 같아. 정신차려보니 집 앞이었어.”

 

“토도마츠. 너 다친 곳은?”

 

“나는 없는데, 메이가…”

 

“메이가 왜? 어딜 다친 건가?”

 

 

카라마츠의 말에 토도마츠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다쳤냐고 묻는다면, 제가 너무 꽉 쥐어 빨갛게 물들어버린 손이라고 답하겠지만 아파하냐고 묻는다면…

 

토도마츠는 부리부리한 모습으로 위협하던 남자들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아놓고 처음 보는 표정으로 새하얘져 머리를 붙잡고 고통스러워하던 메이를 떠올렸다.

 

 

“내가 메이를 데리고 뛸 때, 너무 세게 잡아서 손이 조금 빨개졌고…”

 

“그리고?”

 

“도착하고나서 괜찮냐고 물어봤더니,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면서 쓰러지려고 했어. 한참 지나니까 괜찮아졌다고는 했는데….”

 

“그 녀석들에게 해를 당하진 않았나?”

 

“해까지는 아닌데, 그 녀석들, 메이한테… 쪼끄만 년이라면서, 가슴이 작으니까 나같은 기생오라비같은 놈이나 만나는 거라고… 거기서 메이가 화가 나서 욕을 했더니 달려든 거야. 그래서 내가… 바구니로 때렸어. 그때 양파가 떨어져서… 메이가 준 거야, 저 양파. 마침 메이도 양파를 같이 사서….”

 

 

토도마츠는 말을 마치고 형들의 눈치를 살폈다. 제일 신경쓰이는 오소마츠는 자고 있으니 됐다치지만,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도 메이를 많이 좋아하는 눈치였다. 특히 카라마츠는 가장 힘이 들던 때, 그녀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아 정신적으로도 의지하는 상태였다.

 

쵸로마츠는 웃으며 토도마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다행이다, 안 다쳐서. 눈치보지마. 잘했어, 토도마츠.”

 

“에? 왜 눈치를?”

 

“형들은 메이를 많이 좋아하잖아. 친한 친구고.”

 

“물론 메이를 친하게 생각하니 밖에서 겪은 일은 화가 나고 안타깝지만, 토도마츠 너도 소중한 사람이다. 동생이고, 형제이고. 너도 메이와 친구가 된 것 아닌가? 여자를 보호하고 친구를 지키는 게 바로 남자다. 기특하군.”

 

“우으… 근육질에 세 명은 좀 버거워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어. 메이도 옆에 있었고. 조금만 홀쭉했더라면…”

 

“괜찮아, 토도마츠는 달리는 걸 더 잘하니까. 일단 사온 것들 냉장고에 넣고 와.”

 

 

쵸로마츠는 토도마츠가 나가는 것을 바라보고 한숨을 쉬었다. 거울을 뒤집어놓고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는 손가락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했다.

 

곧 시선은 등을 돌린 채 누워있는 오소마츠를 향했다. 어깨가 오르락내리락 규칙적으로 움직였다.

 

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

 

쵸로마츠는 속으로 물었다.

 

글쎄―.

 

오소마츠는 눈을 얕게 뜬 채 속으로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