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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유메마츠] Extra 松_히로인[S]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유메마츠] 5. 쵸로마츠의 친구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유메마츠

# NL마츠

# 쵸로마츠

 

 

히로인 5

 

 

 

 

"메이는 무슨 일 해?"

 

"아아, 번역가 겸 작가다."

 

"번역가? 심지어 겸업? 멋있네―."

 

"커리어우먼-! 굉장하네에―!"

 

"출생은 일본인데, 유년시절은 한국에서 보내고 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더군. 졸업하자마자 다시 일본으로 넘어왔고. 집에서 일하는 거라, 형님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리듬에 맞춰서 일하는 것 같다."

 

"형님?"

 

"6살 차이 나는 형님이 있다. 3살된 동생도 있고."

 

"히엑! 2n살인데 동생이 3살?! 얼마나 막둥이인 거?!"

 

"막둥이―! 굉장하네에―!"

 

"여섯쌍둥이가 할 감탄은 아닌 듯 하다만."

 

"꽤 자세하게 알고 있네, 쿠소마츠 주제에. 쳇."

 

"근데 그런 멋있는 애가 왜 우리 집 쓰레기 형들이랑 친구를 할까?"

 

"독특한 취향이다~"

 

"훗. 카라마츠 걸-즈의 마음에 드는 것이야말로 내가 지금껏 기다려온 데스티니,"

 

"이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 님의 친구가 된다는 건 영광이지!"

 

"아니아니, 우리한테나 장남이지, 그 애한테는 그냥 남일 뿐이니까? 랄까 설마 네놈 그 애 앞에서도 그렇게 말한 거 아니지?"

 

"맞는데? 욕하더라! 하핫!"

 

"하핫, 이 아니라고?! 형이 그런 식으로 쪽팔린 짓을 하면 우리의 이미지까지 영향이 오니까?!"

 

"카라마츠 너 이놈아, 너는 먼저 친구해달라고 졸랐다며."

 

"엑! 아, 아니, 조른 건 아니다! 그냥 친구해도 되겠냐고 물어본 것 뿐!"

 

"그게 그거지."

 

"이젠 친구도 구걸해서 하냐 쿠소마츠."

 

"메, 메이가 그렇게 말했나…?"

 

 

카라마츠가 어버버 물었다. 오소마츠는 씨익 웃고 인중에 손가락을 올렸다. 장난꾸러기같은 모습에 뭐라 답이 오기도 전이었지만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아니! 찔러본 건데 진짜?! 카라마츠 프라이드 낮네~ 아무리 여자가 궁해도~"

 

"그런 쪽으로의 관계가 아니라고 했지 않나! 단순히 친구라고! 그러는 형님은 어떻게 친구가 된 건가!"

 

"그러게? 망할 장남이 어떻게 그런 스펙의 여자애랑 친구가 될 수 있어?"

 

"망할 장남이라니, 톳티? 형아의 특권이지! 동생의 친구는 형아의 친구이기도 하니까?"

 

"무슨 논리야. 동갑이잖아."

 

"헤에―! 나도 친구하고 싶어! 야구!"

 

"야구하기 위해 친구가 하고 싶은 거면 그만둬, 쥬시마츠 형."

 

 

형님이라―.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말에 아침을 떠올렸다. 동생을 껴안고 배웅하던 사람이 형이었구나. 그는 방긋 웃으며 걸어가다 진지한 얼굴로 다시 돌아와 메이의 이마에 손을 얹었다. 곧 메이가 등을 밀고서야 아쉬워하며 다시 길을… 아.

 

사실 어제의 이야기를 마무리짓고 싶었던 것도 있지만, 자주 휘청거리는 증상이 단순히 덜렁거리는 습관으로 인해서인지 물어보기 위해 그녀를 기다렸던 건데 대화를 주고받다가 새까맣게 잊은 채로 집에 돌아와버렸다.

 

다시 만나러갈까, 몸을 일으키려던 오소마츠는 곧 팔에 힘을 빼고 바닥에 벌러덩 누웠다. 친구라는 게 뭐야? 언제든 보자고만 하면 볼 수 있는 관계 아니야? 시계를 보며 급하게 집으로 들어가던 메이를 보니, 일을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은데. 더군다나 일반 회사원인 형님과 리듬을 맞추고 있다고 했으니까 지금은 그녀의 리듬으로 보면 업무시간이었다.

 

다음에 보고 물어보지 뭐! 오소마츠는 손을 뻗어 만화책을 집어들었다. 그럴리는 없겠지만, 눈은 평소에는 관심도 없었을 저자의 이름을 살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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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을 먹은 후로 메이는 점심도 거르고 지금까지 의자에서 한 번을 일어나지 않았다. 가만히 앉아만 있으니 엉덩이의 감각은 날아갔고, 허리는 굳은 것 같았다.

 

퇴근길에 카이를 데려온 케이토가 조금이라도 저녁을 가져다주겠다고 했지만, 그녀는 그런 그를 돌아보지도 않고 괜찮다고 사양했다. 오로지 글자와 문장에만 빠져있던 메이의 정신을 흩뜨린 것은 다름아닌 열어놓은 창에서 불어온 바람이었다. 조금 세게 불어온 바람에 앞머리가 살랑거리다 안경 뒤로 넘어와 눈을 찔렀다.

 

그제야 눈을 비비며 정신을 차린 메이는 안경을 잠시 벗어 내려놓았다. 콧대를 문지르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잇새로 으극, 괴상한 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왔다. 대충 스트레칭을 하고 허리에 손을 얹었다. 눈 앞에 열린 창 너머로 어둠 사이사이 불빛이 보였다.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에 살랑살랑 머리가 흔들렸다.

 

인식을 하니 배가 고파졌다. 밥을 차려 먹기엔 시간도 늦었고 귀찮기도 해서 메이는 옷걸이에 걸어둔 한텐을 걸쳤다. 문을 열자 케이토의 방문이 열려있는 것이 보였다. 바닥에 깔린 이불에서 카이가 자고 있었다. 동생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마에 입을 맞추자, 작은 입이 오물오물거렸다.

 

메이는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왔다. TV 앞에 앉아있는 오빠가 보였다.

 

 

"오빠."

 

"메이."

 

 

케이토가 뒤를 돌았다. 한텐을 걸치고 있는 그녀를 향해 몸까지 틀어가며 케이토가 물었다.

 

 

"어디 나가게?"

 

"편의점 좀 다녀올게. 출출하네."

 

"뭐 줄까?"

 

"아니야, 대충 사와서 일하면서 먹을래."

 

"같이 갈까?"

 

"으응―, 괜찮아. 쉬고 있어."

 

"그래. 조심히 다녀와."

 

 

스마트폰 챙겼고, 지갑도 챙겼다. 메이는 여전히 뻐근한 몸을 이리저리 비틀며 집을 나섰다.

 

 

"롤케이크나 모찌뿌요 먹어야지."

 

 

번역을 하든 글을 쓰든, 머리를 굴리는 일을 할 때면 늘 당이 부족하다고 외치는 메이였다. 폭신한 빵에 크림이 들어있는 롤케이크에 흰우유 한 잔을 상상하며 메이는 배시시 웃었다. 우유크림도 좋지만, 오늘은 초코크림이 더 좋을 것 같아. 모찌뿌요도 여러 개 사와야지!

 

들뜬 메이의 시선이 몇 걸음 걷지 않아 자연스레 어느 곳으로 올라갔다. 아직 밝은 불이 켜져있는 어느 집의 2층 창문. 이틀동안 얼떨결에 만들어진 두 명의 친구가 사는 집이었다.

 

장난스럽지만 흔들리지 않는 밝은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첫째와 호탕한 목소리와 상냥함이 매력적이었던 마츠노 가의 둘째. 다른 성격이지만 같은 얼굴을 가진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에는 분노도, 유쾌함도 있었기에 그저 조용히 거리를 걷고 있는 지금은 그것이 꿈만 같았다.

 

친구라니. 내가? 이 세계의 사람들을?

 

게임에 메모리가 저장되어있듯 갖고있던 기억으로 여차저차 이 생활에 적응해가고는 있지만, 그녀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다른 곳에서 다른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라는 게 지금 그녀의 머릿속에 깔려있는 전제이지만. 두 사람의 두 가지 기억이 한 몸에 존재하는 건 꽤나 혼란스러운 일이라서, 어느 한 쪽에 적응해가는 그녀는 또 어느새 헷갈려하고 있었다.

 

어쩌면, 그때의 나로서의 기억이 꿈이 아닐까, 하고.

 

 

"으아으."

 

 

신음과 함께 또다시 충격이 머리를 강타했다. 시야가 흔들리면 몸이 흔들려서, 휘청거리지 않으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푹 고개를 숙였다. 인적이 드문 시간, 고요한 거리. 불규칙적으로 급습하는 통증은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없었고, 강도 역시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덜해지진 않았다.

 

병원을 가봐야할까.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다.

 

아파…. 메이는 눈을 질끈 감고 한참을 그렇게 서있었다. 하지만 곧 남겨둔 일 생각에 완전히 통증이 사라지기도 전에 아주 천천히 발을 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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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쵸로마츠 형! 어디야!

 

"거의 다 왔는데. 무슨 일?"

 

- 부탁이야, 빨리! 쥬시마츠 형이랑 이치마츠 형이 레슬링을, 우왁!

 

- 토옷-티! 도―옹!

 

- 쵸로마츠 형, 아! 좀! 꺼지라고 이치마츠 형!

 

- 톳티가 반항한다. 쥬시마츠.

 

- 아아―잇! 톳티, 홈-런! 홈-런하자!

 

- 쥬시마츠 형! 나는 공이 아니야! 배트 내려놔! 악!

 

"강하게 크는 거야, 토도마츠."

 

- 난 다 컸다고! 꺄악 시코마츠 혀어어어―엉!

 

"그렇게 부르지 말라고!"

 

 

왁자지껄한 소란은 전화를 끊자마자 뚝 사라졌다. 하아, 쵸로마츠는 아직도 팔팔한 니트형제들을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는 것 없는 백수라고 해도, 이 형제들은 수면리듬이 엉망이라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고 늦게 자도 늦게 일어난다. 그럼에도 조금 더 성실해질 생각은 않고 남들은 다 자는 이 조용해야할 밤에 프로레슬링이라니.

 

경악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는 막내동생의 표정이 눈에 선했지만 쵸로마츠는 걸음을 재촉하지 않았다. 자신이 도착할 때쯤이면 체력이 방전되어 있기를, 그렇게 빌며 스마트폰을 주머니에 넣고 종이가방을 다시 손으로 야무지게 잡았다.

 

묵직한 종이가방 안에 들어있는 책 몇 권과 브로마이드 몇 개가 다리를 건드릴 때마다 그는 기분이 좋았다. 오랜만에 냐 쨩의 최신화보도 사고, 선착순 사은품으로 냐 쨩의 지난 앨범 타이틀 포스터도 받았다. 줄은 섰지만, 일찍부터 가서 기다렸기에 가뿐히 받았고 그의 뒤로도 많은 사람들이 받아갔다.

 

어서 가서 망할 장남과 드라이 몬스터 막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숨겨야지. 조금 들뜬 쵸로마츠는 흐흥흥 콧노래까지 불렀다. 그리고 집까지 얼마 안 남은 길의 어딘가에서, 그는 멈추어섰다.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가린 채 어정쩡하게 서있는 여자가 있었다. 약한 바람이 불고 긴 머리가 흘러내리는 게 보였다. 울고있는 것 같았다.

 

뭐지. 왜 저기서 저러고 있는 거지.

 

조용한 거리. 문 닫은 가게. 사람이라고는 저 사람과 자신 뿐. 얼굴을 숙이고 가린 채 움직이지 않는 머리 긴 여자를 무서워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자신은 아니었다. 조금 겁먹은 쵸로마츠는 최대한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옆을 걸었다.

 

그렇게 옆을 지나쳤다 싶었더니, 아파, 그렇게 중얼거린 여자가 손을 내리고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부자연스러운 자세로 서있다 했는데, 걸어가는 모양도 이상했다. 휘청거리는 것 같다가도 문득 멈춰서서는, 다시 걸었다.

 

쵸로마츠는 그녀의 뒷모습을 계속 바라보았다. 혹시? 가능성을 품은 눈빛이 여자가 가로등 아래를 지나다 비틀, 가로등에 몸을 기대고 멈추는 순간 확신으로 변했다. 걸친 한텐이 밝은 주황빛이라 그런지, 갈색빛이 도는 머리카락은 가로등 아래서 차라리 붉어보였다.

 

지나치는 옆모습. 익숙한 머리의 뒷모습. 귀에 익은 목소리.

 

다시 집을 향해 고개를 돌린 쵸로마츠는 한 발자국을 내딛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다시 돌아간 고개를 따라 시야에 같은 상태의 그녀가 잡히자마자, 쵸로마츠는 쩝 못마땅하게 입맛을 다시고 완전히 몸을 돌렸다.

 

오지랖인가, 싶었지만 분명 첫날에도 쓰러져있던 걸 오소마츠와 본인이 발견했었고 완전히 모르는 사이도 아니었다. 어딘가 이상한 상태의 아는 사람을 지나치는 게 더 개의치않다고 판단하고 쵸로마츠는 느리지 않게 그녀에게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자 여자는 한숨과 함께 가로등에 기대있던 머리를 뗐다.

 

 

"저기,"

 

 

조심스러운 목소리에 여자가 돌아보았다. 커다란 눈동자는 머리처럼 갈색빛을 띄었다. 렌즈는 아닌 것 같고, 신기한 색이네. 그렇게 생각하며 쵸로마츠는 지긋 자신을 바라보는 여자에게 말했다.

 

 

"괜찮아요?"

 

"…마츠노…"

 

"쵸로마츠에요, 오소마츠와 카라마츠의 동생."

 

"아."

 

 

알아차린 듯이 가운데로 몰려있던 미간이 풀어졌다. 가로등을 짚고 있던 손을 내리고 메이는 똑바로 자세를 고쳐섰다.

 

 

"혹시 어디가 아픈 건가요? 상태가 안 좋아보여서…"

 

 

상냥한 말투와 걱정이 묻어나는 표정. 통증을 참아내는 상태였지만 확연히 덜 고통스러워서 메이는 전보다 조금 개운하게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조금 어지러워서."

 

"아,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걱정해줘서 고마워요."

 

"고맙긴요."

 

 

카라마츠와는 현실적인 말투로 대화를 주고받기가 불가능했고, 오소마츠와는 어른스런 주제로 대화를 이어가기가 힘들었다. 제 기억에 따르면 분명 삼남이자 그들 다음의 형제인 마츠노 쵸로마츠라는 사람은 그들보단 확실히 정상적인 것처럼 보였다.

 

메이가 살짝 웃자 쵸로마츠도 살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여기서 어떻게 헤어져야하지? 오소마츠와는 분명하게 이야기를 마무리지었지만, 쵸로마츠와는 그렇지 못했기에 메이는 어색했고, 그건 쵸로마츠 역시 마찬가지였다. 상대방이 괜찮다고 하면 그렇구나, 그렇게 딱히 해줄 것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무턱대고 아는 체를 하긴 했는데… 뇌가 없는 장남은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니 분명 무례고 나발이고 추근덕댔을 테고, 그들이 카라마츠에게 실수한 일을 그 대신 오목조목 따지고 화를 낸 정의롭고 나름 사분사분한 이 아이는 받아줬을 것이다.

 

하지만 자칭 상식인 쵸로마츠는 달랐다. 그를 비롯한 형제들은 카라마츠에게 잘못을 했고, 카라마츠는 그로 인해 상처를 준 형제들 대신 새로 사귄 친구에게서 위로를 받았다. 그 친구는 카라마츠를 도와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분노를 가만히 받아내고 대신 카라마츠가 했어야 하지만 하지 못한 말들을 해주었다.

 

카라마츠와는 화해하고 넘어갔다지만, 이 아이에게도 나름의 잘못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쵸로마츠로서는 불러세웠으니 이대로 보내기도 난감하고 여기 이렇게 서있는 것도 곤란했다.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전부 그녀와 친해졌다고 했다. 그들은 본디 솔직했고 가감없었다. 그런 형들이 똑같은 사람과 친구가 되었다고 방실방실 웃으며 자랑아닌 자랑을 늘어놓을 때, 쥬시마츠는 대놓고 얘기했고 쵸로마츠는 한 편으로 생각했다. 나도, 친해지고 싶다. 어쩌면 토도마츠도―이치마츠는 잘 모르겠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 짐작하기도 했다.

 

기회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줄곧 그녀에게 신세를 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 그 일에 대해 사과를 하고 자신도 친해질 기회.

 

그래서 그 찰나의 시간동안 쵸로마츠는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용기를 냈다.

 

 

"어디 가는 거에요?"

 

"아, 편의점이요. 밥을 안 먹어서."

 

"…동행해도 되나요?"

 

"에?"

 

 

마침 나도 뭘 살 게 있어서. 제 어색한 목소리를 들으며 쵸로마츠는 이 순간만큼은 어이없을 정도로 능청스러운 그 장남이 되고 싶었다.

 

잠시 그를 바라보던 메이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기꺼이 말했다. 심심했는데 잘됐네요. 얕은 웃음과 함께.

 

편의점에 가는 동안 메이는 그가 들고 있는 종이상자를 힐끗 바라보았다. 살짝 고양이 귀를 한 여자가 보였다.

 

 

"그건 뭐에요?"

 

 

메이가 손으로 가리키자, 쵸로마츠는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사실은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의 화보집이에요."

 

"아―. 누군데요? 유명한 사람?"

 

"그게 하시모토 냐라고"

 

"냐…?"

 

 

메이는 머리를 굴렸다. 아이돌에는 관심도 없고, 노래라고는 가끔 찾아듣는 것 말고는 대부분 팝송만 듣는 그녀는 기억 저편 이 세계의 설정에서 하시모토 냐를 떠올렸다. 아아. 난 또.

 

 

"아. 알아요, 그 사람. 고양이닮은 귀여운 여자 맞죠? 냐 쨩?"

 

"…알아요?"

 

"그럼요. 아이돌이나 연예인에 관심이 많진 않지만 알긴 알아요. 팬이구나."

 

 

고양이를 닮은 귀여운 여자! 냐 쨩! 메이는 대수롭지 않게 고개를 돌렸지만 쵸로마츠는 내심 기뻤다. 형제들에게 말해봤자 토도마츠는 차라리 진짜 고양이가 낫지 않냐며 고양이로 변한 이치마츠를 가리키고, 카라마츠는 그 굵은 목소리로 얇고 통통 튀는 냐 쨩의 노래를 따라부르고, 오소마츠는 악수회에 와서 맞을 소리만 지껄일 뿐이었다.

 

함께 라이브를 다니는 동료들을 제외하고 수준 떨어지는 무시 외의 평범한 반응을 보여주는 건 메이가 처음이었다. 다 큰 성인이 일도 하지 않고, 아이돌이나 쫓아다닌다는 시선은 커녕 그녀는 은근히 냐 쨩을 띄워주기까지 했다. 그게 설령 쵸로마츠를 위한 배려였대도, 아니 그렇다면 더 감동적이었다.

 

 

"말 편하게 해도 돼요?"

 

 

언제쯤 운을 띄워볼까, 고민하던 쵸로마츠에게 먼저 불쑥 건네진 제안에 쵸로마츠는 심장이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버버 입만 뻐끔거리던 쵸로마츠는 세차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는 뒷통수에 손깍지를 끼고 푸하 숨을 뱉었다. 씨익 웃으며 내뱉는 말이 오소마츠같아서, 쵸로마츠는 어라, 하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다행이다. 사실 되게 어색했거든. 어제 그렇게 난리를 쳐서."

 

"아… 사실 나도."

 

"그래? 사람 생각하는 거 다 거기서 거기인가보다―. 어젠 미안했어? 너희 형제들 일에 함부로 끼어들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담담히 내뱉은 사과가 쵸로마츠의 양심을 찔러댔다. 왜 네가 사과하는 거야? 너도 카라마츠처럼 정말 상냥한 거야? 이런 질문은 이상해서, 쵸로마츠는 쿡쿡 쑤셔오는 양심을 곧 뱉을 말로 쾅쾅 두드렸다. 알았다고! 금방 사과하고 바로잡을테니까!

 

 

"네가 사과할 일이 아니야. 분명, 잘못은 우리가 했는걸. 카라마츠에게도, 너에게도. 우리야말로 미안해. 형을 도와준 사람한테 애꿎은 화풀이만 해버렸어. 신세를 졌는걸."

 

"괜찮아, 알면 됐어! 앞으로는 좀 잘 챙기라고! 카라마츠 그 녀석, 보기보다 얼마나 너흴 사랑하는지 아주… 헉. 혹시 호, 호모오―라던가?"

 

"그런 게 있다면 난 죽어버릴거야. 니트에, 호모라면 근친상간이잖아? 같은 얼굴이 그럴 우엑."

 

"말도 다 못 마칠 정도로 역겹구나. 내가 미안해."

 

 

새파래진 얼굴 위에 잔뜩 찌푸린 눈살이 살벌해서 메이는 사과했다. 강한 부정은 긍정이라지만, 저 강한 부정은 그냥 부정일 뿐이라는 걸 메이는 알았다.

 

 

"어쨌든 난 또, 네가 들고 있는 책들 힐끔 봤는데 고양이 컨셉 에로책인 줄 알았어."

 

"그런 취미는 없어서. 그리고 아마 내가 그런 걸 사가고 있다면 오소마츠 형한테 뭔가 약점을 잡혀서 부려먹히고 있는 이유일 거야. 뭐어―, 그 녀석 취향은 아니지만."

 

"아핫! 그렇네."

 

"고양이라고 하면 이치마츠의 취향이랄까."

 

"나 이치마츠도 알아. 너희 집 사남이지?"

 

"응, 맞아."

 

 

편의점에 들어선 메이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던 쵸로마츠는 잡지가 있는 쪽에서 잠시 멈춰섰다. 메이는 살 것을 고르다 사라진 쵸로마츠를 알아채고 빼꼼 그를 향해 얼굴을 내밀었다.

 

한 손에 들고있던 종이가방을 책꽂이에 기대 내려놓고서 집중해서 보는 저 책은… 역시 아이돌에 관련된 잡지였다.

 

 

"거기에도 냐 쨩이 나와?"

 

"아. 여기에는 인터뷰만 조금?"

 

"흐응―. 뭐 먹을래? 내가 쏠게."

 

"아니아니, 괜찮아! 진짜 괜찮으니까!"

 

"그래? 그럼 계산하고 올게."

 

 

메이는 괜찮다고 했지만, 그에게는 마음속 빚이나 마찬가지였다. 어제의 일은 두고두고 창피할 기억이었다. 그래서 혹시라도 부담이 될까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메이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정말 곧바로 계산대로 갔다.

 

계산을 마친 메이는 하얀 봉투 두 개를 가지고 쵸로마츠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들어줄까?"

 

"괜찮아."

 

"뭘 그렇게 많이 산 거야?"

 

"일할 때는 단 걸 많이 먹거든. 원래도 좋아하지만."

 

"일? 아직 안 끝난 거야? 엄청 늦었는데?"

 

"아아. 원래는 일반 출퇴근 시간에 맞추는데, 한달 또는 두달에 한 두번씩 프로젝트를 맡거든. 데드라인 안에 정해진 분량을 여러 언어로 동시에 번역을 해야하는 일이라 그 기간동안에는 거의 철야야."

 

"대단하네."

 

"자본주의가 무서운 거지."

 

"하하―. 마감기한이 언젠데?"

 

"빡빡할 땐 5일 정도? 널널할 땐 일주일?"

 

"여러 언어라면,"

 

"나는 한국어랑 일본어, 영어 쪽이야. 지금 하는 건 영어랑 일본어."

 

"아아, 카라마츠한테서 들었어.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유년시절은 한국에서, 학교는 미국에서 다녔다고."

 

"헤에―. 입 싸네―."

 

"힘들겠다. 그래도 이 시간에 그렇게 많이 먹는다고?"

 

"꿈이 돼지는 아니니까 걱정마."

 

 

얼마나 많이 샀으면 봉투가 두 개나 나오는 거지. 쵸로마츠는 메이를 잠시 바라보다 고개를 돌렸다.

 

편의점에 가는 길은 멀었던 것 같은데, 돌아오는 길은 왜인지 짧게 느껴졌다. 메이의 집이 마츠노 가보다 뒤에 있었기에 먼저 들어가는 쵸로마츠를 메이가 데려다주는 꼴이 되어버린 것 같아 쵸로마츠는 민망한 기분을 애써 감춰야했다.

 

그럼 들어가볼게, 일 열심히 해. 어색한 인사 후 뒤를 도는 쵸로마츠를 맞다! 잠깐만, 메이가 불러세웠다. 그녀는 한 손에 들고있던 하얀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에? 이거 뭐?"

 

"푸딩이야. 맛있어 보여서, 내 거 사면서 너희 것도 샀어."

 

"에에?!"

 

"뭐 먹을 거냐고 물어봤을 때, 뭐 먹겠다고 대답 안 했잖아?"

 

"아니아니, 괜찮다고 말했으니까! 진짜 괜찮았으니까!"

 

"그래서 그냥 샀어, 내 마음대로."

 

"…왜 너한테서 사람 말은 똥구멍으로도 안 듣는 우리 형제들이 보이지?"

 

"그거 너무 심한 말 같은데. 화내도 돼?"

 

 

하나, 둘, 셋… 개수가 8개라는 것을 알고 쵸로마츠는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의 입모양을 보고 그가 개수를 확인하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서 메이는 쵸로마츠가 뭐라고 묻기도 전에 먼저 얘기했다.

 

 

"어른들 건 남기고 먹어라 니트들아?"

 

"아―, 정말… 고마워, 잘 먹을게."

 

"그럼 좋겠다. 싸우면 내가 화낼 거라고 전해."

 

"메이 쨩."

 

 

돌아서는 메이를, 이번에는 쵸로마츠가 불러세웠다.

 

 

"그냥 메이라고 불러."

 

 

호칭을 지적하는 메이에게 사뭇 진지한 얼굴로, 끙끙거리며 쵸로마츠가 웅얼웅얼 말했다.

 

 

"…어제는, 정말 미안했어."

 

"괜찮다니까,"

 

"그리고, 정말 고마워. 카라마츠를, 우리 형을 잘 돌봐줘서. 오소마츠 형을 잘 받아줘서."

 

"에?"

 

"…나랑도 친구가 되어줘서."

 

 

친구? 눈을 도르륵 굴리던 메이는 씨익 웃었다. 아, 또다. 저 무방비한 웃음. 마치 초등학교 6학년 멘탈 그대로 올라온 기적의 바보, 우리 장남같은 해맑은 웃음.

 

 

"그렇네―. 친구네."

 

 

메이는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한동안 닫힌 문과 손에 들린 봉투 속 푸딩을 번갈아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느릿느릿 뒤를 돌아 주방으로 향했다. 마츠요와 마츠조의 몫의 푸딩 두 개를 냉장고에 넣어두고 그는 계단을 올라 2층 방문을 열었다.

 

전화로 왁왁 소란스러웠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형제들은 쵸로마츠의 자리를 비워두고 쿨쿨 자고 있었다.

 

쵸로마츠가 불을 키자 우으응― 비몽사몽한 곡소리가 여기저기서 흘러나왔다.

 

 

"불 꺼라, 쵸로마츠…."

 

"뭐하는 거야 시코스키 형…."

 

"누가 시코스키냐 톳티."

 

 

가방을 벗고 소중한 냐 쨩의 물건들을 보관했다.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투덜거리는 형제들 가운데 마이페이스로 쿠하쿠하 잘만 자는 쥬시마츠의 얼굴에 마음이 사르르 녹았다.

 

 

"푸딩 먹을 놈들 당장 안 일어나면 내가 다 먹을 거니까."

 

"푸딩―!"

 

"푸딩?"

 

"푸딩이 있어?"

 

"푸딩―! 쵸로마츠 형―아 푸딩―!"

 

 

큰 목소리로 제일 먼저 외친 건 다름아닌 쥬시마츠였다. 그의 목소리에 잠투정을 부리던 형제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났다. 쥬시마츠는 푸딩을 외치며 이불에서 펄쩍 솟아올라 쵸로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으악! 쥬시마츠! 아, 앉아!"

 

"아―잇!"

 

"옳지옳지, 기다려― 기다려―"

 

"쥬시마츠를 푸딩으로 조련하다니, 그런 방법이."

 

"아니, 이치마츠 형은 평소에도 잘 조련하니까."

 

"난 조련하는 것보다는 당…"

 

"거기까지 해라."

 

 

쵸로마츠는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는 봉투에서 하나씩 푸딩을 꺼내 모두에게 나누어주었다.

 

 

"쥬우시마아츠? 껍데기는 먹을 수 없는 거다."

 

"껍데기도 맛있는 걸~? 건강에 좋아~!"

 

"건강에 좋을 리 없다. 뱉지 않겠는가?"

 

"퉤에―!"

 

"내 얼굴에 뱉으란 소리는 아니었다만."

 

"쓰레기라서 쿠소마츠한테 버렸나보다."

 

"근데 웬일로 구두쇠가 푸딩을 사왔대?"

 

"누가 구두쇠냐. 랄까 내가 산 거 아니야."

 

"그럼?"

 

"설마 훔친 거?"

 

"드디어 마츠노 가에 범죄자가 나오는 거?"

 

"왜 거기서 기대하듯이 웃냐고, 기분 나쁜 어둠마츠 형."

 

"메이가 사줬어."

 

"메이가?"

 

"메이가?"

 

"싸우면 화낼 거라고 전하래. 그러니까 조용히 받아먹어라."

 

 

갑자기 튀어나온 이름에 오소마츠와 카라마츠가 동시에 쵸로마츠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직 붕대를 풀지 못한 카라마츠의 입에 푸딩을 떠먹여주던 토도마츠도 그를 돌아보았다. 쵸로마츠는 그들의 반응을 신경쓰지 않고 푸딩을 입에 담았다.

 

 

"너, 너어―, 쵸로마츠 너 이 새끼!"

 

"우왓! 얌마!"

 

 

오소마츠가 덤벼들자 쵸로마츠가 가까스로 몸을 피했다. 한 손엔 푸딩을 들고 있는 채였다.

 

 

"너 왜 이 시간에 메이랑 같이 있었어! 이 딸딸마츠!"

 

"마츠노 가에는 딸딸마츠란 이름을 가진 놈이 없다고! 랄까 밖에서 만난 것 뿐이야! 편의점 간다길래 같이 간 것 뿐이라고!"

 

"편의점을 같이 가?! 네가 왜 같이 가! 너는 정말 머릿속이 그걸로만 가득 차있는 거냐아―!"

 

"이 망할 장남이 뭐라는 거야! 머릿속이 똥으로 가득찬 건 너겠지 임마아―!"

 

"집에 오고 있다면서 중간에, 이 시간에, 이 밤에 여자애를 만나서 같이 편의점을 가? 배신자야? 그렇게 동정을 떼고 싶은 거야?"

 

"그런 생각이 아니라고! 이 망할 막내!"

 

"쵸로마츠."

 

"그래, 카라마츠! 너도 뭐라고 말 좀 해봐! 너도 메이는 그런 쪽으로 만난 사람이 아니라고 했잖아!"

 

 

쵸로마츠는 오소마츠에게 멱살을 잡히고 토도마츠에게 추궁을 당하다가 카라마츠가 넌지시 제 이름을 부르자 카라마츠에게 다급히 구원을 요청했다.

 

우득. 쥬시마츠가 던진 빈 푸딩통이 손 안에서 구겨졌다.

 

 

"붕대만 아니었어도 그 멱살을 잡고 있는 건 나였을 거다."

 

"어떻게 5명 중에 정상이 한 명도 없냐아―! 인간이 아닌 거야?! 다들 병신인 거냐!"

 

"이이, 배신자! 감히!"

 

"아! 진짜 아니라고 이 새끼야! 메이가 비틀거리길래 도와주다가 편의점에 같이 갔고! 친해진 것 뿐이라고!"

 

"비틀거려?"

 

 

오소마츠가 손을 놓자, 꾸깃꾸깃해진 잠옷을 탁탁 털며 쵸로마츠가 벗어났다.

 

 

"그래! 비틀비틀! 처음에 마주쳤을 때는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있길래 울고있나 했는데, 아프다고 중얼거리더니 휘청거리면서 가다가 가로등에 기대서길래 어디 아픈가해서 가까이 간 거야. 왜, 네놈이랑 처음 마주쳤을 때도 바닥에 쓰러져 앉아있었잖아."

 

 

쵸로마츠의 말에 오소마츠는 아무 말없이 가만히 서있었다. 비틀비틀, 휘청거리면서, 어디 아픈가해서, 쵸로마츠가 뱉은 말이 띄엄띄엄 머릿속을 떠다녔다.

 

 

"헤에―, 속이 새까맣군."

 

"네 기운만 하겠냐, 이치마츠."

 

"그 애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왜 툭하면 넘어져? 쵸로마츠 형이랑 오소마츠 형이랑 처음 만났을 때도 넘어져있었다며?"

 

"아직도 일이 안 끝났대. 많이 바쁜가봐. 피곤해서 그런 거 아닐까?"

 

"에? 아직도? 잘 시간인데?"

 

"원래는 일반 출퇴근 시간에 맞추는데, 한달이나 두 달에 한 두번씩 어떤 프로젝트를 따로 맡는대. 5일에서 7일 사이로 주어지는 기간 안에 주어진 분량을 여러 언어로 한번에 번역하는 일이라 그 기간동안에는 거의 못 잔다고 하더라고."

 

"여러 언어? 그럼 막 다른 나라 말도 할 줄 아는 거야?"

 

"메이 담당은 일본어랑 한국어, 그리고 영어래."

 

"우와―! 멋있어!"

 

"메이는 영어를 아주 잘 한다. 영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과 자유롭게 통화도 하더군. 그 아이가 좋아하는 노래들도 주로 팝송이고."

 

"넌 스토커냐?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메이의 집에 잠시 머물 때 보고 들었지. 물론 나도 그 대화를 전부 이해했다고! 언어의 장벽도 뛰어넘는 길-티한 나의 텅-을 메이도 찬양했지."

 

"빈말도 구분 못하니까 형이 텅텅마츠인 거야."

 

"이이―, 배애―신자아―!"

 

 

가만히 서있던 오소마츠는 뒤늦게 또 한번 쵸로마츠에게 달려들었다. 잽싸게 피하는 몸이 사라진 허공을 지나쳐 오소마츠의 몸은 맹장지에 꽂혔다.

 

 

"…찢어졌다."

 

"마미가 화내겠군. 힘내라, 오소마츠."

 

"나도! 나도 메이랑 편의점 가고싶어어―! 치사하게 쵸로시코마츠만!"

 

"그러니까 쵸로시코마츠는 누구냐고!"

 

"아아―. 형제들 중 절반이 똑같은 사람과 친구라니―. 그 여자애한테 무슨 매력이라도 있나? 갑자기 다 엮이네."

 

"우리랑 엮이는 건 매력이 아니라 저주일지도."

 

"확실히!"

 

"쥬시마츠 형? 거기서 그렇게 단정지어 버리면 슬프잖아~ 랄까, 전부 니트에, 동정에, 쓰레기에… 그렇네―. 저주네―. 물론 나 빼고!"

 

"거기서 톳티를 빼면 여섯쌍둥이가 아니잖아."

 

"톳티도 니트! 동정! 쓰레기! 아하핫! 우리 전부 똑같아~"

 

"쥬시마츠 형은 그런 말 쓰면 안돼! 어디서 배운 거야, 그런 몹쓸 말!"

 

"방금 톳티가 말했어!"

 

"내가 미안해!"

 

"네에네에―. 얼른 먹고 자라고. 내일부턴 좀 성실해지자고. 랄까 내 푸딩! 내 푸딩 어디갔어!"

 

"아. 그거 아까 쵸로마츠 형 오소마츠 형한테 멱살잡혀 있을 때 쥬시마츠 형이…"

 

"쥬시마츠는 잠들었다."

 

"잠들었다고 스스로 말하면 잠들지 않은 거잖아! 당장 일어나 쥬시마츠!"

 

 

영면한 듯한 자세로 다소곳이 가슴 앞에 두 손을 모은 채 눈을 꼭 감고 있는 쥬시마츠의 멱살을 탈탈 흔들며 쵸로마츠가 울부짖었다.

 

 

"싸우면 화낸다고 했다며, 그 애가. 지금 싸우는 거?"

 

"우와. 찍었다. 그 애한테 다 일러버려야지~"

 

"약아빠진 드라이 몬스터 같으니라고. 랄까 네가 그 애한테 무슨 수로 이를 거야?"

 

"병신마츠 형도, 안습마츠 형도, 시코마츠 형도 친해졌는데 나라고 못 친해지겠어? 오히려 나랑 가장 잘 맞을걸? 마주치는 순간 BF랄까~"

 

"병신마츠랑 안습마츠는 알겠는데 시코마츠는 설마 나냐."

 

"빙고!"

 

"그렇게 들어놓고 굳이 물어보는 건 무슨 심리냐."

 

"넌 조용히 해, 이치마츠."

 

"잠깐만? 병신마츠라는 녀석이 우리 중에 있던가?"

 

"널 말하는 것 같다, 오소마츠."

 

"그러는 안습마츠는 너다, 쿠소마츠."

 

"에."

 

"나도 메이랑 친해지고 싶어―! 나도나도―!"

 

"응, 메이는 착하니까 엉뚱한 짓만 안 하면 착한 쥬시마츠도 금방 친해질 수 있을 거야."

 

"아핫! 나 착해?"

 

"쥬시마츠 형은 착하지~ 가끔 이상한 짓 하지만~ 그것도 쥬시마츠 형이지~"

 

"난 착하구나~! 이치마츠 형―아도 만나보고 싶지! 메이라는 친구! 사람친구 사귀고싶지!"

 

"…난 별로."

 

"그럴리가~ 이치마츠 형은 우리가 있으니까 친구고 나발이고 필요없다고 했잖아? 우리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고 했잖아? 그런데 형제들이 전부 친해지는 친구를 이치마츠 형만 친해지고 싶지 않을리가 있어? 솔직해지라구~ 이치마츠 형!"

 

"읏! 내가 언제…!"

 

"에스퍼 냥코 어디있지?"

 

"만나보는 것, 정도는 상관없을지도…."

 

"성가시네, 이치마츠 형."

 

"안돼! 그만 넘보라고! 메이의 친구는 나야!"

 

"애새끼냐?"

 

"웃기지 마라, 오소마츠! 메이의 첫 친구는 나다!"

 

"너도냐?!"

 

"나도 곧 친해질 거다―! 메이랑 친구가 되면 가보로 삼아야지~!"

 

"쥬시마츠? 히지리사와 쇼노스케는? 랄까 그거 위험한 거 아니야…?"

 

 

어쩌면 마츠노 가 형제들과 엮여버린 건 메이에게 또다른 미안한 일일지도. 쵸로마츠는 지금처럼 시끌시끌할 것 같은 앞날을 걱정하며 불을 껐다.

 

쵸로마츠는 잠들어버린 형제들의 코골이 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잠들었다 생각하고 이내 눈을 감았다. 게슴츠레 뜬 눈으로 조금 더 밤을 지새우는 옆자리 형을 알지 못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