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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유메마츠] Extra 松_히로인[S]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유메마츠] 7. 이치마츠의 친구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유메마츠

# NL마츠

# 이치마츠

 

 

히로인 7

 

 

 

 

카이의 등원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메이는 끝나버린 휴가를 그리워하며 미리 저장해놓은 다량의 세이브 파일 중 일부를 메일에 담았다. 미리 만들어둔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언젠가의 할당량이긴 했으니 오늘은 이만큼을 보내고 조금 쉴 생각이었다.

 

얼마 걸리지 않은 마감을 끝내고 컴퓨터를 끄고서 메이는 거실로 내려왔다. 귀여운 동생과 자상한 오빠가 없는 집은 조용했다. TV를 틀어 웃고 지내다보니 점심이 찾아왔다. 나가서 먹자, 싶어 옷을 걸치던 메이는 이왕 나가는 김에 저녁에 먹을 것도 사오려 펜을 들었다.

 

저녁은 뭐먹지? 한참을 생각하던 메이는 어제의 일을 떠올렸다. 토도마츠는 카레재료를 사갔었다. 오늘은 나도 카레나 해볼까. 어제 토도마츠의 쪽지에 적혀있던 것과 비슷하게 재료를 적고 메이는 집을 나섰다.

 

별로 배가 고프진 않아서 간단히 끼니를 때울 것을 생각하던 차였다.

 

미야―옹―.

 

작은 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메이는 고개를 돌렸다. 아주 조그만 고양이었다.

 

새끼인가? 메이는 그 아이를 향해 한 발자국 다가섰다. 고양이는 가만히 메이를 바라보나 싶더니 고개를 돌렸다. 유유히 걸어가는 속도는 도망치는 것이라기에는 너무 느려서 메이는 고개를 갸웃거리고 고양이를 따라갔다. 따라오라는 건 아니었겠지만 길고양이일 거라는 짐작이 헷갈리게 고양이는 깨끗했고, 털이 빛났다.

 

키워지는 고양이인가? 메이는 고양이가 놀라지 않도록 발소리를 죽여가며 뒤를 따랐다. 씰룩거리는 엉덩이가 멈추나 싶더니 고양이가 다시 뒤를 돌았다.

 

앗. 메이는 자리에 멈추어섰다. 한참을 바라보던 눈이 어떤 말을 하려는지 모르겠어서, 메이는 도망갈까 조마조마한 가슴에 손을 얹고 고양이를 바라보았다. 눈빛이 절로 간절해졌다.

 

다행히 고양이는 비슷한 속도로 다시 앞을 향해 나아갔고, 메이도 소리없이 숨을 고르며 따라 발을 옮겼다.

 

 

"어라."

 

 

얼마동안 골목길을 누비고 다니던 고양이가 곧 멈추었다. 정확히 말하면, 막다른 골목에 잔뜩 몰려있는 고양이 무리를 향해 쏙 들어갔다. 적어도 6마리는 되어보이는 고양이 무리에 메이가 동작을 멈추었다.

 

깜박이지 않는 눈동자가 모두 메이를 향했다. 메이는 그 시선 가운데에서 눈동자를 굴리고 있다, 고양이들이 흩어지지 않도록 아주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뒷걸음질쳤다. 뒤에 뚫려있는 골목 입구까지 나간 메이는 그들의 시야에 자신이 잡히지 않을 때까지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이내 후다닥 뛰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가 물과 그릇, 고양이를 위한 밥, 간식을 쓸어담은 메이는 급하게 계산을 했다. 다급하게 편의점에서 뛰쳐나와 골목길 입구까지 가서는 후하후하 심호흡을 해 숨을 안정시켰다.

 

그릇을 포장한 박스를 뜯어 그릇을 꺼냈다. 그릇에 밥을 넣고, 조심조심 고양이 무리로 다가갔다. 몰려있던 고양이들이 움직였다. 흩어질까 조심스럽게 그릇을 놓고 가만히 앉아 기다리자, 고양이 몇 마리가 다가왔다. 그릇 주변으로 조그만 코가 움찔거렸다. 귀여운 혓바닥이 할짝 밥을 핥았을 때, 메이는 기뻐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입을 틀어막고 간식도 밥 옆에 부어주자, 또다른 고양이들이 간식을 향해 머리를 가져다댔다. 어떡해! 세상에 이런 귀여운 생명체가 있다는 건 감사할 일이야! 또다른 그릇에 깨끗한 생수를 부어주고, 한참을 그 자리에서 고양이들을 바라보며 노닥거린 메이는 정작 자신의 점심과 저녁거리를 잊어버렸다.

 

아예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자, 밥 주위를 맴돌던 고양이 몇 마리가 메이에게로 다가왔다. 슬쩍 손을 뻗자, 코를 움찔거리더니 곧 몸을 비벼왔다.

 

 

"사랑합니다, 고양이 님…."

 

 

가슴이 내려앉는 게 느껴졌다. 이건… 사랑이야…. 메이는 말 못하는 고양이의 애교가 귀여워 녹아내릴 것 같았다.

 

어느 순간 메이의 주변에 앉아있던 고양이들이 움찔거리며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들이 향하는 곳으로 메이도 고개를 돌렸다.

 

 

"에…."

 

"에."

 

 

오소마츠도, 카라마츠도, 쵸로마츠도, 토도마츠도 아니었다. 하지만 메이는 그가 누군지 정확히 알 수 있었다. 그럴게, 보라색 파카도 그렇고, 그의 이야기는 형제들로부터 심심치않게 들었으니까.

 

 

"…그 고양이들…."

 

"아. 혹시 키우는…?"

 

 

이치마츠가 마스크를 내리며 고양이들을 가리켰다. 메이는 엉거주춤 엉덩이를 떼며 일어서려 했다.

 

 

"아니, 키우는 건… 아닌데."

 

 

이치마츠의 말에 메이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럼 좀 더 있어도 되나? 몸을 지탱한 팔이 점점 아파와서 메이는 은근슬쩍 자리에 앉았다.

 

 

"…이거…"

 

"아아. 그, 편의점에서 대충 사와서… 잘 먹길래… 호, 혹시 이런 거 먹으면 안 된다던가…?"

 

"…잠깐, 그것 좀."

 

 

가라앉는 눈동자에 메이는 저도 모르게 눈치를 보았다. 어두워, 너무 어두워, 이 사람. 반쯤 감은 눈에 부스스한 머리카락, 굽은 등에 늘 입고 다니는 옷 스타일이라던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보니, 생각보다 더 어둡고 조용했다.

 

이치마츠는 메이에게서 받은 빈 밥봉지와 간식봉지들을 눈으로 훑었다. 이런 건 괜찮았다. 언젠가 카라마츠가 멋대로 이치마츠를 따라 고양이들을 보러왔다가 고양이들에게 간식을 주겠다며 사람들이 먹는 우유를 주려해서 그의 안면에 주먹을 꽂은 일이 있었다. 이치마츠는 아래를 바라보았다.

 

그릇에 넣어둔 물. 옆에 세워둔 어느 정도 비워진 생수병이 출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밥과 간식 모두 고양이들을 위한 고양이용 음식들로 가져왔으니 문제될 건 없었다.

 

이치마츠는 손에 들고있던 빈 봉지들을 메이에게 건네주며 그녀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메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아, 그럼 이만…"

 

"…고양이들이, 너를 잘 따르는 것 같은데."

 

 

메이가 눈을 피하자, 이치마츠가 넌지시 말했다. 아? 메이가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고양이, 좋아하면… 더 있어도… 이 녀석들, 이미 어느 정도 나한테 길러져서… 사람 피하거나, 하지는… 않으니까."

 

 

벌써 좋아하게 됐는지도. 메이의 손에 발을 올리고 그녀의 옷에 얼굴을 부비작거리는 고양이를 보고 이치마츠가 웅얼웅얼 덧붙였다. 고양이가 날 좋아해? 또 한번 사랑을 느낀 메이는 간질거리는 입꼬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배시시 웃으며 편하게 자리에 앉았다.

 

 

"헤헤… 나 좋아? 나도 너희 좋아."

 

 

바보같은 미소를 만면에 띄우고서 메이는 무방비하게 웃었다. 그 건너편에 앉고서 이치마츠는 다가온 고양이의 머리를 쓸어넘겼다.

 

오늘은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있었구나. 이치마츠의 눈을 보고 야옹―, 고양이가 대답하듯 울었다.

 

 

"마츠노 이치마츠, 맞지?"

 

"…에?"

 

 

별안간 불리는 이름에 이치마츠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 반쯤 감겼던 눈이 당황해서인지 조금 더 뜨였다. 메이는 제 무릎 위로 올라온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의 반대쪽 손을 들어 자신을 가리켰다.

 

 

"나, 린도 메이. 기억 안 나? 형제들도 많이 얘기했을 것 같은데."

 

 

기억…? 이치마츠는 고양이로 가득찬 머릿속을 휘저었다. 아, 그러고보니…. 문득 생각난 어떤 날을 회상하고서 이치마츠는 또다시 화들짝 놀랐다. 움츠려드는 어깨를 보고 메이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겁먹은 거? 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러고보니 그녀와 만나본 형제들은 하나같이 전부 자신에게 미안하다고 했다. 카라마츠도, 쵸로마츠도, 토도마츠도, 절대 그렇지 않을 것 같던 오소마츠마저도. 설마 그 날의 일로 나에게 부담이 생긴 건가? 사과하는 데 어느 정도 용기가 필요한 것은 인정했지만, 부담과 연결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던 메이는 눈치를 보고 있는 이치마츠에게 먼저 물었다.

 

 

"혹시 나 무서워?"

 

"에…"

 

"아니면, 혹시 나한테 미안해?"

 

"……."

 

 

이치마츠가 입을 꾹 다물었다. 빙고. 메이는 어색하게 웃었다.

 

뭔가 이거 게임처럼 한 스테이지씩 올라가는 것 같은데. 보상은 사과받기, 랄까. 우스꽝스러운 상상에 메이는 겸연쩍어졌다. 그녀는 형제들이 자신에게도 실수했다고는 생각했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 이건 잘못된 일이다, 라고 단정짓고 사과를 받아낼 생각은 없었다. 자신이 카라마츠를 도와준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카라마츠 당사자로부터 충분한 감사인사를 받았고, 카라마츠와 형제들 사이에 자신이 끼어든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혹시 내가 부담스러우면, 굳이 사과해주지 않아도 돼."

 

"……."

 

"그럴게, 내가 누누이 얘기하지만, 너희 형제들 사이에 끼어든 건 내가 실례한 게 맞으니까. 너희는 결국 잘 화해하고 다시 사이좋은 형제로 지내고 있으니, 오히려 사과해야할 쪽은 나라고?"

 

"……."

 

"내가 너희 형제들과 친구가 된 건 예상치못한 일이지만 뭐, 즐겁고… 하지만 당연히 거북할 수 있지. 그러니까 그렇게 눈치보지 않아도 돼."

 

"미안."

 

 

에? 설마 내가 강요하는 걸로 들은 거야? 메이는 멋쩍게 손을 저었다.

 

 

"아니아니, 난 정말,"

 

"네 말은 알았어. 그러니까 미안."

 

"에…"

 

 

잘 화해하고 다시 사이좋은 형제로 돌아갔다, 그 말이 이치마츠의 말주머니에 불을 붙인 것이다. 이치마츠는 시선을 피하면서도 조금 전처럼 낮지 않고, 더듬거리지 않고 말했다.

 

 

"쿠소… 아니, 카라마츠에게는 그날 우리가 심했던 게 맞아. 그리고… 카라마츠를 도와준 너에게도 우리가 심했던 게 맞아. 고마워."

 

"아… 아니, 괜찮아."

 

"그리고, 이 녀석들에게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워. 이건 개인적으로."

 

"친구?"

 

"맛있는 것도 주고, 건강한 것도 주고, 깨끗한 물도 줬잖아. 그래서 녀석들이 너를 좋아하는 거고."

 

 

메이의 얼굴이 환해졌다. 나도 좋아해!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리며 쓰다듬는 손길이 부드러워서 이치마츠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고양이, 좋아해?"

 

"아? 응, 좋아해. 고양이 뿐만 아니라, 강아지도, 토끼도, 사자도, 그냥 동물은 다 좋아해."

 

"헤에….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어."

 

"에? 너희 강아지 키워?"

 

"응. 정확히는 강아지같은 인간이지만."

 

"…반수?"

 

"이름은 쥬시마츠."

 

"어떻게 돼먹은 DNA야?"

 

 

큭큭 이치마츠가 웃었다. 쥬시마츠라면, 그녀가 유일하게 대화를 나눈 적이 없는 남자. 마츠노 가의 다섯째, 마츠노 쥬시마츠.

 

 

"그러고보니, 너희 형제들 중에 유일하게 쥬시마츠만 못 만나봤어."

 

"한 명씩 무찌르는 거?"

 

"…나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는데, 일단 전부 우연이니까."

 

"나같은 게 쥬시마츠보다 앞서다니, 유감이네."

 

"너같은 게 뭔데?"

 

 

메이가 물었다. 이치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어둠의 끝판왕. 보고만 있어도 기분나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쓰레기지. 그러니까 너나 다른 녀석들처럼 밖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이런 어두침침한 골목길에나 처박혀있고."

 

"…그건 또 무슨 컨셉이야?"

 

"뭐?"

 

"너 카라마츠보다 더 심각하구나?"

 

"…지금 그 쿠소나르시시스트보다 내가 더 쓰레기라는 거야? …하긴. 그 녀석은 쿠소짓을 하긴 하지만 상냥하고… 바보같지만 듬직해서 어딜 가나 사랑받지. 너도 그러니까 그 녀석을 보살펴준 거잖아? 그에 반해 나는…"

 

"아니아니, 저기 말이야? 네가 자존감이 땅을 뚫고 지구 내핵까지 들어가려는 상태인 건 알겠는데. 너 되게 모순적인 거 알아?"

 

 

이치마츠가 눈썹을 움칠 떨었다. 모순적이라고? 그런 평가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이치마츠는 뚫어져라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목이 말라왔지만 메이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마주보았다.

 

저건 컨셉이 아니고 성질이다. 하지만… 메이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들을 향해 보일락 말락 미소짓던 그의 얼굴을 떠올렸다. 고양이를 보고 무의식적으로 나온 본심이었겠지만, 그것으로 미루어 보아 메이는 알 수 있었다. 그는 상냥하고, 섬세한 사람이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이 먹는 음식의 출처 하나하나를 꼼꼼히 따질 만큼.

 

 

"보고만 있어도 기분나쁘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밖에서 어울리지 못하고 이런 골목길에나 처박혀있다고? 그럼 여기, 이렇게나 너를 좋아하고 따르는 고양이들은? 네가 쓰레기면, 이 애들은 쓰레기인 너를 좋아하는 거야?"

 

"에…"

 

"설령 진짜 네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고양이들에게 이렇게나 사랑받으면 그건 그거대로 나쁘지 않은 거 아냐? 난 그런데?"

 

 

이치마츠는 멍하게 메이를 바라보았다.

 

그를 바꾸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시도따위, 감히 엄두도 안 나고 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모순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럼 적어도 쓰레기와 평범한 인간 사이에서 선택이라는 것을 할 수는 있을 테니. 그 모순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된다면, 쓰레기보다는 평범한 인간을 선택하고자 할 테니.

 

 

"그리고 내가 카라마츠를 보살펴준 건, 그 녀석이 상냥하고 듬직하고, 뭐 그런 걸 다 떠나서 그냥 다친 사람이었기 때문이야. 그 자리에 네가 누워있었어도 난 똑같이 했을 거라고."

 

"……."

 

"애초에 나는 그 녀석이 누워있는 것만 봤는데 얼마나 착하고 어떤 성격인지를 어떻게 알겠어? 안 그래?"

 

"……."

 

"그나저나―, 카라마츠는 쿠소짓은 하지만 상냥하고, 바보같지만 듬직해서 어딜 가나 사랑받을 사람이구나~ 나는 거기까지는 몰랐는데, 이치마츠가 말해줘서 알게 됐네? 이치마츠는 카라마츠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구나~ 그렇구나아―!"

 

"그, 그건…!"

 

 

순간 이치마츠의 얼굴이 화악 달아올랐다. 메이는 무심코 웃어버릴 뻔했다. 거봐, 바보같지만 상냥한 사람은 너다. 진심을 드러내지 않을 뿐, 표현한다면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사람은 너다. 외형은 어른이지만, 속은 아직 미성숙한 이 남자가 속으로는 형제를 얼마나 좋아하고 의지하는지 알 수 있었던 말에 메이는 내심 감동받았다.

 

낯선 나에게 무의식적으로 내뱉을 수 있을 만큼 당연한 그 말을, 당사자에게도 할 수 있다면 더 좋을텐데. 여전히 얼굴이 새빨간 이치마츠를 보며 메이는 살짝 웃었다.

 

 

"말 못 하는 동물들은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법이라고? 너도 알잖아? 고양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아."

 

"……."

 

"그런 고양이들이 선택하는 너는, 정말 쓰레기일까?"

 

 

이치마츠는 얼굴이 뜨거워 고개를 숙였다. 저 녀석, 작가라더니, 글을 쓰는 사람이라더니! 마음에 파고드는 실력이 장난이 아니다. 이치마츠는 순식간에 따뜻해지는 가슴의 온기가 낯설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그는 이 느낌을 알고 있었다. 그래, 분명 쥬시마츠가―, 쥬시마츠가 햇살처럼 환하게 웃으며 형―아, 좋아해, 그렇게 말해줄 때. 그 때도 분명 이런 마음이었다.

 

이치마츠는 슬쩍 고개를 들었다. 야옹― 야옹― 고양이와 화음을 이루며 들썩들썩 몸을 움직이는 그녀는, 그저 천진해보였다.

 

어느덧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이치마츠는 메이를 살폈다. 밝은 색의 치마를 입고서, 아무것도 깔지 않고 그저 바닥에 털썩 앉아있는 모습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이치마츠는 자리에서 일어서고, 그의 갑작스러운 움직임에 메이가 고개를 들었다.

 

 

"치마, 더러워질 거야."

 

"아? 앗!"

 

 

메이가 고양이를 내려놓고 벌떡 일어섰다.

 

 

"더러워졌어? 까매졌어?"

 

"…아니."

 

 

이치마츠를 향해 등을 보이고 옷을 살펴달라며 메이는 걱정했다. 오늘 빤 건데! 이치마츠는 고개를 저었고, 메이는 안도했다.

 

일어서자 갑작스레 허기가 졌다. 그러고보니 점심을 먹으러 나왔지, 저녁거리도 사고. 메이는 배를 쓸어만지다 마스크를 고쳐쓰는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저기, 점심 먹었어?"

 

"아?"

 

"나 배고픈데, 뭐 먹을래? 사실 점심 먹으러 나온 거거든."

 

"…아니, 나는…"

 

"먹어주는 거니까 내가 살게! 나온 김에 저녁거리도 보고―. 아, 그때는 안 도와줘도 되니까. 점심만, 어때?"

 

"…원한다면, 뭐…."

 

 

메이는 시선을 돌리는 이치마츠를 바라보다 피식 웃었다. 상냥하네―. 메이는 이치마츠가 추천하는 라멘집으로 들어갔다.

 

 

 

 

빵빵한 배를 두드리며 메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메이를 바라보던 이치마츠는 고개를 숙이고 제 배를 바라보았다. …좀 나왔나.

 

 

"진짜 잘 먹었다! 너 맛있는 곳 많이 아네―. 다음에도 알려줘."

 

"…다음?"

 

"또 고양이, 보러와도 되지?"

 

"…고양이, 보고싶다면…."

 

 

솔직하지 못하네―. 메이는 뒷머리에 손깍지를 꼈다. 그러고보니, 이제 슬슬 저녁거리를 사서 돌아가야하는데. 메이는 자리에 멈춰섰다. 이치마츠가 그녀를 바라보며 물음표를 띄웠다.

 

 

"…헤어지기 전에 고양이 한 번만 더 봐도 돼?"

 

 

골목길로 돌아온 메이와 이치마츠는 슬금슬금 다가오는 고양이들을 향해 몸을 숙였다. 윤기나는 털이 부드러웠다.

 

 

"고양이, 네가 지켜주는 거야? 털도 깨끗하고, 건강해보여."

 

"자주 닦아주고, 빗어주니까. 건강한 음식이랑 애정만 주면 다들 건강해져."

 

"헤에―! 고양이 엄마같다."

 

 

메이가 히히 웃었다. 고양이 엄마라니, 이치마츠도 히히 웃었다.

 

 

"이게 누구야."

 

 

골목길로 들어선 몸이 빛을 막았다. 메이와 이치마츠는 고개를 돌렸다. 메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어제 양파로 내 머리 깨고 도망간 새끼들이네―?"

 

"…너 여자친구한테 차였지? 그래서 자꾸 나 쫓아다니는 거지?"

 

"누가 차여!"

 

"랄까 머리 안 깨졌잖아. 딱 봐도 돌머리일 것 같구만."

 

"이게 진짜!"

 

 

우왁, 남자가 다가오자 메이가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여기는 막다른 골목길. 욱해서 자극해버린 것을 후회하며 메이는 잡고 있던 바구니의 끈을 꼭 쥐었다.

 

그때 불쑥 나타난 몸이 메이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치마츠?"

 

"뭐하는 거야."

 

 

이치마츠였다. 바지 주머니에 손을 꽂고 반쯤 감겨 노려보는 눈은 흉흉해서, 남자는 잠시 움찔했다.

 

 

"너 이 새끼, 어제랑 분위기가 많이 다른데."

 

"어제?"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네가 네놈 여친이랑 짜고 나 엿 먹였잖아. 덕분에 여자친구랑도 헤어지고, 내가 이 슬픈 마음을 풀 데가 없어요~"

 

 

이치마츠가 토도마츠에게서 어제의 일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반응을 보아하니 왜인지 모르는 것 같아 메이는 고민했다. 어떡하지, 이 녀석이 그 녀석이 아니라고 해도 놔줄지도 모르겠는데. 놔준다면 가서 사람들이라도 불러오면 좋겠는데. 메이는 힘껏 머리를 굴렸다.

 

소리를 지를까? 하지만 여기서 소리를 지른다고 누가 와줄까? 괜히 저항하다가 큰일나는 거 아닐까? 수많은 만약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헤―. 그딴 연극에 넘어갈 정도의 사랑이면, 그냥 같잖았던 거지."

 

 

메이가 거의 혼수상태로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찰나, 이치마츠의 말이 튀어나왔다.

 

퍽 ―

 

 

"이 새끼가."

 

 

홱 돌아간 고개를 따라 몸이 휘청였다.

 

아오. 더럽게 아프네. 이치마츠는 벽을 붙잡고 눈을 질끈 감았다. 곧 느껴지는 쇠맛이 짜증나서 뭐라뭐라 내뱉는 남자들의 저속한 욕설은 들리지도 않았다.

 

이치마츠는 힐끔 그들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셋. 전부 어느 정도의 근육질 몸매. 그 와중에 탱크탑을 입은 한 녀석을 보자마자 이치마츠는 눈살을 찌푸렸다. 탱크탑이라니, 제 얼굴을 박아넣은 파란 탱크탑을 들어보이며 실실 웃던 카라마츠가 떠올랐다.

 

 

"뭘 인상을 찌푸…"

 

 

짜악 ―

 

앞에 서있던 남자의 고개가 팩 돌아갔다. 이치마츠에게 주먹을 날린 남자였다. 이치마츠도, 맞은 남자의 뒤에 서있던 남자들도 이 순간만큼은 같은 표정이 되어 지금 펼쳐진 상황을 눈에 담았다.

 

주먹을 꾹 쥐고 올곧게 선 메이가 올라간 손을 천천히 내렸다.

 

 

"미친 새끼가 어제부터 보자보자 하니까. 뭐? 콩알만한 가슴? 네가 봤어? 어디다 손을 대! 누굴 때리는 거야!"

 

 

가슴이라니? 이치마츠는 사고회로를 가동시켰다. 어제라는 단어가 자꾸 언급되는 걸 보아하니, 메이와 저 남자들은 분명 아는 사이가 맞다. 자신에게 분위기가 달라졌다던가 했던 말을 보니, 메이는 어제 형제들 가운데 누군가와 함께 외출을 했다 이 남자들과 시비가 붙은 것이라는 걸 직감했다.

 

여자친구 어쩌고 했던 걸 떠올리면, 남자의 여자친구와 메이, 그리고 형제들 중 누군가와 엮였던 것 같은데. 여자문제라면 토도마츠인가? 이치마츠는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토도마츠가 어제 메이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던 것 같기도.

 

이치마츠는 벽에서 몸을 떼고 메이를 제 등 뒤로 끌어당겼다.

 

 

"헤에―. 똑같이 피나네."

 

 

입술이 터졌는지 혀로 핥을 때마다 피맛이 강하게 났다.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린 남자의 입술에서 피가 맺혀서 이치마츠는 메이의 손 힘에 놀라워하며 짓궂게 말했다.

 

미친놈아, 자극하지 말라고! 이치마츠가 맞는 것을 보고 순간 이성의 줄이 터져 손을 날리긴 했지만, 곧바로 이성을 되찾은 메이는 제 손목을 힘주어 잡고있는 이치마츠의 손을 꾹 눌렀다.

 

하지만 이치마츠가 돌아본다던가, 뭔가 반응을 하기 전에 또다시 주먹이 떨어졌다.

 

퍼억 ―

 

조금 전보다 훨씬 둔탁한 소리가 퍼졌다.

 

 

"이치…!"

 

 

메이가 결국 뒤로 넘어진 이치마츠를 향해 몸을 숙이려는데, 남자가 메이의 손목을 붙잡고 확 당겼다. 우악스러운 손길에 끌려가며 입에서는 저절로 꺅, 신음이 흘렀다.

 

퍽 부딪힌 벽은 딱딱해서 메이는 욱씬거리는 등짝의 고통을 참아야했다. 붙잡힌 손목은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이 아팠다. 차라리 신고를 하자. 그럴 생각으로 무식하게 힘만 세서는, 일부러 도발적으로 말했다.

 

 

"그 손 놔…! 읏!"

 

"가만히 있어!"

 

"놔, 윽!"

 

"이치… 악."

 

"야 이 년아."

 

 

남자에게 붙잡혀 벽에 몰린 메이를 보고 몸을 일으키려던 이치마츠는 또다른 남자들이 한 팔씩 붙잡고 등을 무릎으로 누르자, 꼼짝없이 바닥에 붙었다. 이치마츠를 향해 돌리던 얼굴이 커다란 손에 잡혔다.

 

뺨을 붙잡고 남자가 메이의 얼굴에 가까이 제 얼굴을 가져다댔다. 그 눈 안에서 불타고 있는 자신은 버둥거리고 있었지만, 내뿜는 콧김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그녀는 그의 눈동자 안에서 자신이 몇 번이고 능욕당하는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이 남자에게 있어 가득한 것은 분노 뿐만이 아니라, 수치심과 성욕도 포함이었다.

 

 

"쪼끄만 가슴보고 쪼끄만 가슴이라고 한 게 잘못이야? 앙? 자세히 보니까 저 새끼, 어제 그 새끼 아니지? 얼굴이 묘하게 달라. 저런 분위기도 아니었고. 분명 남자라는 게 벌벌 떨면서 여자친구 뒤에 숨어가지고, 꼴사납게. 어제는 그런 것도 남자친구라고 지켜준답시고 당당한 게 솔―직히 조금 마음에 들었는데, 이제 보니 너도 별 거 아니잖아? 아? 하루만에 남자나 갈아치우고 말이야? 끼리끼리 논다고 했지, 내가."

 

"우윽…."

 

"저런 얼굴이 취향이야? 왜? 어디가 어떻게 좋은데? 저렇게 생긴 애들이 그걸 그렇게 잘하나? 어제 그 새끼는, 못해서 버렸어? 그럼 나는 어때, 나는 누구처럼 만나는 사람 있으면서 여기저기 찔러대는 버릇은 없는데. 내가 저런 새끼들보다 훨씬 크고 잘한단 말이지? 확인해볼래? 난 가슴 작아도 상관없… 아악!"

 

 

메이는 제 뺨을 붙잡고 있는 손을 있는 힘껏 깨물었다. 이게 진짜! 남자가 그녀의 입에서 손을 빼내고 쳐올렸다.

 

짜악 ―

 

날카롭던 소리가 더 거칠어져 울렸다. 압력을 못 이기고 돌아간 머리는 벽에 부딪혔고, 메이는 눈물이 날 것 같은 고통에 거센 숨을 토해냈다. 그동안 겪었던 두통이 머리 속에서 울리는 것 같은 고통이었다면, 지금의 고통은 말그대로 육체적 고통이었다. 온 몸으로 전해지는, 묵직한 아픔.

 

울지는 않았지만 흐느끼던 메이는 다리의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이치마츠가 버둥거리는 것도, 제 이름을 계속해서 부르는 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았다. 바닥에 아무렇게나 떨군 손이 잘근 밟혔다.

 

아악. 낮은 비명을 흘리며 벌어진 입이 따가웠다. 턱으로 무언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눈물인가? 아니, 아니다. 이건 피였다. 맞으면서 찢어진 입술에서 피가 흘렀다.

 

안돼, 이 치마… 오늘 세탁한 건데. 핏방울, 떨어지면 안 되는데. 한 손은 여전히 잡혀있고, 다른 손은 밟힌 상태라 메이는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남자는 그녀의 손을 밟은 상태로 무릎을 구부렸다. 체중이 손으로 실리자, 손이 부러지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심하게 머리를 옥죄었다. 안돼, 나는 당장 내일부터 글을 써야하는데. 손은, 절대로 다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저항도 할 수 없고, 욕도 할 수 없었다. 큰 충격으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적극적인 건 좋은데, 성가신 건 싫어. 얌전히 있자 언니야~ 쪼끄만 가슴에 발끈하는 거 보니까 얼마나 작은지 확인이나 좀 해보게. 응?"

 

 

싫어. 싫어. 싫어.

 

도와줘. 도와줘. 도와줘. 메이는 처음으로 빌었다. 아무나 도와줘. 제발 구해줘. 저기 저 사람을, 여기 나를, 도와줘.

 

 

"쥬…시마츠―!"

 

 

이치마츠가 소리를 질렀다.

 

쥬시마츠? 질끈 감고 있던 눈을 떴을 때, 메이는 보았다. 이치마츠를 누르고 있던 두 남자가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모습을. 그리고 그들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치는 노란 소매를.

 

 

"이치마츠 형―아!"

 

 

목소리 하나가 막힌 귀를 뚫고 들어왔다. 이치마츠는 쥬시마츠가 자신을 일으키려 다가오기 전에 외쳤다.

 

 

"메이를 구해!"

 

 

대답없이 돌아본 쥬시마츠의 벌어져있던 입이 꾹 닫혔다. 노란 홈슬리퍼가 제 앞을 가로막고 있던 얼굴을 우직 짓밟았다. 그 힘에 못이겨 뒤로 넘어간 남자의 위에서 깡충 뛰어내린 쥬시마츠가 메이에게 다가왔다.

 

 

"괜찮아? 괜찮아?"

 

 

입은 다시 헤 벌어진 후였다. 메이는 여전히 말을 할 수 없어 이치마츠를 바라보았다. 주섬주섬 몸을 일으킨 이치마츠가 메이의 바구니를 가지고 다가왔다.

 

얼른 가자. 그 말에 몸을 일으키는데 쓰러져있던 남자가 몸을 일으켰다. 바닥에 짓눌려있던 이치마츠는 가슴을 부여잡고 신음했고, 이치마츠를 부축하고 메이를 붙잡고 있던 쥬시마츠는 당혹스러워했다. 분명 다친 사람이 둘이나 있으니 버거운 거겠지. 메이는 이치마츠의 손에서 바구니를 가로챘다.

 

일어서 달려드는 남자를 향해 바구니를 휘두르고, 쥬시마츠가 쓰러뜨린 남자들을 향해 바구니에서 꺼낸 무언가를 던졌다. 그것을 맞고 비명을 내지르는 남자들을 뒤로 하고 이치마츠는 쥬시마츠를 향해 외쳤다.

 

 

"읏!"

 

"쥬시마츠! 안아! 달려!"

 

"아잇!"

 

 

이치마츠는 메이를 안아들었다. 갑작스레 몸이 붕 들리자 메이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이치마츠의 목에 팔을 둘렀다. 이치마츠가 쥬시마츠에게 말하자, 쥬시마츠는 힘찬 대답과 함께 이치마츠를 안아들었다.

 

메이를 안아든 이치마츠를 안아들고 쥬시마츠는 내달렸다. 엄청나게 흔들리는 느낌을 받으며 메이는 눈을 질끈 감고 뜨지 않았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지나 왓세왓세―! 쥬시마츠가 내는 듯한 소리만이 곤두선 신경을 건드렸다.

 

 

"다 왔어―!"

 

 

몸이 멈추고 쥬시마츠가 말하며 이치마츠를 내려주었다.

 

 

"이치마츠 형―아. 부축은?"

 

"괜찮아."

 

 

이치마츠가 고개를 젓자 쥬시마츠가 문을 열어주었다. 메이의 신발을 벗겨준 쥬시마츠가 도도도 달려가 거실의 문을 열었다. 이치마츠는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메이는 여전히 이치마츠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안겨있었다.

 

 

"이치마츠 형―아가 다쳤슴다!"

 

"뭐?"

 

"그리고… 에, 손님도 다쳤슴다!"

 

"손님? 무슨 소리, …에."

 

"메이?!"

 

"이치마츠! 괜찮은가! 이게 무슨 일인가!"

 

"시끄러, 머리 울리니까 소리지르지마."

 

"미, 미안하다. 는 그래서 대체 이게…"

 

 

이치마츠의 지적에 우왕좌왕하던 카라마츠가 쵸로마츠를 바라보았다. 당황한 얼굴로 구급상자를 가지러가는 쵸로마츠를 바라보며 이치마츠는 자리에 앉아 메이를 내려주었다. 여전히 눈을 질끈 감고 있던 메이는 이치마츠의 목에 두른 팔에 힘을 주었다.

 

 

"…여기 우리 집이야. 이제 괜찮아."

 

 

이치마츠가 조곤조곤 말하며 메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그제서야 눈을 살짝 뜬 메이는 낯선 집안을 힐긋 바라보았다. 눈 앞에 불쑥 쥬시마츠의 얼굴이 나타났다. 깜짝 놀란 메이는 이치마츠의 목을 조르듯이 힘을 주었다.

 

 

"메, 메―이… 수, 숨이…."

 

"아. 미안."

 

"괜찮아! 여기 우리 집! 치료해줄게! 그 녀석들 없어! 치료하자!"

 

 

이치마츠의 품에서 벗어난 메이는 쥬시마츠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착하다―, 착하다―. 쥬시마츠가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손보다 조금 긴 소매는 메이의 눈가까지 내려왔다.

 

 

"뭐야? 누구 다쳤어? 쵸로마츠가 왜 이렇게 급하게 구급상자를, 에…?"

 

 

먼저 다급히 들어온 쵸로마츠의 뒤로 오소마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진정된 메이는 고개를 돌렸다. 마주친 익숙한 얼굴에 손을 흔들었다.

 

 

"오랜만. 앗."

 

 

인사하는 손을 덥석 잡아 소매를 내렸다. 빨간 멍 주위로 노랗게 황달처럼 자국이 남았다. 메이가 아파하며 눈살을 찌푸리자, 토도마츠가 오소마츠의 손을 쳐냈다.

 

 

"형! 아파하잖아!"

 

"아, 미안."

 

"이치마츠, 너도 얼굴말고 다친 곳 있지?"

 

"…나는 별로,"

 

"이치마츠 형―아, 아까 가슴 쪽 아파했슴다!"

 

"벗어라."

"뭐라는 거야 미친놈아! 손님도 있는데,"

 

 

이치마츠가 빨개진 얼굴로 몸을 가리자, 카라마츠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치료는 해야하잖아! 벗기 싫으면 들춰!"

 

"이 미친 쿠소마츠가…!"

 

"벗지 말고 들추기만 해, 이치마츠. 가려줄게. 메이에게 등 돌려서 하면 되잖아."

 

"아, 진짜…"

 

 

결국 파카를 가슴까지 들춰올린 이치마츠의 가슴을 살펴보며 카라마츠는 혀를 찼다.

 

아, 화났다. 좀 무서울지도. 이치마츠는 안 그래도 굵은 눈썹이 잔뜩 미간으로 몰리자, 시선을 피했다.

 

메이의 손목처럼 새빨갛게 변해 노랗게 부어오른 명치를 보고 쵸로마츠가 한숨을 쉬었다. 입술이 터져있는 것을 보고, 토도마츠는 그릇을 가져왔다.

 

 

"형, 여기 뱉어."

 

 

퉤. 빨간 침이 그릇으로 떨어졌다. 쵸로마츠는 이치마츠의 입술에 약을 발라주며 메이를 힐끔 바라보았다.

 

 

"메이. 괜찮아?"

 

"응, 괜찮아."

 

"많이 무서웠겠군. 이 자식들…."

 

"무섭긴 했는데 괜찮아. 이치마츠가 지켜주고 쥬시마츠가 구해줬어."

 

"쥬시마츠 형은 어떻게 알았어?"

 

"이치마츠 형―아가 부르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날아갔어!"

 

"가능해…?"

 

"아아. 쥬시마츠는 그런 장르니까."

 

"고마워, 쥬시마츠. 이치마츠도 고맙고."

 

"아님다아님다! 그 녀석들 나쁜 녀석들! 아, 손은? 손은 괜찮아? 작가라고 했잖아―! 손 다치면 안 되잖아!"

 

"손이 왜?"

 

"그 녀석들 중에 한 명이 메이를 벽에 밀치고 손을 밟고 있었어! 뽀뽀라도 할 듯이 가까이 붙어서는 후욱후욱하면서 숨쉬고 있었어!"

 

"우와, 더러워. 뭐야? 변태들의 모임이야?"

 

"어제 여자친구랑 어쩌고 하던데. 덕분에 자기는 여자친구랑 깨졌다고, 메이한테 자기는 밤일 잘하니까 우리같이 생긴 놈들 말고 자기랑 하자고 했어."

 

 

메이의 새파랗게 부어오른 손을 살피던 오소마츠가 이치마츠를 힐긋 바라보았다. 앞머리로 가려진 이마에 솟은 힘줄 하나를 놓치지 않고 바라본 카라마츠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치마츠의 말에 새하얘진 얼굴로 토도마츠가 울먹였다. 이미 이야기를 들은 바 있던 카라마츠와 쵸로마츠는 토도마츠를 향해 손을 뻗었다. 메이는 그런 토도마츠를 바라보고 다급히 말했다.

 

 

"아니야, 토도마츠. 네 탓 아니야."

 

"그래, 토도마츠. 그 녀석들이 나쁜 거야."

"내가 괜히 거짓말을 해서… 괜히 메이를 끌어들여서… 이치마츠 형도 다치고, 메이도 위험해지고…"

 

"토도마츠. 네 잘못 아니야. 그런 성질머리니까 여자친구가 도망가지. 자기가 자기 입으로 그랬어, 끼리끼리 논다고."

 

"알 만 하군."

 

"토도마츠."

 

 

눈에 가득찬 눈물이 떨어지기 전에 오소마츠가 토도마츠를 불렀다. 토도마츠가 촉촉한 눈망울로 몸을 일으킨 오소마츠를 올려다보았다.

 

 

"괜찮아. 네 잘못 아니니까?"

 

 

오소마츠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토도마츠는 형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고개를 끄덕이며 이치마츠의 손을 꼬옥 잡았다. 오소마츠는 이치마츠를 불렀다.

 

 

"이치마츠."

 

"응."

 

"전부 다 말해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어떤 말을 했는지."

 

"응. 그러니까―…"

 

 

이치마츠는 말을 하다 가끔 앗, 하고 말을 멈추었다. 말을 하며 침이 닿을 때마다 약을 바른 입술이 아파왔다.

 

 

"…― 그랬어. 녀석은 메이의 얼굴도 손으로 잡아채고, 손목도 꽉 잡고 휘둘렀어. 벽으로 밀치기도 했고 밀쳐지면서 이마도 부딪혔어. 뺨도 때려서 피가 흘렀고, 손도 짓밟았어."

 

"그랬구나."

 

"…오소마츠 형."

 

"응? 아아, 형아는 신경쓰지 말고 치료부터 잘 받으라구?"

 

"마지막에 놈들이 다시 일어났는데, 메이가 뭘 던져서 쓰러뜨렸어! 그래서 그 틈에 메이를 안은 이치마츠 형―아를 내가 안아서 도망쳤어!"

 

"뭘 던졌어?"

 

"…참치캔."

 

"에?"

 

"고양이들, 주려고 참치 캔도 몇 개 사놨었는데, 이미 밥이랑 간식을 너무 맛있게 먹어서 나중에 주려고 바구니에 넣어놨었어."

 

"응. 그거라면 무겁기도 하고, 맞으면 꽤나 아플 테니까."

 

"메이?"

 

"아아, 으응. 응, 나는… 응…"

 

 

기어이 떨어진 핏방울이 만들어낸 자국 위로 뚝 눈물이 떨어졌다. 이치마츠에게 약을 전부 발라주고 구급상자를 정리해 메이에게로 가려던 쵸로마츠도, 이치마츠의 손을 꼭 잡고 있던 토도마츠도, 메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던 쥬시마츠도, 옷을 내리던 이치마츠도, 메이의 상처를 살피려 오던 카라마츠도, 메이의 곁에 서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오소마츠도 모두 행동을 멈추었다.

 

훌쩍이던 소리에 이어서 윽, 흑, 짓눌렀던 흐느낌이 새어나왔다. 어깨가 떨렸다. 질끈 감긴 눈에서 끊임없이 떨어지는 굵은 눈물방울이 바닥을, 옷을 적셨다.

 

무서웠어. 너무 아팠어. 지금도 너무 아파. 너무 무서웠어…. 터지듯 흘러나오는 말들에 다들 그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흐윽―. 흑, 으흑. 으큭,"

 

 

공포에 잠식된 울음이 터지면서도, 상처에 닿는 눈물이 아파서 고통스러운 신음이 섞여나왔다.

 

오소마츠는 메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앞머리를 들췄다. 잔뜩 젖어 흐려진 초점은 좀처럼 맞춰지지 않았다. 들춰낸 앞머리 아래로 부어오른 이마를 손으로 살살 쓸었다. 메이는 어깨를 움츠렸다.

 

 

"아파?"

 

"윽, 흑."

 

"메이. 아파?"

 

"흑, 아파. 흡, 아파…."

 

"응, 말해줘서 고마워. 아픈 거 치료해줄게. 쵸로마츠."

 

"응."

 

 

오소마츠가 부르자, 쵸로마츠는 구급상자를 가지고 다가왔다.

 

 

"쥬시마츠, 조심히 쓰다듬어줘. 이마, 다쳤으니까 닿으면 아플 거라고?"

 

"아―잇! 아픈 거 다 날아가라―!"

 

 

오소마츠의 말에 쥬시마츠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마에 닿지 않도록 메이의 머리를 천천히, 조심스럽게 쓰다듬으며 쥬시마츠는 중얼거렸다.

 

 

"아핫―, 그게 뭐야."

 

"쥬시마츠 형의 주문이야. 거짓말처럼 그 주문 외우면서 치료하면 하―나도 안 아파."

 

"진짜."

 

"진짜네―."

 

"아하하. 진짜?"

 

"맡겨만 주십셔!"

 

 

메이가 피식 웃자, 토도마츠와 이치마츠는 메이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이치마츠, 괜찮아? 응. 메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이치마츠는 제 입꼬리를 양손으로 쭈욱 올렸다. 괜찮다고 짓는 억지미소에 메이가 하하 웃었다.

 

 

"형아 잠시 바람 좀―."

 

 

오소마츠가 거실을 나가며 말했다. 쵸로마츠와 이치마츠는 오소마츠를 따라 나가는 카라마츠와 눈빛을 주고받았고, 쥬시마츠와 토도마츠는 오소마츠가 나간 자리를 지나가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아. 오랜만에 제대로 피바람이 불겠구나. 쥬시마츠는 킁킁 코를 움찔거렸다.

 

 

"오소마츠."

 

"아아, 카라마츠."

 

"함께 하지."

 

 

오소마츠가 카라마츠를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제 뺨을 톡톡 손으로 가리키며 오소마츠가 물었다.

 

 

"아직 다 안 낫지 않았어?"

 

"이런 건 남자의 훈장이지."

 

"금방 붙긴 했다지만 그래도 뼈 조심해야하지 않아?"

 

"재활하는 셈 치겠다."

 

"오―! 그런 방법이!"

 

 

킬킬 웃는 오소마츠의 곁으로 가서 선 카라마츠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손을 움직였다.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말라구?"

 

"형님이야말로."

 

"에―, 그런 게 가능할까 모르겠네―."

 

"너도 못하는 걸 왜 나한테 하라고 하는 건가?"

 

"아핫―! 그렇네! 그럼 그냥 무리하자구―? 내 뒤는 카라마츠가 있으니까, 형아 마음놓고 무리할게?"

 

"아아. 맡겨줘."

 

"꺄아―! 카라쮸 듬직해~ 반해버려~"

 

"죽이지만 말자고."

 

"도리어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고? 토도마츠 말로는 그 녀석들, 근육질이라던데. 뭐어―, 내 옆에는 근육질 고릴라가 있으니까 상관없지만?"

 

"이치마츠의 뺨 두 대, 명치 멍 하나. 메이의 뺨 한 대, 손목 멍 하나, 어깨 멍 하나, 이마 멍 하나, 손까지."

 

"이제 와서 그런 거 계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하긴. 그렇군."

 

 

이치마츠가 자주 다니는 골목길 근처에 다다른 오소마츠와 카라마츠는 자리에 멈춰섰다. 골목길에 모여있는 세 남자는 토도마츠의 말대로 우락부락한 덩치를 가지고 있었고, 여러모로 보아 엉망인 얼굴을 보고 오소마츠는 유레카를 외쳤다.

 

 

"자아―! 그럼 카라마츠?"

 

"아아."

 

"우리의 사랑하는 동생과 친구를 위해."

 

 

저벅. 발을 내딛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