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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마피아마츠] 마피아의 지도

[마피아마츠/오소마츠상 소설/마피아마츠 소설(おそ松さん Novel )] 8. 여자와 카라마츠

※ 세계관을 포함해 충분히 다른 설정.

※ Just Fi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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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라마츠

# 마피아AU

 

 

마피아의 지도 8

 

 

 

 

꿈을 꿨다.

 

어릴 적에는 조직에서 태어나 조직의 사람으로 살면서도, 메이에게는 좋은 기억이 많았다.

 

후계자로 교육받으며 자라는 케이토와 많이 만날 수 없어서, 그녀에게는 유일하게 일주일에 한 번, 어른들의 허락 하에 정기적으로 케이토와 함께 하는 한 시간의 본거지 근처 산책은 기다려지는 때가 아닐 수 없었다.

 

그 날도 여느 때처럼 11초를 소중히 여기며 걷고 있던 중이었다.

 

메이, 저기 봐.

 

케이토의 손가락을 따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하얀 고양이가 있었다. 조금 더럽지만, 작고 하얀 고양이. 보랏빛이 감도는 눈동자로 가만히 이 곳을 바라보는 그 아기고양이를 보고 메이는 활짝 웃었다. 그런 동생을 바라보다 케이토는 뭔가를 떠올렸다.

 

한 시간을 가득 채우지 않고 돌아온 케이토와 메이를 의아해하며 바라봐오는 당시의 보스였던 아버지에게 케이토는 부탁했다.

 

이 고양이를 키우게 해줘, 아버지.

 

그것이 서로를 아끼는 형제임에도 만나고자 한다고 함부로 만날 수 없고, 만난다는 것은 한계가 정해져있는 현실 속에서, 남들처럼 평범하게 친구들과 어울리며 놀이터를 뛰어놀고, 유치원에 다니고, 학교를 졸업하고, 쉬는 날에는 가족과 동물원이라도 가는 일상을 바라기는 커녕 그 생활을 알지도 못하는 동생을 위해 오빠가 보고싶을 때마다 이 고양이를 보라며 그가 준비한 선물이라는 것을, 메이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메이가 평범한 가정에서였다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케이토가 중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 케이토가 정식 후계자 수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해 안 그래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더 줄어버리자, 외로워하는 메이에게 그의 아버지는 새로운 사람을 붙여주었다. 케이토의 친구인 아리요시 류이치. 류이치와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얼마 있지 않아, 오빠의 목소리를 잊는 게 아닐까싶을 정도로 바삐 생활하는 오빠를 만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쯤, 메이는 고양이를 잃었다.

 

범인이 류이치라는 것은 시간이 조금 많이 지나 아버지가 선대되고 케이토가 보스에 오르면서 알게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어째서 그랬던 건지는 알 수 없었다. 당시에는 많이 울었지만, 시간도 많이 지났고 무엇보다, 더이상 이 곳에 류이치를 거스를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메이는 자연스럽게 그 일을 가슴에 묻었다.

 

 

 

 

뜨인 눈이 몇 번 깜박거렸다. 몸을 일으키자, 이마에서 툭 수건이 떨어졌다. 축축히 젖어 휑해진 앞머리는 차가웠다. 왜인지 몸에서 열이 느껴졌다. 조금 추운 것 같기도, 메이는 부르르 몸을 떨었다.

 

웬일인지 조용한 방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았다. 빨간 놈은 없네, 그렇게 이 방의 주인의 빈자리를 실감하고 메이는 다리를 이불 밖으로 꺼냈다.

 

망할 빨간 녀석이 또 난데없이 입술을 부딪혀왔다. 여전히 그 짓거리는 불쾌하고 맞물려오는 물컹한 것은 기분이 나빠서, 그런 행동에 언제나처럼 손을 날렸다. 마피아의 보스라는 자식이, 그래, 솔직히 인정하자면, 몸도 멀쩡하지 않은 여자의 손바닥을 피하는 것쯤은 가벼운 일일 거면서, 그 녀석은 언제나 날아오는 주먹과 손바닥을, 더불어 발길질까지 모조리 받아냈다.

 

다짜고짜 제 옆에 있으라며 뭣같은 고백을 해오던 날, 몸을 눕히던 힘은 확실히 겪어보지 않고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에 메이는 그런 오소마츠의 행동이 불편했다. 덧붙여 보스라는 놈을 대신해 약을 먹이러 왔다는 언젠가의 파란 놈은, 왠지 어정쩡한 태도로 입 안을 확인하려 들었다. 그런데 분명 그 태도는 무언가를 억제하려는 듯 꾸욱 참고 있는 것 같아서, 메이는 이 남자가 오소마츠가 말했던 차남, 또는 오남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럴게, 최대한으로 자제하려는 듯 하면서도 자신에게는 어떠한 틈도 허락하지 않고 눕혀버렸으니. 고릴라네, 아니, 오소마츠에게 고릴라라고 했으니 이 놈은 슈퍼 고릴라 쯤 되려나.

 

다시 본래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힘은 약하더라도 어쨌든 본인도 어엿한 마피아의 일원이었는데, 무시당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고의적으로 평소보다 배의 힘을 실어 날린 손길에 뺨에 빨간 손자국을 남기면서도 헤실- 웃어오는 그 얼굴은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분명 그 녀석은 이유없이 스킨십을 해오지 않았다. 밤에 몸을 맞대고 수면을 취하긴 하지만, 웬만해서는 자지 않고 테라스로 도망치기 때문에… 그래, 맞아. 며칠 전 평소처럼 테라스에 나가있다가 오소마츠에게 들쳐올려져 침대에 묶일 뻔했던 것을 기억하고 메이는 제 손등을 들어올렸다. 손목을 감싼 하얀 붕대 근처에 작게 생겨난 흔적이 보였다. 얼핏 보면 점같기도 한 이 자국은 분명 주삿바늘이 꽂혔던 자국이라는 것을 메이는 알 수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삼았을 것이다. 오소마츠가 입을 통해 제 목구멍으로 기습적으로 넘긴 액체가 수면제라는 것은 짐작할 수 있었다. 뺨을 내주고서 언제나처럼 바보처럼 웃던 빨간 셔츠가 침대 건너편 문을 통해 서재라는 그의 다른 방으로 사라졌을 때, 몽롱해지는 감각이 머릿속을 휩쓸었던 건 익숙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분명, 마츠노 녀석들의 감시 하에 어딘가에 갇혀있던 그 때도….

 

그런데 이상했다.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은 말 그대로 순식간에 잠에 빠져드는 수면감일 뿐이지, 아득하거나 뜨겁다거나,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느낌이 아니었다.

 

…역시 죽이려던 거야? 이번에야말로 죽이려던,

 

 

마츠노 사람이 되어 줘.

 

앞으로 여기 있으면 돼. … ― 나와 함께 있으면 돼.

 

 

거짓말. 여기서 그런, 가벼운 녀석의 웃기지도 않는 속삭임을 왜 떠올리는데?

 

 

네가 좋아.

 

한 눈에 반했나봐. … ― 그러니 내 곁에 있어줘!

 

널 지키는 일이라면,

 

메이. 많이 좋아해.

 

 

이 새끼들. 메이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쓰러지며, 이 곳에서 온 첫날 눈을 뜨자마자 마주했던 부시시한 머리의 남자를 떠올렸다. 보라색의 셔츠 위로 하얀 가운을 입고 있던 남자. 그 녀석이 마츠노 가의 의사인 것 같았으니, 그 녀석과 빨간 놈이 분명 짜고서 자신에게 미쳐가는 약을 주사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뻔히 보이는 속셈의 사탕발림을, 내가 이 와중에 상기할 이유가 없잖아.

 

 

네 힘따위 필요없어.

 

 

…정말? 진짜야? 아니, 그럴리가.

 

아득해지는 감각 너머로 사실 제일 가슴을 파고들었던 한 마디가 팍 떠올랐다 터져버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쾌락에, 또는 욕심에 손을 뻗었다. 그녀의 힘이라는 것은 그런 욕망들을 일깨우는 저주와도 같은 것이었지만, 그것을 부정하는 자들보다 갈망하는 자들이 더 많았다.

 

그런데 필요없다니? 필요없어해준다니? 분명 그런 말로 그럴싸하게 포장해, 뒤에서 눈을 가리고 손을 묶었던 아둔한 녀석들은 셀 수도 없이 넘쳤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는 이런 상황에 더 민감하고, 예민할 수 밖에 없는데. 왜 당신의 말은, 이렇게 새까만 와중에 빛나는 거야.

 

 

 

 

메이는 쓰러지기 전 제 안에서 일어났던 극심한 혼란을 상기하다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치마 안의 허벅지에는 여전히 붕대가 감겨있었지만, 그 정도의 압박감은 어느새 익숙해져있었기에 메이는 저벅저벅 걸었다.

 

문 앞에 선 메이는 조심스럽게 손잡이를 손으로 쥐었다. 단 한 번도, 이 곳을 나간 적이 없다. 마치 새장 안에 갇힌 새처럼, 탑 꼭대기 방에 갇힌 머리 긴 미녀처럼. 나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으니,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메이는 빨간 셔츠를 펄럭이며 이히히, 모자라게 웃던 오소마츠를 떠올렸다.

 

도망이라던가 탈출이라던가, 그럴 마음도, 의욕도 없었다. 갈 곳은 없었고, 이 곳을 벗어나면 그야말로 죽음 뿐이라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 길만이 제 길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렇지만…

 

메이는 눈치가 빨랐다. 공기를 읽을 수 있을 만큼의 경험이 있었다. 비겁하다거나 정당하다거나, 그런 모든 '나'들을 돌이켜볼 수 있는 객관적인 판단력도 있었다. 그 모든 장점이기도, 단점이기도 한 것들은 스스로에게까지 예외가 없었기에, 메이는 불안해했지만 인정했다.

 

수많은 기회가 있었고, 앞으로도 수많은 기회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지난 기회들을 놓친 그 녀석은, 앞으로도 그 많은 기회들을 놓치리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잘 알아서, 메이는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끼익 ―

 

그녀에게만 들리는 아주 미세한 소리로, 문이 조금 열렸다.

 

어쩌면 죽을 수도 있는, 낯선 조직의 중심에서, 알 수 없는 약으로 인해 정신을 잃어가면서도, 그래, 솔직히 따뜻하고 솔깃했던 그 말들을 떠올렸던 것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그 순간에조차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했을 때, 한편으로는 그럴리가, 그런 마음이었던 것도 인정했다.

 

진심이든, 어쩌면 정말 치밀하고 손해보는 그들의 작전이든, 어느 정도 성공했다. 그래. 나는, 이 곳에 익숙해져버린 참이려나.

 

몸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로 문이 열렸다. 발을 들어올리고, 다시 발을 내렸다. 문턱을 넘어가있는 발을 바라보며 메이는 영양가없이 생각했다. 그러고보니 이 홈슬리퍼를 준 남자는, 분홍색의 셔츠를 입고 있었지.

 

막상 나오고보니 밖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새장 안에 갇힌 새가 그리워했던 세상과도, 탑 꼭대기 방에 갇힌 머리 긴 미녀가 궁금해했던 세계와도 달랐다. 창으로는 햇살이 들어오고, 늘어진 복도 바닥에는 햇살이 자리를 만드는, 그 주위로 온기가 퍼지는, 어울리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묘하게 지나가고 싶은 그런 곳.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길이 없는 복도를 따라 주욱 걷자, 복도의 끝에 다다랐고 계단을 마주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바라보다 홀린 듯 또 걸음을 옮겼다.

 

오소마츠의 방문과는 다른 커다란 문이 보였다. 문을 만든 나무의 색도 더 짙고, 새겨진 문양도 달랐다. 기익 ― 역시 그녀에게만 들릴 아주 작은 소리로, 문이 서서히 열렸다.

 

초록빛이 가득한 정원에 들어서기 전, 메이는 조금 신기한듯 주위를 돌아보았다. 저 울타리 너머에는 숲이 있었다. 그 울창함 못지 않게 빼곡한 녹색의 정원에는 곳곳에 색색의 식물들이 있었다. 빨간 것은 장미일까, 저 노란 것은 개나리려나? 꽃에 그다지 지식이 없는 메이는 그 모든 것을 눈에 꾹꾹 눌러담으며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아치형의 울타리가 눈에 보였다. 그 아치형의 울타리가 자리하고 있는 곳은 정원의 한 구석이었다. 근처에는 사람이 지나다닐 만한 통로가 없고, 바로 뒤에는 창문 하나만 뚫려있는 벽이 있었다. 저런 곳에 왜 저런 게 세워져있지? 오랜만에 어떠한 이어지는 것 없이 떠오른 순수한 호기심을 자각하지 못하고 메이는 몸을 움직였다.

 

고양이. 고양이들이었다.

 

충분히 사람에게 길들여진 고양이들은 낯선 얼굴에도 흩어지지 않고 나른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켰다. 다가온 몇몇의 고양이들은 홈슬리퍼 하나에 의지하고 있는 맨다리의 발목에 스윽 몸을 비볐다.

 

 

"…안녕?"

 

 

지나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이건 그냥 꿈 때문이야. 조금 약해진 마음에 생겨난 틈으로 새어들어온 약간의 미련 때문이야. 메이는 조금 전 의식을 잃었을 때 꾸었던 꿈을 애써 생각하지 않으려 애썼다.

 

몸을 웅크리고 손을 뻗자, 조금 더 많은 수의 고양이들이 몸을 가까이 해왔다. 아아, 부드러워, 귀여워. 그 생명체들의 윤기나는 등을 한 번씩 쓸어주며 메이는 옅게 웃었다. 혹시, 너희 중에 있어? 내가 처음으로 슬퍼했던 죽음이, 너희 중에 다시 태어났어? 그래서, 아까 내게 보인 거야?

 

말도 안 되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메이는 니야아― 그렇게 울며 쿠션이 놓인 의자 위에서 얼굴을 돌리며 바라보는 고양이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어쨌든 고양이와 오랜 시간 지냈었다. 무슨 눈인지는, 대충 알 수 있다. 응, 앉으라는 거지? 고마워. 메이는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등을 기대보았다.

 

꾸물거리며, 다른 고양이들보다 확연히 작은 아기고양이가 그녀의 치맛자락을 쭈욱 잡아당기다 메이의 다리에 몸을 기대고 누웠다.

 

아아―, 어떡해, 참을 수 없어.

 

 

"너희만한 친구가 있었는데, 나도… 있었는데…"

 

 

이제 없어, 없어져버렸어. 지금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알 수 있어. 나 때문에, 없어져버렸단 걸.

 

뚝뚝 눈물이 떨어졌다. 참아내던 눈물은 예상치못한 곳에서, 예상치못한 일 때문에 터졌다. 눈물샘은 일정한 양의 물밖에 보관할 수가 없어서, 결국 꼼짝없이 넘쳐버려지는 물은 하염없이 흘렀다.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알지 못해서 미안해… 너무 늦어서 미안해…"

 

 

말조차 섞을 수 없었던 동물이, 알지도 못한 채 죽어버렸을 때. 사실, 밤마다 침대에 묶여 떨어지는 불쏘시개를 몸으로 받아내고 처지는 피부에 또다시 같은 아픔이 가해졌을 때보다, 키우던 고양이가, 오빠가 만들어준 친구가 사라졌을 때, 그때 그녀는 더 많이 울었다.

 

오빠이기도, 가족이기도, 친구이기도 했다. 말도 못하면서 마음이 아플 땐 옆에 달라붙어와 애교를 부려주고, 알아듣지도 못하면서 누군가 그리울 땐 품에 안겨와 재롱을 떨어주었다.

 

그런 네가 죽어버린 게, 내가 죽어가던 것보다 더 슬퍼서.

 

 

"있지이―, 나도, 알아… 윽. 내가 갈 곳은 정해져 있고… 난, 그러니까, 얼른, 죽어야 하는데… 나도 아는데, 아주 잘 알거든. 흐윽, 근데… 결국 나도 똑같은 인간이니까. …구원같은 거, 생각할수도 없으니까… 결국, 저주였으니까. 안단 말이야아―."

 

 

바람이라도 솨아 ― 불어와 녹색빛의 모든 것들이 흔들리기라도 하면, 그 자연의 소리에 끅, 끅, 몰래 흐느끼는 소리는 묻혀버렸다. 다행이었다.

 

 

"…아직은, 싫어. 이기적이지만, 아직은, 무서워. 읏…! 아직은, 내가 죽어 가야할 곳의 근처에서, 날 기다릴 그 사람을, 너를… 볼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내가 갈 곳은 뜨겁고 고통스러운 그 곳 뿐이니까. 하지만 그 사람과 네가 있을 그 곳은 따뜻하고 평화로운 곳일 테니까. 어쩌면 내 몰락한 마지막을 보기 위해 날 기다리고 있을 그 사람을, 너를, 볼 수가 없어.

 

 

"…미안해애―, 이기적이라서… 비겁해서… 결국 나도, 그 새끼와 다를 게 없어서 미안해… 흑."

 

 

언제쯤 끝낼 수 있을까, 나의 저주를. 얼마나 감당해야 할까, 나의 죗값을. 이런 질문조차 사치라는 것을 너무 잘 알아서, 메이는 무릎 사이에 머리를 파묻었다.

 

너무 울어 눈이 채 다 떠지지 않고, 코가 막혀 입으로만 호흡이 가능해지게 될 때까지도 눈물에 감각까지 젖어버린 메이는 눈치채지 못했다.

 

벽면에 달린 창문이 어느새인가 살짝 열려, 그 안으로 들어간 바람이 파란 셔츠를 흔들고 있던 모습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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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정찰 담당은 쥬시마츠와 쵸로마츠였지만, 아침식사 중 장난을 치다 쵸로마츠의 스마트폰을 카레에 빠뜨려버린 오소마츠에게 단단히 화가 난 쵸로마츠는 멋대로 제 역할을 오소마츠와 바꿔버렸다. 메이가 온 후로는 어쩔 수 없는 조직간의 거래 또는 대련을 제외하고는 정찰을 잘 나가려하지 않는 경향이 생겨버린 오소마츠에 대한 벌이었다.

 

오소마츠는 구에에―! 이상한 소리를 내면서도 한 일이 있어 별다른 저항은 하지 못하고 활기차게 왓세왓세―를 연발하는 쥬시마츠에게 짐짝처럼 들어올려져 끌려나갔다. 얼마 전 구역에서 나돌기 시작한 신종마약을 모조리 압수해 실험에 몰두하고 있는 이치마츠는 메이를 살펴보고 아침식사를 마친 후 다시 제 연구실로 돌아갔고, 토도마츠는 쵸로마츠의 스마트폰을 손보기 위해 가져갔다.

 

한창 연구 중에 메이의 일로 이치마츠를 끌고 오기도 했고, 토도마츠에게도 역시 연락했다가 잔소리 폭탄을 맞을 걸 알아서인지, 오소마츠는 눈치를 보다 오소마츠가 미뤄둬 쵸로마츠에게 부탁받은 적당량의 서류를 처리하고 있을 카라마츠에게 연락했다. 메이가 일어나면 식사와 약을 챙겨달라고, 어쨌든 아직 아픈 와중이니 웬만하면 의외로 음식을 잘 만드는 카라마츠가 죽을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절대 직접 가서 식사를 하게 하지 말고 그 역할은 쵸로마츠에게 부탁해달라고, 마지막엔 망할 파란 고릴라, 라고 하트까지 붙여가면서 오소마츠가 남겨놓은 부탁인지 욕인지 모를 메신저를 바라보며 카라마츠는 문득 손 안에서 부러진 펜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이런, 쵸로마츠가 준 펜인데, 아깝게 됐군.

 

오소마츠를 때리겠다는 다짐 하나로 손 안에서 가볍게 부러진 펜을 대충 쓰레기통에 버려놓고, 카라마츠는 조금 남아있는 서류를 바라보고 생각을 정리했다. 이 정도면 그 아이에게 줄 죽을 만들고, 그 아이의 상태를 확인하고, 뒤는 쵸로마츠에게 부탁하고 와서도 충분히 금방 끝낼 양이다. 카라마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소마츠가 본다면 켁―! 구려―! 그렇게 놀려댔을 앞치마를 챙겨입고서 카라마츠는 익은 솜씨로 죽을 뚝딱 만들었다. 그 아이가 어떤 것을 좋아할지 몰라 형제들 중 죽을 가장 좋아하는, 그 중에서도 계란죽을 가장 좋아하는 이치마츠를 떠올리며 계란죽을 만들어 끓이다가, 어째서 그 아이의 취향까지 고려하며 죽을 만들 정도로 헌신적이게 된 거지, 그렇게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단순한 카라마츠는 어쨌든 진심으로 음식을 만드는 편이었고, 후룩 맛본 계란죽이 스스로도 자랑하고 싶을 정도로 맛있게 된 것에 만족해버리는 바람에 그 의문을 바로 잊어버렸다.

 

1인분의 식사를 차려 쟁반 위에 올려놓고, 카라마츠는 문득 동물적인 감각으로 밖에서의 기척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조심히 문을 열어 그 주인을 확인한 카라마츠는 굵은 눈썹을 움찔거리며 헛것을 본 건가 싶어 눈을 크게 떴다.

 

절대 오소마츠의 방 밖으로 나오지 않던 메이가 정원의 문을 열고 있었다.

 

도망치려는 건가. 몸을 밖으로 빼내려던 카라마츠는 아니, 아니다, 자리에 멈춰섰다. 도망치는 것이라고 보기에는 움직임이 재빠르고 치밀하지 않았다.

 

잠시 문턱에 서서 정원을 둘러보나 싶던 메이는 무언가를 향해 몸을 움직였다. 문이 소리없이 닫히고, 카라마츠는 닫힌 문을 지나 창문으로 향했다. 메이가 바라본 쪽에 있는 것은, 이치마츠와 쥬시마츠가 휴식을 취할 때 찾는 고양이들의 자리였다.

 

그 곳과 가장 가까운 창문으로 다가간 카라마츠는 기척없이 조용히 창을 열었다.

 

고양이들을 내려다보는 얼굴에는 옅게 미소가 그려져있었다. …저 녀석, 저런 표정도 가지고 있었군. 카라마츠는 가늘게 뜬 눈으로 평소와 다르게 물러보이는 메이를 살폈다.

 

카라마츠는 토도마츠가 회의에서 보여주었을 때 말고는, 메이가 갇혀있을 때조차 한 번도 메이를 본 적이 없었다. 어린 쥬시마츠가 메이와 함께 있던 장면도 본 적이 없어서, 카라마츠는 메이가 어린 쥬시마츠에게도 그런 표정을 지어주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혼자 인사를 건네고, 뭐라뭐라 중얼거리던 메이는 이윽고 자리에 앉았다. 언젠가 이치마츠가 당장 의자를 만들어달라며 총을 겨누고 쥬시마츠가 그 옆에서 배트를 들고 감시하던 통에 열과 성을 다해 만들었던 의자였다.

 

고양이들이 메이의 몸으로 몰리나 싶더니, 움직임이 잠잠해지자 어느새, 메이는 울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서, 신기했다. 눈은 치켜만뜨고 입으로는 욕만 내뱉고 손과 발은 휘두르기만 하던 여자가, 둥그래진 눈으로 눈물을 흘리며 입으로는 죽는다던가 저주라던가 자신을 채찍질하는 말을 하며 손은 그 와중에도 고양이들을 조심히 쓰다듬어주는 광경이. 오소마츠가 봤다면 당장이라도 달려갈 장면이었다.

 

듣자하니, 쌓였던 것을 터뜨리는 것처럼 흘려버리는 말은, 언젠가 쥬시마츠가, 그녀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슬픈 이야기가 가득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던 말이 진짜려나, 하고 생각해버리게 만들어서 카라마츠는 한동안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갈 곳은 한 곳 뿐이라니, 어서 죽어야 한다니, 카라마츠는 그런 말의 뒷면을 알고 있었다. 지금은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그가 사랑하는 형제들 중 유독 서투른 만큼 어두운 면이 깊은 이치마츠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었다. 자신을 지칭하며 쓰레기라던가, 죽은 생선 눈깔의 사신이라던가. 카라마츠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믿는다던가, 그런 이야기로 맞기도 하고 내던져지기도 했지만, 이치마츠가 속으로는 그런 말에 그나마 자신감을 얻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카라마츠는, 너무 울어 눈을 비벼대면서, 코가 막혀 입으로 후우―, 후우―, 호흡하는 메이를 보고 창문을 닫았다. 이윽고 정원의 문으로 향해 걸어가 그 문을 열어버린 건, 무심코였고, 충동이었다.

 

 

 

 

불쑥 내밀어진 손수건은 새파랬다. 그와 비교되는 모퉁이에 박혀진 초록색의 소나무 모양 자수는, 잠시동안 메이의 시선을 잡아끌었다.

 

 

"눈이 많이 부었군."

 

 

목소리가 재촉했다. 메이는 무거운 눈으로 그제야 손수건을 내미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슈퍼 고릴라?"

 

"…나를 말하는 건가?"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내뱉은 말이 맴돌아 흩어졌다. 그제야 상황파악이 끝난 메이는 표정을 굳히며 손수건을 건네오는 손을 툭 쳐냈다.

 

 

"까칠한 레이디군."

 

"말투 기분 나빠."

 

"훗, 그건 많이 듣는 말이라 논-데미지다."

 

 

그땐 우락부락해서 몰랐는데, 이제 보니 조금 미친놈같다. 메이는 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둥그래진 눈이 다시 날카로워진 것을 보고 카라마츠는 몸을 숙여 직접 손수건을 그녀의 손에 쥐어주었다.

 

 

"뭐,"

 

"그런 얼굴로 그런 표정 지어봤자, 전혀 무섭지 않다."

 

 

제 할 말만 하고 다시 물러나는 몸을 보며 메이는 손에 쥐어진 손수건을 내려다보았다.

 

 

"꾹 참고 있었나보군."

 

"…네놈이 뭘 알아."

 

"아아. 아무것도 모르지. 들은 것이라고 해도 죄다 이해할 수 없는 너 혼자만의 독백 뿐이니."

 

 

윽, 결국 들었단 거잖아. 메이는 고개를 들어 카라마츠를 째릿 노려보았다.

 

 

"아까 고양이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더군. 난 너에게 그런 표정이 있는 줄 미처 알지 못했다."

 

"레이디를 훔쳐보는 건 나쁜 버릇이야, 슈퍼 사이코 고릴라."

 

"…아무래도 그건, 역시 나를 가리키는 호칭인 것 같다만."

 

"눈치도 더럽게 느리네."

 

 

고개를 팩 돌려버리는 메이의 손에 꽉 붙들린 손수건을 힐끗 바라보고 카라마츠는 셔츠 맨 윗 단추에 걸어놓았던 선글라스를 집어들었다. 솔직히, 손에 쥐어주자마자 내던져 짓밟아버릴 줄 알았는데 말이지.

 

다짜고짜 시야가 어두워졌다. 물체가 보이긴 하는데, 색이 검게 변해버린 세상에 메이는 화들짝 놀라 어깨를 떨었다. 정신을 차렸을 때, 눈가에 선글라스가 걸쳐져있다는 것을 알고 메이는 눈을 깜박였다.

 

 

"많이 울면 눈이 붓지. 그렇다고 함부로 문지르면 아프다."

 

"…기분 나빠."

 

"더군다나 그 눈으로 태양 아래 서있는 나를 올려다보는 것은 눈에 엄청난 무리를 줄 거다. 그러니 째려보려거든, 그걸 끼고 봐라."

 

"…당신, 포인트가 이상하네."

 

 

카라마츠의 나름의 배려가 무색하게 메이는 고개를 올려 그를 노려보지 않았다. 다만 선글라스도 벗지 않았다. 퉁퉁 부은 눈도, 운 자국이 생겨버린 빨간 눈 주변도, 조금은 헐렁한 이 선글라스가 무리없이 감싸주는 것에 잠시 기대었다.

 

 

"더 쏟아내고 싶다면, 자리를 비켜줄 수도 있는데."

 

"닥치고 꺼져."

 

"훗. 속이 풀릴 때까지 터뜨리라고."

 

"당신부터 터뜨리기 전에 꺼지라고."

 

 

평소에 오소마츠에게 이런 식으로 대하는군. 형님, 멘탈 괜찮은 건가? 하지만 카라마츠는 어차피 괜찮겠지, 하고 자문자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식하고 가벼워보이지만 눈치빠르고 사실은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은 형이 사랑하는 여자이기도 하고, 이런 날카로운 말을 하면서도 제가 씌워준 선글라스를 고쳐쓰고 제가 억지로 쥐어준 손수건으로 뺨에서 말라붙어가는 눈물을 닦아내는 모습은 전혀 날카롭지 않았기 때문에.

 

 

"진정되면 다시 보스의 방으로 올라가도록 해."

 

"…웃기네. 내가 이대로 도망치면 어쩌려고 그냥 등 돌려 가는 거야?"

 

"도망치지 않을 거잖아?"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하지?"

 

"지금까지도 도망치지 않았으니까."

 

"읏,"

 

"믿고 있다고."

 

 

바앙― 손으로 총을 만들어 자신에게 무언가를 쏴보이고는 그대로 몸을 돌려 돌아가버리는 카라마츠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메이는 허리에 손을 가져다댔다. …방금 저 손으로 만든 하찮은 가짜 총에서 진짜 뭔가가 쏴진 것 같아, 갈비뼈가 부러진 느낌이야. 조금 아플지도…?

 

메이는 헛웃음을 뱉었다.

 

막무가내로 이 곳의 사람이 되던가, 제 여자가 되어버리라는 멍청한 빨간 녀석도 그렇고, 자신에 대해 뭘 얼마나 안다고 함부로 믿는다는 소리를 지껄이는 사이코같은 파란 녀석도 그렇고. 이 곳에는 미친놈들 뿐이다. 마츠노 가가 정신병자들의 소굴이라는 정보는 없었는데.

 

고양이들의 등을 한참 왔다갔다거리던 손이 멈추었다. 메이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얼마나 울었던지, 순간 머리가 띵하더니 몸이 휘청였다. 벽에 손을 짚어 몸을 지탱하고서 메이는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얼굴의 열이 점점 가라앉는 것 같았다. 선명해지는 시야가 어두웠지만, 선글라스는 역시 벗지 않았다.

 

딱히 당신이 진정되면 돌아가라고 해서 돌아가는 건 아니야. 애초에 도망이라도 치려면 지금 당장이라도 칠 수 있지만, 당신의 멍청하지만 미쳐보이는 보스가 시끄럽게 난장을 치고 지구 끝까지라도 쫓아올 것 같아서 시끄러워질까봐 돌아가는 거야. 알았어? 알았냐고, 이런 망할 파랑 슈퍼 사이코 고릴라.

 

돌아오지 않을 대답을 기대하지 않고 욕을 퍼부으며 메이는 비틀비틀 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