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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마피아마츠] 마피아의 지도

[마피아마츠/오소마츠상 소설/마피아마츠 소설(おそ松さん Novel )] 5. 쥬시마츠의 비밀_2

※ 세계관을 포함해 충분히 다른 설정.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마피아마츠

# 유메마츠

# NL마츠

# 쥬시마츠

# 마피아AU

 

 

마피아의 지도 5

 

 

 

 

메이가 눈을 뜨면 어린 쥬시마츠의 얼굴이 있었다. 그는 메이의 핼쑥한 볼을 쿡쿡 찌르며 환하게 웃었고, 메이는 잠에서 바로 깨지 못해 간혹 쥬시마츠에게 위험하다던가, 도망가라던가의 말을 건넸다.

 

쥬시마츠는 며칠동안 메이를 관찰하며 몇 가지를 알았다. 예를 들면, 메이는 비몽사몽한 채로 깨자마자 건네는 말을 잠에서 완전히 깨었을 때는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 그래서 쥬시마츠는 그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은 척 표정을 갈무리해야 했다.

 

또 하나는 메이는 웅크리고 앉을 때 옷 안에 무릎을 넣는다는 것. 보통 치마를 입고 지내는 메이는 쥬시마츠와 게임이라도 하기 위해 바닥에 내려와 앉게되면 반드시 옷 안에 무릎을 넣고 치맛자락이 엉덩이를 덮도록 주욱 내렸다. 메이에게 원피스만 가져다주는 이유는 갈아입기 쉽게 하기 위해, 그리고 다리에 있는 상처들을 조금이라도 덜 자극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알고 있는 쥬시마츠는 메이에게 물품을 조달해주는 역할인 쵸로마츠와 카라마츠에게 원피스 중에서도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원피스를 부탁했다. 그래야 굳이 애쓰지 않아도 긴 치마가 바닥까지 덮어줄 테니까.

 

메이와 급속도로 친해져 그새 메이에게 많이 녹아들어간 쥬시마츠는 조직으로 돌아가면 간혹 울적해했다. 틈만 나면 오소마츠에게 정말 메이를 데려오는 게 맞냐며 확인을 했고, 오소마츠는 그럴 때마다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지나친 게 아닐까 걱정하는 정도였다.

 

하지만 메이는 여전히 음식을 먹고 게워내고를 반복하고 있어서, 쵸로마츠는 내심 의심했다. 마피아의 지도라는 타이틀이 사실이라면, 어쩌면 쥬시마츠에 대해서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고, 그에 대해 알고 있다면 쥬시마츠에게 친절히 대하는 것도 전략이 아닐까 충분히 의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쥬시마츠의 임무 마지막날, 쵸로마츠는 토도마츠와 함께 화면 앞에 앉았다.

 

토도마츠는 쵸로마츠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이해하긴 했지만 적일 수도 있지 않겠냐는 가능성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건 아니지 않을까?"

 

"어째서?"

 

"여기 갇혀지낸지 거의 이주 째인데, 여전히 살 의욕은 없어보이고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잖아? 저 애를 노리고 온 많은 조직은 부숴졌고, 단 한 조직도 저 애와 엮이고 무사하지 못했어. 직접 제 조직을 없앤 게 다른 조직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라고 해도, 그럼 왜 지금이야?"

 

"우리가 나서주길 기다린 걸 수도?"

 

"하지만 전에 쵸로마츠 형이 그랬잖아, 우리가 들어가는 걸 몰라서 우연히 자기 계획에 끌어들인 우리를 구해준 걸 수도 있다고?"

 

"그건,"

 

"그 부분에 대해서는 확실히는 모르겠지만, 일단 우리까지 위험해지게 만들었어도 결과적으로는 구해줬고? 지금껏 저 애에게 접근했던 수많은 조직들 중에 저 애를 영입하려던 조직이 하나도 없었을까? 오히려 전부 다 그런 목적이었을 수도 있지. 그러니까 납치도 됐던 거고."

 

"…그렇긴 해. 하지만 린도 조직에서의 자신에 대한 취급이 싫어서 폭발한 걸 수도 있잖아."

"린도 메이가 아리요시 류이치의 공식적인 약혼녀가 된 시점부터 계산해보면 타이밍이 이상해. 약혼녀가 되고 미끼작전이 실행한지는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동안 린도 조직과 부딪힌 조직은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만 해도 9개가 넘어."

 

"흐음."

 

"그리고 무엇보다 아무리 힘이 없는 보스라고 해도 자기 오빠까지 포기해버린 게 마음에 걸려."

 

"하긴. 쥬시마츠랑 이야기하는 걸 보면 가족을 그리워하는 것 같기는 한데. 괴로워보이지?"

 

"내 말이."

 

 

분명 무언가 더 있어. 토도마츠는 중얼거렸다. 쵸로마츠는 며칠 전 메이에게 다녀왔다 돌아와 보고하며 쥬시마츠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분명 메이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어. 아마도 그건, 우리 생각과 달리 나쁘지 않고 슬픈 걸 거야.

 

쵸로마츠는 잠에 빠진 메이를 보며 방방 뛰는 화면 속의 쥬시마츠를 바라보았다. 오늘이, 마지막이다. 쵸로마츠는 쥬시마츠에게 들려보낸 작은 상자에 시선을 두었다.

 

 

.

 

 

.

 

 

.

 

 

.

 

 

.

 

 

"이거 나 주는 거야?"

 

"응! 선물!"

 

 

메이는 쥬시마츠가 내민 도시락을 바라보았다. 하얀 쌀밥 위에 김으로 써진 이름에서 윤기가 흘렀다. 손질되어 구워진 소세지는 귀여웠고, 오랜만에 보는 계란말이는 쥬시마츠의 옷만큼이나 노랬다. 빨갛고 작은 미니토마토를 하나 집어든 쥬시마츠가 메이에게 손을 뻗었다.

 

 

"아―앙!"

 

 

그가 내민 손을 가만히 바라보던 메이는 작게 웃었다. 아, 저 웃음. 쥬시마츠는 가끔 메이가 저렇게 웃을 때마다 제 눈썹이 내려가는 것을 알았다. 그 반사적인 습관같은 행동을 고치려고 처음에는 노력했지만, 곧 관두었다.

 

쥬시마츠는 할 수 있는 한 그녀에게 솔직하고 싶었다. 정말 친구처럼, 정말 소중한 사람처럼. 육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궁지에 몰려있는 메이에게는 지금 쥬시마츠의 표정을 살필 만한 여유가 없어서 메이는 알아채지 못했지만, 쥬시마츠는 한 번씩 이야기해주었다.

 

 

"메이가 그렇게 슬프게 웃으면, 나는 이렇게 눈썹이 내려가. 슬퍼!"

 

 

재촉은 아니었지만, 메이는 머뭇거리다 입을 벌렸다. 입에 쏙 들어간 미니토마토를 씹지 않고 혀로 굴리던 메이는 쥬시마츠의 반짝반짝 빛나는 눈동자를 보고 이를 움직였다. 새콤한 맛이 입 안을 휘감았다. 오랜만에 활발해진 미각은 입 여기저기에 남은 맛을 끝까지 쫓았다.

 

쥬시마츠는 그녀가 또 화장실로 달려갈까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보았다. 다행인 건지 참고 있는 건지 메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소세지 하나를 더 집어들었다.

 

 

"맛있다."

 

"맛있어!?"

 

"응, 정말 맛있어. 고마워, 카이."

 

 

아아. 맞다, 나는 메이에게 카이구나. 쥬시마츠가 천천히 웃었다. 오늘이 지나면, 진짜 내가 나로서 너를 만날 수 있을까? 근처 마을에서 사는 평범한 어린이 카이가 아니라, 마츠노 쥬시마츠로서 너와 웃을 수 있을까?

 

 

"타하―! 형―아랑 같이 만들었어! 메이랑 같이 먹으려고 만들었어!"

 

"형아랑?"

 

"응! 우리 형―아도, 나도 음식은 잘 못 만들어서 이것저것 시도해봤는데 다 새까맣게 돼서! 그냥 이것들만 했어! 아, 이것도 정말 열심히 만들었어!"

 

 

쥬시마츠는 밥 위에 쓰여진 이름을 가리켰다. 메이는 그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쥬시마츠가 칭찬해달라며 머리를 들이밀어서 메이는 천천히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쥬시마츠의 머리에서는 시원하고 달콤한 향이 났다.

 

 

"근데 있잖아아―? 메이는 왜 나가지 않는 거야?"

 

 

쥬시마츠의 질문에 메이는 가만히 손길을 멈추었다. 그런 반응을 예상하고 있던 터라 쥬시마츠는 멈춘 메이의 손바닥에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굳이 나가고 싶지 않아서."

 

"왜애―? 밖에는 시원한 바람도 불고? 귀여운 동물 친구들도 있고?"

 

"창문만 열어도 시원한 바람은 불고, 동물… 친구들은…"

 

 

메이는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열린 입에서 나올까 말까 갈팡질팡하는 뒷마디를 쥬시마츠는 빤히 바라보았다.

 

 

"나만 있으면 되는 거야아―? 내가 메이의 유일한 친구인 거야?"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하며 활짝 웃어보였다. 메이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옅게 웃고서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마음이 불편한 것 같아."

 

"마음이? 왜?"

 

"내가… 어떤 일을 했거든."

 

"일? 나도 알고 싶어! 메이가 한 일에 대해 궁금해!"

 

"…좋은 일이 아니야. 앞으로도 이런 마음을 가지고 살아야하는 일이야."

 

"나쁜 일이야?"

 

"응, 나쁜 일."

 

 

메이는 그렇게까지만 말하고 고개를 돌려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쥬시마츠는 데굴 눈동자를 굴렸다. 소중한 형제들의 시선이 옹기종기 모여있을 곳을 힐끔 바라보고서 쥬시마츠가 말했다.

 

 

"하지만 메이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잖아!"

 

 

쥬시마츠의 말에 흐려지던 눈동자가 번뜩 선명해졌다. 빠르지않게 돌아와 어린 쥬시마츠를 바라보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걸렸다. 조그맣게 고개를 주억거리며 메이가 말을 마무리지었다.

 

 

"그냥, 그런 기분이 들어서."

 

"…메이는 말이야?"

 

 

쥬시마츠의 노란 소매가 입가를 가렸다.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 입에서 나온 목소리는 전에 없이 성숙했다.

 

 

"살고싶지 않은 거야?"

 

 

뜬금없는 물음이었지만 메이는 그 말을 들은 순간, 그 한 마디로 머릿속이 꽉 찰 정도로 사로잡혀 조금은 섬뜩할 정도로 악의없는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살고싶지 않냐고?

 

죽고싶냐고?

 

메이는 몇 번을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그것이 너의 소망이었나, 그것이 너의 원하는 것이었나,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알기를 원하지도 않았던 것을 제대로 마주했다. 그제야 불편한 몸 여기저기가 느껴졌다.

 

메이는 어린 아이를 바라보았다. 너는 날 돌아보게 하는구나, 너는 날 즐겁게 하는구나, 너는 날 아프게 하는구나, 너는 날 외롭게 하는구나, 너는 날 죽고자도, 살고자도 하는구나.

 

 

"…그럴지도,"

 

 

그 자조적인 목소리가 걸린 미소가 쓰라렸다.

 

이제, 해야 해. 쥬시마츠는 잠시 입을 꾸욱 다물었다.

 

 

"있잖아? 메이."

 

"응, 카이?"

 

"나, 이제 여기 못 올 것 같아."

 

 

쥬시마츠의 머리 위에서 손이 문득 멈추었다. 쥬시마츠는 조금 심장이 덜컹이는 것을 느꼈다. 이제 못 온다는 말에 네가 반응했다는 건, 너도 나에게 마음을 열었다는 뜻이겠지? 내가 너와 정말 친구가 되었다는 뜻이겠지? 그럼, 나를 위해 더 살아줄 수 없을까? 수많은 말이 나가기 위해 입천장을 콩콩 두드렸다.

 

안돼, 안돼. 이런 말들은 안돼. 쥬시마츠는 꿀꺽 침과 함께 뭉쳐있던 말을 삼켰다.

 

 

"마을을 떠나게 됐어."

 

"…떠나?"

 

"이사를 가게 됐거든."

 

"아…."

 

 

머리에 손이 올라와있어서 쥬시마츠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쥬시마츠가 고개를 숙이고 있어서 메이는 그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쥬시마츠는 꾸욱 주먹을 쥐었다.

 

 

"그래서 말인데, 메이."

 

"응. 듣고 있어."

 

"살고싶어해주지, 않을래? 그래서 여기서 나가지 않을래?"

 

"뭐?"

 

"나는 이 곳에 있지 않겠지만, 내가 좀 더 크면 반드시 메이를 만나러 다시 올게! 그러니까… 이 곳이 아니라 저 바깥에서 나를 기다려줄래?"

 

 

메이는 눈을 크게 뜨고 깜박였다. 쥬시마츠는 메이의 표정을 볼 수 없어 눈을 질끈 감았다. 마치 좋아하는 사람에게 고백하고 답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쥬시마츠는 메이의 반응을 기다렸다.

 

머리를 감싸던 손이 떨어지나 싶더니 몸이 기우뚱 기울었다. 와앗! 쥬시마츠가 메이의 품으로 떨어지고, 메이는 두 손으로 쥬시마츠의 머리를 마구 헝클였다.

 

 

"꺄―아! 간지러워!"

 

"기다릴게, 카이."

 

"정말?"

 

"응. 카이가 그렇게 크면 나는 아줌마가 되어있겠지만. 그때도 나랑 친구해주겠다고 약속하면?"

 

"야, 약속이야! 꼭 친구가 될 거야! 메이랑 나는 영원한 친구인걸! 베스트 프렌-드!"

 

"하하, 응―, 맞네―. 베스트 프렌-드."

 

 

메이가 환하게 웃었다. 쥬시마츠는 메이의 품에 안겼다.

 

처음 보는 얼굴, 처음 보는 목소리, 처음 보는 미소. 내일이면 다시 만날 수 있을텐데, 진짜로 헤어지는 게 아닌데 쥬시마츠는 주륵 눈물을 흘렸다. 울지마- 메이는 여전히 처음 듣는 목소리로 쥬시마츠를 꼬옥 안았다.

 

기다려달라는 말에 대답한 기다리겠다는 말이, 더 살아보겠다는 허락처럼 들려서 쥬시마츠는 메이의 품에 안겨 소리없이 울었다. 이 안에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햇살같은 내가 전부 녹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쥬시마츠는 조금 더 그녀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메이는 그런 쥬시마츠를 토닥였다.

 

한참 울다 떨어진 쥬시마츠는 옷에 스며든 눈물이 제 얼굴처럼 자국을 만들어놓은 것을 보고 새빨개진 얼굴로 헤헤 웃었다. 메이는 울지 않았다.

 

어느새 비워진 도시락통을 들고 온 상자에 다시 넣었다. 우물쭈물하며 입을 오물거리던 쥬시마츠는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섰다. 메이는 일어서고 나서야 자신보다 키가 커진 아이를 올려다보았다.

 

 

"…이제 가야해."

 

"응."

 

"나 보고싶다고 울면 안돼!"

 

"카이야말로, 조금 전처럼 울면 못생겼다고 놀림받을걸?"

 

"모, 못생기지 않았는걸! 울지 않았어!"

 

"그럼 여기 이건 뭘까?"

 

 

장난스럽게 웃으며 메이가 제 옷을 가리켰다. 쥬시마츠의 얼굴이 또 새빨갛게 상기되었다.

 

 

"그, 그건! 그건 침임다!"

 

"우와―. 더러워."

 

"더, 더럽지 않아! 내 침은 깨끗해!"

 

"응, 알았어. 맞아, 카이의 침은 깨끗해."

 

"…이제 진짜! 진짜 갈 거야!"

 

"응. 카이, 잘 가."

 

 

메이는 손을 흔들었다. 그녀의 눈가에는 조금의 물기도 스미지 않았지만 쥬시마츠는 그녀가 슬퍼하고 있는 걸 알았다. 그래서 자신만 아쉬워하는 것 같아 억울해도, 끝까지 웃을 수 있었다.

 

 

"고마워. 카이."

 

"나도! 나도 고마워! 메이!"

 

"안녕."

 

"안녕이 아니야!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 또 보자야! 또 보자!"

 

"응. 또 보자."

 

 

쥬시마츠는 문을 열면서도 몇 번이나 뒤를 돌았다.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로 메이는, 쥬시마츠가 문 너머로 사라지고 문이 닫힐 때까지 한동안 손을 흔들었다.

 

갔다.

 

가버렸다.

 

 

예쁜 이름이네! 메이! 반가워! 메이!

 

나랑 놀지 않을래?

 

눈이 울고 있어. 눈이 슬퍼하고 있어. 메이가, 슬퍼하고 있어.

 

메이랑 친구가 되고 싶어!

 

내가 이 소중한 것들을 메이한테 나눠줬으니까, 이제 메이도 소중한 사람이야! 그러니까 나는 맨날맨날 메이를 보러 올 거야!

 

이제 메이는 내 친구야! 있잖아~ 내 친구가 되어줄래?

 

메이! 잘자!

 

 

어린 목소리는 천진난만했다. 환한 웃음은 해맑았고, 이 좁은 공간에서 통통 튀어다니는 몸은 자유로웠다. 쥬시마츠가 빠져나간 공간이 서늘했다.

 

응, 조금, 쓸쓸할지도. 메이는 가슴에 손을 얹었다. 가슴에 얹었던 손이 점점 내려갔다. 어느새 배를 쓸어내리며 메이는 알아차렸다. 속이 쓰리지 않았다.

 

 

여기서 나가지 않을래?

 

이 곳이 아니라 저 바깥에서 나를 기다려줄래?

 

메이랑 나는 영원한 친구인걸! 베스트 프렌-드!

 

우리는 또 만날 거니까,

 

 

메이는 살풋 웃었다. 애절하리만치 간절했던 약속을, 해버렸다. 그 진실된 눈동자는 성숙해보여서, 손을 뻗어버렸다.

 

또, 만날 거니까.

 

메이는 습관처럼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마시고 침대로 올라갔다.

 

눈을 감았다.

 

 

 

 

.

 

 

 

 

.

 

 

 

 

.

 

 

 

 

아직도 어린이의 모습을 한 채로 이치마츠에게 안겨 엉엉 울고 있는 쥬시마츠를 바라보며 오소마츠가 손을 뻗었다.

 

 

"쥬우시마츠~ 형아 품으로 골인!"

 

"시, 흐응―, 러! 싫어! 흐어엉―!"

 

"내 동생 울린 새끼 나와."

 

"저 놈인 것 같군."

 

"카라마츠, 물어."

 

"잠깐? 잠깐만?!"

 

 

쵸로마츠가 팔짱을 끼고 도끼눈을 떴다. 이치마츠가 카라마츠에게 말하자 카라마츠가 눈을 부라렸다. 토도마츠의 뒤에 숨어서 오소마츠는 부들부들 떨었다.

 

 

"주방 쪽이 엉망이더군. 그 범인도 네놈이지? 오소마츠."

 

"쥬, 쥬시마츠도 공범이라고!"

 

"네가 형으로서 잘 이끌었어야 될 거 아니야."

 

"거기에 요리도 포함인 거?!"

 

"쥬시마츠 형이랑 오소마츠 형은 주방 출입금지야."

 

"나는 연어가 검은색인지 처음 알았어."

 

"직접 만든 도시락을 주고 싶다길래 봤더니 연구를 하고 있었을 줄은."

 

 

훌쩍거리는 쥬시마츠의 등을 두드려주며 이치마츠가 아침에 보았던 음식같은 것들을 떠올렸다. 새까만 연어, 노란 미소국, 케찹이 뿌려진 연두부… 그 기괴한 것들을 바라보며 이치마츠는 몸을 떨었더랬다.

 

쥬시마츠는 메이에게 직접 도시락을 만들어주고 싶다며 주방에 쳐들어갔다. 질 수 없다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따라 나선 오소마츠는 두 개의 팬을 태워먹고 다섯 개의 계란을 깨먹었다. 쥬시마츠보다 더한 파괴력에 그나마 멀쩡한 음식이 나온 순간, 토도마츠는 쥬시마츠와 오소마츠의 뒷덜미를 낚아채고 주방을 빠져나왔다. 음식을 도시락통에 담는 등 나머지 일은 카라마츠가 했다.

 

 

"이제 좀 진정이 됐어? 쥬시마츠."

 

"우웅…."

 

 

이치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더이상 나올 눈물이 없어 쥬시마츠는 고개를 끄덕였다. 새빨개진 눈을 비비려는데, 이치마츠가 얇은 손목을 붙잡았다.

 

 

"눈 비비지마."

 

"메이는 아까 잠들었어."

 

"그래, 그럼 마지막 작전을 실행해볼까?"

 

 

토도마츠가 태블릿을 확인하며 말하자, 오소마츠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

 

마지막 작전이 시작됨과 동시에, 또다른 작전이 시작되었다.

 

 

 

 

.

 

 

 

 

.

 

 

 

 

.

 

 

 

 

수면제를 먹고 잠든 메이는 화면보다도 더 말랐어서, 토도마츠는 누워있는 메이를 이리저리 살폈다. 치마는 들춰보지 않았지만, 화면으로 확인한 손목에 감겨있는 붕대를 보았다.

 

 

"되게 말랐다."

 

"아아. 가볍기도 엄청 가볍더군."

 

"좀 예쁘장한 것 같기도―?"

 

"오소마츠 형 앞에서는 그런 소리 하지마라. 귀찮아져."

 

"랄까 다들 좀 꺼져줄래. 방해되는데."

 

 

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뒤적거리며 이치마츠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안 그래도 오소마츠가 돕겠다는 걸 겨우 말리고 의자에 묶어둔 상태라, 그는 예민했다. 실밥도 제거해야하고, 붕대도 갈아줘야하고, 오소마츠가 부탁한 검사도 마쳐야 했다. 수면제의 약효가 유효한 정해진 시간 내에 그 모든 것을 하기 위해 세운 계획으로 이치마츠는 날카로웠다.

 

 

"수고해, 이치마츠 형―."

 

"응. 아, 쵸로마츠 형."

 

"응?"

 

"쿠소장남, 의자에 묶어놨거든. 가면 좀 풀어줘. 쿠소마츠는 그 녀석 좀 잡아두고, 이 쪽으로는 얼씬도 못하게."

 

"묶어놔? 잘했어."

 

"아아. 맡겨줘라."

 

 

쵸로마츠와 카라마츠가 토도마츠와 함께 나가고, 이치마츠는 겨우 조용해진 공간 가운데 누워있는 메이를 내려다보았다.

 

 

 

 

.

 

 

 

 

.

 

 

 

 

.

 

 

 

 

낯선 샹들리에가 눈이 아플 정도로 빛났다. 메이는 멍한 정신으로 눈을 뜨고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잠시 가만히 누워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돌아오자, 메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이불을 들춰보고 옷을 확인했다. 잠들기 전 입었던 옷은 그대로 입고 있었다. 메이는 처음 보는 공간보다 제 몸부터 이리저리 살폈다. 손목의 붕대가 너덜너덜하지 않았다. 이불 안에서 움직이던 다리에 압박감이 느껴졌다. 그는 입고있던 치마를 들췄다.

 

허벅지를 휘감고 있는 붕대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누군가, 건드렸다.

 

 

"일어났네."

 

 

어른의 목소리였다. 메이는 고개를 들었다.

 

부시시한 머리 아래로 반쯤 감긴 눈. 코에 가볍게 걸쳐진 안경 너머의 눈동자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얀 가운 안으로 보이는 보라색의 셔츠가 독특했다.

 

 

"곧 다른 녀석이 데리러 올 거야. 좀 더 누워있지 그래."

 

 

무뚝뚝한 목소리가 그녀의 몸을 눌렀지만 메이는 다시 눕지 않았다.

 

이치마츠는 자연스러운 경계심이 짙은 눈으로 아무 행동도 취하지 않는 메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경계하는 얼굴은 맞는데, 도망가려고도 하지 않고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는다. 이렇게 되든 저렇게 되든 상관없다는 건가. 성가시진 않겠네.

 

 

"이치마츠 형―, 그 애는 일어났어?"

 

"응."

 

"진짜? 아, 정말이네―."

 

 

메이는 불쑥 등장한 또다른 남자를 훑어봤다. 안녕? 인사를 건네는 남자는, 저 옆에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남자와 같은 얼굴이었다. 메이는 눈만 깜박일 뿐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이치마츠 형, 뭐 말을 잃게 한다던가 그런 이치마츠 약 쓴 건 아니지?"

 

"이치마츠 약은 뭐냐."

 

"이치마츠 형이 만드는 이상한 약 같은 거?"

 

"실험당하고 싶지 않으면 데리고 조용히 가."

 

"무서워! 어둠마츠 형! 랄까, 자. 이거부터 신어."

 

 

토도마츠는 들고 있던 슬리퍼를 메이의 앞에 내려놓았다. 슬리퍼를 힐긋 내려다본 메이는 다시 토도마츠를 올려다보았다. 생글생글 얼굴에 걸린 미소는 진짜일까, 가짜일까.

 

 

"이거 안 신으면, 내가 널 안고 가야 하는데? 괜찮아?"

 

 

토도마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메이는 고분고분 신발을 신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 몸이 휘청였다. 어이쿠. 토도마츠가 재빨리 몸을 감싸자, 메이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헤에―, 저건 진짜 무의식이었는데. 이치마츠와 토도마츠는 서로를 힐끔 바라보았다. 토도마츠가 두 손을 올리며 물러서자, 메이는 눈을 아래로 내리깔았다. 앞장선 토도마츠를 따라 메이는 걸었다. 발이 바닥에 닿을 때마다 푹신한 감촉이 따뜻했다.

 

이윽고 토도마츠는 어떤 방 앞에서 멈춰섰다. 갈색의 문은 꽤나 크고 웅장했다. 문이 열리고 토도마츠는 안으로 들어가 문을 잡았다. 메이가 들어오지 않고 머뭇거리자, 토도마츠는 생긋 웃으며 손짓했다.

 

 

"들어와?"

 

 

저벅. 메이가 한 발을 내딛어 방으로 들어오자, 토도마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엄청나게 큰 창문 너머로 짙은 초록색의 풍경이 보였다. 소파와 커다란 침대, 그 외의 가구들 중에서도 그녀는 자연스럽게 천장과 이어진 원형의 계단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계단을 향해 시선이 점점 올라갔다.

 

토도마츠는 그런 메이를 바라보고 후후 웃었다.

 

 

"정말―! 저거 만드는데 얼마나 개고생을 했다구!"

 

 

물론 난 한 게 없지만. 토도마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멀쩡한 테라스를 놔두고 뭐하러 지붕에까지 올라가서 하늘을 보겠다는 건지―. 참 보스라는 사람이 너무 어린애같다니까?"

 

 

보스? 메이는 토도마츠를 바라보았다.

 

아아, 그런가.. 메이는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 토도마츠는 그녀에게서 등을 지고 방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형은 조금 있다 올 거야. 밀린 서류들 때문에 쵸로마츠 형이 훈련시키고 있거든. 그래도 꽤 힘내고 있을걸? 그것만 끝내면 보내주겠다고 약속했다나 뭐라나."

 

 

토도마츠는 말을 멈추고 뒤를 돌았다. 메이는 어느새 침대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있었다.

 

헤에―? 저건 또 어떻게 된 적응력이야? 토도마츠는 메이를 향해 사뿐사뿐 걸었다.

 

 

"적응력이 빠른걸? 메이 쨩?"

 

"여기까지 와서 이루고자 하는 게 뭐겠어. 적응해야지."

 

"…말, 할 줄 아는구나?"

 

 

메이는 눈썹을 치켜올리고 어깨를 으쓱거렸다. 자신을 향하지 않는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이루고자 하는 게 뭔데?"

 

"너희도 꼴에 마피아라 이거지. 운이 좋네. 린도 가가 무너진 직후에 날 잡다니."

 

"예쁜 얼굴로 하는 말이 워낙 안 예쁜걸."

 

"만족시킬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보도록 할게."

 

 

하.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말투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보여서, 토도마츠는 화면 속에서 봐왔던 의욕없던 시체가 제 앞에 있는 이 여자가 맞나 순간 의심했다.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메이 쨩. 아니, 보통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거려나."

 

 

흥미없는 얼굴로 고개를 돌린 메이를 보다 토도마츠는 뒷말은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의 형제이자 마츠노 조직의 보스께서 원하시는 것은 린도 메이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했지만, 그 짐승이 말하는 마음에 그것도 포함이겠지 뭐! 토도마츠는 문을 향해 몸을 빙글 돌렸다.

 

 

"그럼, 조금만 기다리라구―."

 

 

문이 열리고 토도마츠가 나갔다. 달칵, 문 너머에서 소리가 났다. 문을 잠그든 막든 메이는 별로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더러워진 몸. 어차피 구제받지 못할 삶. 너무나 큰 죄를 저질렀고 너무나 썩어버렸다. 이런 모든 것따위, 어떻게 되든 알 바 아니었다. 세계든, 나든.

 

 

 

 

문 밖을 나와 걷던 토도마츠의 손가락에서 열쇠가 빙글빙글 돌아갔다. 휘휘 휘파람 끝에 다급한 발소리가 걸렸다. 토도마츠는 고개를 들고 한숨을 쉬었다. 우다다다 달려오는 쥬시마츠가 보였다.

 

자신의 옆을 스쳐지나가는 몸을 낚아채자, 쥬시마츠가 억큽, 이상한 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톳-티?"

 

"쥬시마츠 형, 안돼."

 

"…에에? 뭐가?"

 

"지금 그 애한테 가고 있잖아."

 

 

토도마츠가 단호하게 말하자, 쥬시마츠는 입을 다물었다. 긴 소매로 입가를 가리자 눈동자가 다른 곳을 향해 데굴 굴러갔다.

 

 

"안돼, 쥬시마츠 형."

 

"…하지만…"

 

"지금의 마츠노 쥬시마츠는 린도 메이의 친구가 아니야. 알잖아?"

 

"……."

 

"울상을 지어도 마음은 아프지만 안돼. 보스의 명령이야. 오소마츠 형이 오기 전까지는 아무도 메이를 만나게해선 안 된댔어."

 

 

쥬시마츠가 푹 고개를 숙였다.

 

 

"오소마츠 형한테 뒷일은 맡기고, 메이가 어느 정도 마음을 열게 되면 그때 다시 하자, 친구. 응?"

 

"…으응."

 

"쥬시마츠 형은 이미 메이랑 어느 정도 마음이 연결된 상태니까, 다시 친해지는 것도 쉬울 거야."

 

 

시무룩해 울먹이는 쥬시마츠를 토닥이며 토도마츠는 자리를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