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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유메마츠] Extra 松_히로인[S]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유메마츠] 4. 오소마츠의 친구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유메마츠

# NL마츠

# 오소마츠

 

 

히로인 4

 

 

 

 

메이는 주방에서 나는 소리에 걸음을 옮겼다. 자켓만 벗어놓고 앞치마를 입은 케이토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다. 팬 위에서 구워진 연어에서 모락모락 김이 났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2인분의 밥과 작은 양의 어린이용 식기가 눈에 보였다.

 

 

"분명히 난 오늘 평범하게 일어났는데 왜 오빠가 아침준비를 하고 있을까?"

 

"아, 메이. 좋은 아침?"

 

 

주방에 들어서며 눈을 비비는 메이에게 케이토가 한 손에 국자를 든 채로 손을 흔들었다. 국물 떨어져! 메이가 손을 뻗고 그의 앞으로 달려갔다. 다급하게 국자 밑을 손바닥으로 받치자 기다렸다는 듯 국물이 뚝뚝 떨어졌다. 케이토는 어색한 웃음을 짓고는 메이의 손을 닦아주었다.

 

 

"좀 괜찮아?"

 

"에? 뭐가?"

 

"어제 아팠잖아? 그래서 오늘은 오빠가 좀 힘써봤지!"

 

"그건 고맙지만… 이건 내가 할 일인데."

 

 

기어이 국자를 뺏어 그릇에 퍼담는 메이를 가만히 바라만 보던 케이토는 입을 열었다 닫았다. 뻐끔 머뭇거리는 입술 사이로 소리없이 흩어진 말은 누구에게도 닿지 않았다.

 

본인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었다. 누구에게 하려던 말인지.

 

메이가 미소국이 담긴 두 그릇을 테이블에 옮겨다놓기 위해 그를 향해 몸을 틀고서야 케이토는 웃었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서로 하는 거지."

 

"하지만 오빠는 밖에서 일하고…"

 

"넌 집에서 일하잖아. 카이 깨우고 올게?"

 

"…알았어. 고마워 오빠."

 

 

케이토는 2층으로 올라갔다. 오늘부터 시작할 프로젝트 때문에 케이토의 방에서 잠든 카이를 깨웠다. 꿈틀거리는 카이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무언가를 집어들었다.

 

 

 

 

잠시 후, 케이토는 1층으로 내려와 카이를 메이의 옆자리에 앉혀주었다. 테이블 위에는 어느덧 밥과 미소국, 연어구이와 계란말이가 자리하고 있었다. 카이는 반쯤 감긴 눈으로 누나의 손길에 따라 입만 벌리고 음식을 받아먹었다.

 

 

"아. 어제 말이야. 카라마츠네 집에서 무슨 일 있었어?"

 

"카아마츄!"

 

"아? 왜?"

 

 

케이토의 물음에 카이의 반쯤 감겼던 눈이 부릅 떠졌다.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카라마츠의 이름을 반복적으로 외치며 테이블을 탕탕 두드리는 카이를 체념한 눈빛으로 바라보던 메이는 제 입에 밥을 조금 넣었다.

 

 

"카라마츠만 데려다줬다기엔 오래 걸린 것 같아서."

 

"…아―아니? 그냥, 다른 형제들이랑 마주치게 돼서."

 

"그래서?"

 

"…조금, 그냥…"

 

"혼내줬어?"

 

 

케이토의 물음에 메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일부러 초점을 흐트러트린 눈동자만 도르륵 굴릴 뿐.

 

말 대신 솔직한 신체에 케이토는 크게 터뜨리려는 웃음을 꾹 참고서 대충 작게 피식 웃었다. 솔직하진 못하지만 정의로운 여동생이 귀여웠다. 친구는 소중했고 옳다고 확신했지만 틀 밖의 타인의 입장에서 자세한 사정도 모르는 채로 어긋낼까봐 눈치를 보는 저 따뜻한 마음이 어여뻤다.

 

 

"어제 너 아파서 쓰러져있을 때, 카라마츠가 연락해줘서 알 수 있었어."

 

"에? 무슨?"

 

"누나 아파? 메이 누나 아파?"

 

"아니야. 안 아파 카이. 걱정하지마."

 

"카라마츠가 집 2층 창문으로 보고 연락해줬어.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다."

 

"아그래야겠네."

 

"카이도 카아마츄 형아! 또 볼래!"

 

"네네~ 일단 보육원 갔다가 오자?"

 

 

식사를 마치고 남매는 여느 때처럼 비슷한 시간에 집을 나섰다. 품에 안은 작은 남동생과 같은 자세로 손을 흔드는 여동생을 뒤로하고 길을 가던 케이토는 문득 걸음을 멈추더니 다시금 뒤로 돌아왔다.

 

 

"뭐야? 오늘 회사 땡땡이?"

 

 

되돌아오는 오빠의 얼굴이 답지않게 굳어있어서 메이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돌아온 케이토는 메이의 앞에 서자마자 손을 들어올렸다. 따뜻하고 커다란 손이 앞머리 아래로 들어가 이마를 덮었다.

 

 

"오빠? 뭐해?"

 

"메이. 휴직계라도 내야하지 않을까."

 

"에에? 무슨 소리야?"

 

"어제 쓰러진 거, 아무래도 마음에 걸려. 오늘 하루만이라도…"

 

"괜찮아! 아무렇지도 않고! 당장 오늘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를 미뤄버리면 출판까지 문제생겨. 그리고 나, 지금 열도 없잖아?"

 

"그래도…"

 

"누나 아파? 아픈 거야?"

 

"아니야! 괜찮아 카이!"

 

"누나 아프면 싫어!"

 

"나도 싫어!"

 

"괜찮다니까! 이 남자들이 정말 왜 이래? 얼른 회사로 사라져!"

 

 

시무룩해하며 멀어지는 케이토의 머리에서 축 처진 동물의 귀가 보이는 것같은 착각에 메이는 잠시간 그의 뒷모습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의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방방 손을 흔들던 카이는 앞서 걸어가던 케이토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하며 윙크를 날리자, 번뜩 무언가를 떠올렸다.

 

카이는 보육원에 가기 위해 뒤를 도는 메이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에? 왜, 왜 이래, 카이?"

 

"내릴래! 내려져!"

 

"카, 카이, 보육원에,"

 

"누나! 카이 뭐 두고와써!"

 

"뭔데? 누나가 가져,"

 

"아니야! 카이가 가지고 올거야! 그러니까 누나 여기서 움직이면 카이 싫어!"

 

"카이!"

 

 

카이는 메이가 손을 뻗기도 전에 짧은 다리로 도도도 집으로 다시 들어갔다.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얌전히 그 자리에서 기다리기로 한 메이는 동생을 향해 내뻗었던 손을 거두고 톡톡 애꿎은 바닥만 발로 건드렸다.

 

그때였다. 또다시 두통이 엄습했다.

 

 

"악."

 

 

짧고 굵은 신음은 낮은 목소리로 내뱉어져 그녀의 몸을 짓눌렀다. 집의 울타리에 기대 서있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나 싶더니 이내 풀썩 꿇렸다. 어제의 감각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지만, 그때와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바닥과 맞닿은 무릎이 무감각해지고 짚은 손이 얼얼해질 때 즈음, 뒤에서 혀짧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나!"

 

 

뇌가 목소리를 인식하자마자 거짓말처럼 순식간에 사라져버린 통증에 메이는 오히려 당황했다. 카이의 목소리에도 몸을 일으키지 못할 만큼 당황해서, 카이가 가까이 와서 몸을 건드리고서야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누나… 진짜 아파…?"

 

 

메이의 옷깃을 붙잡고 울먹거리는 눈동자가 울렁거려서 메이는 땅에 대고 있던 손을 탁탁 털고서 휘휘 흔들었다.

 

 

"아니야! 누나 진짜 안 아파!"

 

"근데 왜 거기 앉아있는 거야아…?"

 

"개미! 개미 씨가 지나가고 있길래 길을 알려준 거야!"

 

"…개미 씨?"

 

"응. 누나가 알려준 길로 가버렸어."

 

 

설마 개미가 어디있냐고 물어볼까봐 가버렸다고 마무리짓는 제 임기응변에 메이는 스스로 감탄했다. 그제야 표정을 풀고 안겨오는 카이의 품에 무언가 있어서 메이는 그것을 손으로 가리켰다.

 

 

"카이. 그건 뭐야?"

 

"아! 이거! 이거는! 에, 이거는… 음…."

 

 

메이의 눈 앞에 불쑥 나타난 건 하얀 통이었다. 카이가 흔들 때마다 잘그락잘그락 소리가 나는 작은 통. 보자마자 약이라도 들어있나 싶은 통이었지만, 왜인지 무언가를 생각하던 카이는 곧 그 통을 다시 품에 쏙 감추었다.

 

그리고는 난데없이 내달렸다.

 

 

"카이 잡으면 알려주께!"

 

 

꺄르르 간드러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또 한번 벙쪄있던 메이는 느리지 않게 일어나 작은 아이를 따라 발을 내딛었다.

 

 

"잠깐만! 카이! 뛰면 위험…!"

 

 

혹시라도 제 작은 동생이 넘어져 상처라도 입을라 뛰지 말라 경고하려던 메이는 몇 걸음 떼지 않아 찌잉 울리는 머리에 반사적으로 눈살을 찌푸렸다. 덕분에 스텝은 꼬였고, 카이에게 넘어질라 조심하라 말하기도 전에 제가 먼저 철퍼덕 넘어지고 말았다.

 

아이고…. 작은 곡소리와 함께 자리에서 활짝 펼친 팔을 꼼지락꼼지락 움직여 고개를 들었다. 엉엉 오열하며 제게로 달려오는 카이가 보였다.

 

갑작스러운 추격전이 끝나고 흐느끼는 동생 달래랴, 아픈 몸 버티랴, 그 어느 때보다 힘든 아침을 보내는 메이는 오늘 일진은 재수없겠구나, 생각했다. 당장 이따 시작해야하는 동시번역 프로젝트는 최소 3일에서 4일은 밤을 지새워야할테고, 그만큼의 에너지가 필요할텐데. 벌써부터 힘들었다.

 

아니야, 어쩌면 좋은 일이 생기기 전에 액땜하는 걸 수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메이는 훌쩍이는 카이를 품에 안고 겨우 걸음을 옮겼다.

 

넘어짐으로써 얼굴에 생긴 생채기는 모르는 채였다.

 

그리고 그런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눈이 있었다. 빨간 슈트복의 상체부분을 벗어 허리춤에 묶은 채 2층 방 창틀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오소마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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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이었다.

 

시끌벅적한 형제들에게서 신경을 돌려 창틀에 앉아 밖을 바라본 것은.

 

 

"카라마츠 형―아! 여기 낙서해도 됨까~?"

 

"쥬시마츠, 순서가 틀렸어. 그런 건 하기 전에 물어보는 거야."

 

"쥬시마츠 형. 그림 그리는 거? 나도 그릴래."

 

"고양이 그려줘."

 

"으음~? 미안하지만 난 도화지가 아니라구, 브라더들~?"

 

 

어제와 비교해 확실히 화가 풀린 듯 보이는 카라마츠의 다리에 매달린 형제들은 저마다 색색의 펜을 들고 끄적끄적 그의 다리 위로 손을 움직였다.

 

오소마츠에게는 오늘의 모든 것이 평범했다. 동생들은 평범하게 시끄러웠고, 그 얼굴들은 평범하게 똑같았다. 하늘은 평범하게 파랬고, 날씨는 평범하게 좋았다. 바람은 평범하게 불기도 불지 않기도 했고, 담배는 평범하게 여유분이 있었다.

 

오소마츠는 담배 하나를 꺼내 익숙하게 불을 붙였다. 한번 입에 머금고 대충 빨아들이고는 후- 숨을 내쉬었다. 굴뚝의 것보다는 확연히 하얗지만, 겨울의 것보다는 조금 탁한 연기가 앞으로 길게 뻗어나갔다.

 

별다른 감흥없이 바깥 어딘가에 초점을 두었던 눈동자에 누군가 담겼다.

 

갈색빛의 굴곡진 머리. 뒷모습이었지만 나온 집도 그렇고, 오소마츠는 알 수 있었다.

 

어제 제 형제를 구해다 준 은인―카라마츠의 말을 빌리자면―. 처음에는 어째서인지 화를 내고, 갑자기 어째서인지 사과를 하고, 결국엔 어째서인지 고개를 숙이며 부탁을 했던, 이상한 여자. 린도 메이라고 했던가?

 

어떤 남자를 배웅하고 몸을 돌린 그녀의 품에 안긴 무언가가 정확히 보였다. 뒤를 돌아 있을 때는 긴가민가했는데, 확실히 보였다. 작은 남자아이였다.

 

아이는 발버둥을 치다 그녀의 품을 벗어나더니 집 안으로 쏙 들어가버렸다. 아이를 놓친 자세 그대로 굳어져있던 그녀는 곧 집 울타리에 몸을 기대고 섰다.

 

그러고는 풀썩 주저앉았다. 처음 마주쳤던 그 날처럼.

 

그 모습을 바라보던 오소마츠의 눈썹이 꿈틀 움직였다.

 

잠시 동안 그 상태로 웅크려있던 메이는 집에서 다시 나온 작은 아이가 우물쭈물해하며 그녀에게로 다가간 후에야 멀쩡한 듯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애초에 처음 만났던 때도 저러지 않았나? 왜 저러지? 무슨 병이라도 있는 건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러 물음표가 머릿속에서 떠다녔다.

 

아이를 쓰다듬으며 짓는 미소가 어쩐지 어색해보여서 오소마츠는 손에 들린 담배가 타들어가며 재가 조금씩 툭 툭 떨어지는데도 눈치채지 못했다.

 

 

"카이 잡으면 알려주께!"

 

 

바락 소리를 치고 내달리는 아이의 뒤를 쫓으려 자리에서 일어서 조금 달리던 메이는 또다시 휘청거리나 싶더니 이번엔 아예 철퍼덕 온몸을 펼쳐 자빠졌다.

 

카이? 저 꼬맹이의 이름이 카이인가? 저 애가 동생이라면, 린도 카이? 아이의 큰 목소리를 듣고 이름을 유추하던 오소마츠는 이어지는 메이의 병약쇼―신체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면 그냥 병약한 몸으로 쇼하는 것처럼 보였다고―를 바라보고 내심 당황했다. 저대로 못 일어나는 거 아니야…?

 

바닥에 처박힌 고개가 움찔거렸다. 곧 와아앙 오열하며 달려온 아이가 메이의 머리에 매달렸다. 주섬주섬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선 메이는 아이를 토닥였다. 얼굴이 정확히 보이진 않았지만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다.

 

담배를 손가락 사이에 끼고서, 그 손으로 턱을 괴고 떠나는 남매의 뒷모습을 끝까지 눈으로 좇던 오소마츠는 결국 어느 정도 타들어간 담뱃재가 다리에 떨어지고 나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으악―!"

 

"뭐야! 오소마츠 형! 왜 그래!"

 

"담뱃재가! 다리 위로 떨어졌어! 존나 뜨거워!"

 

"아침부터 거기서 담배피지마, 니트놈아! 상쾌한 아침을 왜 우리가 네 담배냄새로 맞이하지 않으면 안되는 건데!"

 

"담배가 니트랑 무슨 상관이야! 형아 다리 걱정 안 하는 거야?!"

 

"재떨이는 그럴 때 쓰라고 있는 거야 바보마츠 형."

 

"와―! 오소마츠 형―아는 바보!"

 

"쥬, 쥬시마츠까지?!"

 

 

오소마츠는 다리를 부여잡고 뒹굴거리며 카라마츠를 한번 바라보았다. 여느 때처럼 웃고있는 얼굴을 보고서야 그는 다리를 툭툭 털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소마츠 형, 어디 가는 거?"

 

"아아―. 쵸로시코스키마츠가 너무 매정해서 나가서 한 대 더 하려고."

 

"누가 쵸로시코스키마츠냐. 랄까 죽고싶어? 이름이 존나 길어졌어?"

 

"바보바보마츠 형~ 재떨이 꼭 챙겨가~ 또 바보짓하지 말고~"

 

"톳티 너 바보 두 번 말했어. 뒤에까지 세 번이야. 형아 운다?"

 

 

집 밖으로 나온 오소마츠는 메이의 집을 한 번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건너편 길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지켜본 이들이 향한 길, 돌아올 길.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은 그는 천천히 담배를 하나 더 꺼냈다.

 

담배는 평범하게 여유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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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앞에 보육원이 보일 때쯤, 품에 안긴 카이가 칭얼거리며 얼굴을 매만졌다. 작고 보드라운 손이 뺨을 만지작거리는데 기분이 좋아 가만히 있던 메이는 문득 쓰라린 아픔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뒤로 뺐다.

 

 

"누나. 얼굴에서 피가 나…."

 

"에? 피?"

 

 

카이를 안아든 손의 반대쪽 손으로 카이가 만지던 쪽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피가 손에 묻어나진 않았지만, 분명 얼굴의 어느 부분이 울퉁불퉁한 것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아까 넘어지면서 땅에 쓸리기라도 한 건가? 손으로 대충 쓸어본 거라 어느 정도의 크기인지는 가늠할 수 없었기에 메이는 이 얼굴로 보육원에 가서 다른 아이들과 선생님을 마주쳐야하는 것이 조금 난감했다.

 

 

"이거!"

 

 

카이는 품에 안고 있던 하얀 통을 내밀었다. 신경쓰고 있었지만 카이가 먼저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던 메이는 그제야 그것을 받아들었다.

 

 

"뭐야?"

 

"카이랑 케이토 형아가 주는 선물!"

 

"선물?"

 

"비타민-이라는 거래! 형아가 누나 오늘부터 파워라고 했어! 그래서 이거 먹으면 그동안 아프지도 않고, 일도 잘 될 거라고 했어!"

 

 

오늘부터 시작하는 프로젝트, 밤잠을 설쳐가며 정해진 시간 내에 주어진 분량을 두 개 이상의 언어로 통번역해야하는 일을 카이는 '파워'라고 불렀다. 복잡한 일을 어린 카이가 받아들이도록 케이토가 한 단어로 정해준 것이었다.

 

이걸 가지러 다시 돌아갔던 거구나. 슬며시 피어오르는 웃음을 숨기지 않고 메이는 카이의 얼굴에 부비부비 제 뺨을 문질렀다.

 

카라마츠가 말했던 것처럼 이 아이는 천사임이 틀림없어! 날개는 어디 있지!? 작은 등을 쓰다듬으며 메이는 몇 번이고 카이의 이마에 제 이마를 비볐다.

 

쪽쪽 사랑스러운 동생의 얼굴에 입을 맞추다가 보육원 입구에서 아이들을 반기는 선생님이 메이와 카이를 발견하고 손을 흔드는 것을 보고 메이는 그제서야 아차싶어 뺨을 문질렀다. 어쩌지. 어쩔 수 없이 척척 보육원을 향해 남은 걸음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어머, 얼굴이!"

 

"누나…."

 

"카이! 괜찮아! 누나 괜찮아! 제발!"

 

 

이미 아침부터 카이에게 여러 번 시달린 메이는 누나 걱정에 울먹이는 동생이 기특하고 사랑스러웠지만 그만을 외쳤다. 울망거리는 카이와 그 옆에서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선생님에게 쩔쩔매는 중이었다.

 

 

"메이 씨!"

 

"아. 히리오 선생님. 안녕하세요?"

 

 

헐레벌떡 달려오는 히리오가 멈칫 자리에 멈춰섰다. 메이가 인사하자, 히리오는 머뭇거리더니 카이의 손을 잡고 있는 선생님에게 양해를 구했다.

 

 

"메이 씨, 잠시 들어와서 치료만 하고 가는 게 어때요? 그대로 두면 흉질 것 같은데, 소독이라도."

 

"네? 아, 하지만 선생님도 바쁘…"

 

"아직은 괜찮아요. 다쳤는데 치료가 제일 중요하죠."

 

"떤댄님! 카이도!"

 

"카이는 들어가서 옷이랑 가방부터 정리해야지~"

 

 

히리오의 만류에 입을 삐죽인 카이가 교실로 들어가고, 소란스러운 보육원 안 교무실로 향한 메이는 히리오의 앞에 앉았다.

 

 

"어디서 다친 거에요?"

 

"아침에 카이랑 달리기… 했거든요."

 

"달리기요? 재밌었겠네요."

 

"…네, 재미있었죠. 하하…."

 

 

어색하게 웃으면서도 따끔거리는 느낌이 싫어 메이는 미간을 찌푸렸다. 히리오는 호호 바람을 불며 젖은 솜을 톡톡 상처에 두드렸다. 굳어가던 피가 닦이고, 히리오는 약상자를 뒤적였다. 연고를 살짝 바르고, 하얀 밴드를 붙이고서야 히리오는 만족스러운 듯 웃고 약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다 됐어요."

 

"아, 고맙습니다."

 

"흉이 안 져야 할텐데."

 

"괜찮아요. 워낙 튼튼해서, 흉 안 질 거에요."

 

"그런가요."

 

 

밴드를 톡톡 건드리는 메이를 힐끔 바라보며 히리오는 닫힌 약상자를 집어들고 원래 상자가 놓여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녀에게서 등을 돌린 채로, 히리오가 넌지시 말했다.

 

 

"다치지 말아요."

 

"네?"

 

"…메이 씨가 다치면 카이가 슬퍼하니까요."

 

"아. 그렇죠. 늘 고맙습니다. 카이가 여길 참 좋아해요."

 

"카이가 워낙 착하고 말을 잘 들으니까요. 애초에 지금은 제가 맡은 반 아이는 아니지만요."

 

"하지만 작년까지는 맡아주셨잖아요. 그래서 카이도 히리오 선생님을 좋아하고 잘 따르고요."

 

"…저도 좋아요."

 

"네?"

 

 

메이가 자리에서 일어서 벗어놓은 가디건을 다시 입으며 되물었다. 히리오는 여전히 등을 돌린 상태였다.

 

 

"…카이요. 저도 카이, 많이 좋아해요."

 

"아아."

 

"카이는… 착하고, 귀엽고, 잘 웃어요. 대화를 하다보면 편해지고, 저까지 기분이 좋아져요. 말하는 것도 듣는 사람의 기분을 고려하면서 말해주죠."

 

"다행이네요. 카이가 잘 지내서."

 

 

메이가 웃었다. 그제서야 고개를 돌려 메이를 바라본 히리오의 표정을, 메이는 똑똑히 보았다.

 

히리오에게 인사를 건네고 보육원을 빠져나온 메이는 강변을 거닐며 집을 향해 돌아가면서도 몇 번이고 제 뺨을 만졌다. 정확히는 제 뺨에 붙어있는 하얀 밴드를.

 

분위기를 지어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분위기를 읽는 것이었다. 표현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이해하는 것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메이의 능력 중 하나였고, 메이는 뛰어난 번역가이자 훌륭한 작가였다.

 

나카세 히리오. 카이의 옆반 담당 교사이면서 작년까지는 카이의 담당 교사였던 그가 카이와 아무리 친하다고 한들 아이들의 등원 맞이 담당이 아니면서도 카이가 올 때면 입구로 나오는 이유를 그녀는 알고 있었다. 딱히 할 말도 없으면서 그녀의 이름을 한 번씩은 부르고 인사를 하는 이유도 알고 있었다. 아이들을 볼 때의 얼굴이 동료 선생님의 얼굴이나 아이들의 부모를 볼 때의 얼굴과 같으면서도, 그녀를 볼 때의 얼굴은 전혀 다른 이유도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물론, 조금 전 얼굴에 띄워진 붉은 홍조와 잔뜩 흔들리며 가라앉는 눈빛도 알 수 밖에 없었다.

 

 낯부끄럽지만, 카이의 핑계를 대며 그녀에게 다가오는 의도 역시 모른 척하면서도 알 수 밖에 없었다.

 

먼저 전해오지 않는 마음을, 더군다나 같지도 않은 마음을 먼저 아는 체해서 관계를 망치는 일은 섣불리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았기에 메이는 늘 모른 척 해왔다.

 

같은 마음이 아닌 건 미안할 일도, 잘못한 일도 아니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지만 관계라는 것은 늘 얽히고 설켜서 어긋나기도 하고, 결국 끊어지기도 하는 것이기에 그녀는 모른 척 할 뿐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 번씩 무심코 그 일방적인 감정에 대해 되짚다보면, 본인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표현하는 사람이라면서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자신이 조금 한심했다. 곧 어쩔 수 없는 일이라며 그저 넘기게 되겠지만.

 

 

 

 

메이는 시간을 살폈다. 일을 시작하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남아있었다. 오늘부터는 많이 바빠질 거고, 밤도 지새우게 될 테니 집안일이나 준비해야하는 것들을 미리 정리해놓아야겠다는 마음을 다잡고 집으로 향했다.

 

 

"여어―."

 

 

집으로 가기 위해 지나야하는 마츠노 가의 앞에는, 그런 그녀를 가로막는 오소마츠가 있었다.

 

메이의 발이 멈췄다. 오소마츠는 그런 그녀를 향해 손을 방방 흔들었다. 배시시 그려지는 웃음에 메이는 저도 모르게 어느새 긴장했던 마음을 조금 풀었다.

 

어제의 난리통이 아직 어색한데, 아무렇지 않게, 오히려 친한 듯이 친근하게 말을 걸어오는 오소마츠의 모습이 낯설었다.

 

 

"동생 등원?"

 

 

장난스럽고 가벼운 말투였다. 여전히 멈춰있는 메이는 대답은 커녕 눈만 깜박였다. 그 반응에 조금 머쓱해진 오소마츠는 몸을 일으켰다.

 

 

"뭐야~ 모처럼 이 카리스마 레전드께서 말을 걸어주고 있는데 무시하는 거야?"

 

"…너 설마 나 기다리는 거 아니지?"

 

"맞는데?"

 

 

얘기 좀 하자구! 인중을 문지르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다 메이는 발을 뗐다. 오소마츠를 향해 걸어갔다.

 

메이가 가까이 오는 동안 오소마츠는 아까는 보지 못했던 그녀의 얼굴의 새로운 것을 알아보았다. 분명 아무것도 없었던 뺨에 하얀 밴드가 붙어있었다.

 

메이가 앞으로 다가와 서자, 오소마츠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볐다. 재떨이로 향했던 시선이 뺨으로 올라갔다. 손가락이 가리킨 뺨을 향해 오소마츠가 물었다.

 

 

"이거, 다친 거?"

 

"응, 넘어져서."

 

"헤에―. 얼마나 넘어져야 이런 걸 얼굴에 붙이냐."

 

"…너 담배도 피냐?"

 

"응! 앗? 혹시 메이 쨩은 담배 싫어한다거나?"

 

"메이 쨩?"

 

"아. 말 편하게 할게? 초면도 아니고?"

 

"…마음대로."

 

"메이 쨩이 싫다면 안 펴도 되고~"

 

"담배 좋아하는 사람도 있나?"

 

"좋으니까 피지."

 

"좋아서 시작한 것 같지는 않던데."

 

 

눈이 동그래진 오소마츠는 잠시간 메이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정말 말마따나 잠깐이었기에 메이는 그 시선을 눈치채지 못하고 무심히 시선을 옮겼다.

 

 

"동생은 몇 살이야?"

 

"3살."

"헤에―! 나도 보게 해 줘! 완전 천사겠다."

 

"아…? 그래, 뭐."

 

 

왜 이래. 오소마츠의 너스레에 의아해진 메이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오소마츠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실실 웃었다. 부담스럽진 않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는 친절은, 그것도 마주쳐서 아무렇지도 않을 만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아닌 상대에게서로부터의 것은 의심스러웠다.

 

메이는 형제들의 전부도, 오소마츠의 내면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메이는 형제들 중 유일하게 카라마츠와 시간을 보냈고, 대화를 했고, 친구가 되었다. 카라마츠가 안쓰러운 말투를 쓰는 이유는 솔직함을 포장시키기 위함을 알고 있었고, 그는 상냥하지만 미련한 만큼 누구보다 형제를 사랑하는 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마츠노 오소마츠라는 이 사람은? 그녀는 그에 대해 몰랐다. 그리고 그건 그 역시 마찬가지일 터였다.

 

아니, 하나는 알 수 있었다.

 

메이는 헤실헤실 멍청한 듯 웃고있는 오소마츠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지금은 생각없고 능청스러워보이지만 어제의 충돌, 눈빛.

 

아직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분명 보이는 것과 달랐다.

 

 

"저기 말이야? 사실 나도 잘 알고 있단 말이지?"

 

"뭘?"

 

"우린 여섯 명이지만, 사실 미묘하게 다 다르거든~ 솔직히 너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뭐… 대충? 누구는 눈썹이 짙고, 누구는 눈동자가 좀 작고 뭐 이런 거?"

 

"이야~ 어제부터 생각했는데 역시 메이 쨩은 눈치가 예사롭지가 않단 말이지~ 그래서 어쨌든 메이 쨩이 그렇게 빤히 쳐다보면, 그 똑같은 형제들 중에서도 내가 가장 잘난 건 나로서도 알고는 있지만 부끄러워진다구~"

 

"미친. 알았으니까 부를 거면 그냥 이름만 불러."

 

"에? 메이 쨩, 싫어?"

 

"메이, 라고만 불러."

 

"카라마츠는 그렇게 불러줘?"

 

"하?"

 

 

오소마츠의 옆에서 그처럼 울타리에 등을 기대고 서있던 메이가 고개를 돌렸다. 확연히 옅어진 담배냄새가 코를 맴돌았다. 말투만큼이나 가벼워보이는 눈이 뭐가 문제냐는 듯 빤히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그냥 메이, 라고 부르는 것 같길래."

 

"카라마츠같은 경우에는 내가 그렇게 불러달라고 말한 편이 아니어서, 랄까 걔가 갑자기 왜 나와?"

 

"그럼 메이."

 

 

얼굴 위에서 굳은 웃음에 무슨 말을 하나보자고 메이는 기다렸다.

 

 

"카라마츠랑 무슨 사이야?"

 

"뭐야?"

 

 

웃고 있는 눈 아래 움직이는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메이는 후회했다. 내가 저런 말을 듣고자 비장하게 침묵했던가.

 

 

"뭐했어?"

 

"치료해주고 먹여주고 재워줬는데?"

 

"에이―. 그런 거 말고."

 

"무슨 말을 듣고 싶은 거?"

 

"뭔가 좀 더 비밀스럽다던가?"

 

"걔가 너희한테 아무 말도 안 했을 것 같진 않은데. 나랑 그런 사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던?"

 

"음―. 확실히 말하긴 했지. 하지만 이 형아가 믿을 수가 있어야 말이지~ 꽤나 안쓰럽긴 하지만, 어쨌든 그 녀석, 결과적으로는 내 동생이고? 형제고? 괜히 한여름 밤의 꿈에 홀렸다가 돌아오지 못하면 곤란하잖~"

 

"염병하네. 왜, 니트에 같은 동정이 탈출이라도 할까봐 불안하니?"

 

 

어느새 찌푸려진 메이의 눈살이 불쾌하다고 대신 말해주고 있었다. 그 얼굴을 바라보던 오소마츠는 씨익 웃었다. 조금 전과는 다른 생동감있는 미소에 메이는 그가 뭐에 만족했는지 도통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아아―! 역시 메이 앞에서는 거짓말이 안 통하네~ 랄까 그래도 말이야? 그 녀석을 걱정한 건 진심이었다구?"

 

"저기, 너 말이야. 그것 좀 그만할래?"

 

"에? 뭐?"

 

"장남이라고 우쭐거리는 거."

 

 

어제처럼 화가 난 건 아니었다. 그 뻔뻔함에 울컥한 것도 아니었다. 이미 한 번 카라마츠의 안쓰러움에 한숨을 지었고, 그것이 오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오소마츠가 능구렁이처럼 구는 것도 그 나름대로의 이유 또는 습관이라 여겼다. 단지 그저 호기심일 뿐이었다.

 

첫째라는 이유로 자신감이 가득한 이유가 궁금할 뿐이었다.

 

메이는 오소마츠의 표정을 이해하려 애썼다. 눈이 생각하는 것을 해석하려 노력했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런 표정으로 오소마츠는 눈만 꿈벅거리고 있었지만 메이는 그 뒤에 숨은 생각을 알아내고 싶었다.

 

흠. 그런데 잘 보이지 않아.

 

 

"네가 평소에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이번에는 실패했잖아? 그럴게, 카라마츠가 진심으로 아파하는 걸 눈치채지 못했고."

 

"…."

 

"물론 첫째라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너는 그런 걸 해왔고 하려는 것 같고. 지금처럼. 근데 말이야? 가끔은 굳이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걸 알려고 하지 말고 닥친 상황에 적응해도 된다고? 그럼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거든. 아니면 어리광이라도 좀 부리든가."

 

"…."

 

"네가 형제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걱정하는 건 알겠어. 어제랑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 같아서 지겨울 지도 모르겠지만, 너도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때?"

 

"…."

 

"랄까, 잘 마무리됐으니 다행이지만. …오소마츠?"

 

 

문득 혼자 떠드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하늘로 쳐올렸던 얼굴을 옆으로 돌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거지? 여전히 그런 표정으로 오소마츠는 눈만 껌벅거렸다. 그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 어제의 마찰이 생각난 메이는 노파심에 덧붙였다.

 

 

"아니, 이건 시비 아니고 그냥 얘기하는…"

 

"아아―. 응, 알아."

 

 

오소마츠가 고개를 돌렸다. 하늘 어딘가로 던지는 시선을 이해할 수 없어 알면 됐다고 메이도 다시 시선을 던졌다. 구름이라도 있으면 흐름이나 눈으로 좇을 텐데, 구름 한 점 없이 무턱대고 새파란 하늘이 무료했다.

 

 

"흐읍―! 하! 이제 됐다!"

 

 

난데없이 요란하게 심호흡을 하고 숨을 크게 뱉고는 오소마츠가 메이를 향해 돌아섰다. 왜인지 후련해보이는 듯한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올라와있었다.

 

 

"좋았어! 생각이 끝났어."

 

"아? 무슨 생각?"

 

"네가 겁나게 얘기해대는 그 솔직! 나도 좀 솔직해져보려고!"

 

"아, 아아, 그러냐."

 

"응! 그래서 말인데!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또 넌 참 좋은 사람이야!"

 

 

이번엔 메이가 멈추었다. 분명 그가 보기에는 조금 전 자신이 봤던 것처럼 무슨 말을 하는 거지? 그런 얼척없는 얼굴이 되어있을 거라고, 메이는 생각했다.

 

 

"는 어제 내가 일부러 신경을 긁으려고 말한 것도 있고~ 아, 어차피 넌 다 알아챈 것 같아서 원하는 대로 솔직하게! 말하는 거지만~ 그리고 어쨌든 우리 집 바보를 제대로 도와준 것도 있고~ 지금 대화해보니까 역시 나쁜 애는 아니구나, 싶어서~"

 

"아… 그러냐. 넌 참 행동변화가 종잡을 수 없구나…."

 

"우리 집 다섯째를 봐야 내가 그나마 정상이란 걸 알 거야."

 

"네가 정상인 게 아니라 비정상인 너보다 더 비정상인 거 아닐까? 다섯째면, 노란 옷 입은? 쥬시마츠였나."

 

"맞아. 역시 신기하다니까?"

 

"니네가 더 신기해."

 

"우릴 다 알고 있는 것 같아."

 

 

헤에―. 대수롭지 않은 척 그 말을 한 귀로 듣고 다른 귀로 흘렸다. 속으로는 움찔거렸지만, 티는 나지 않았을 테니 메이는 신경쓰지 않았다. 다 알고 있는 게 맞지. 적어도 너희의 성질만큼은. 지켜봤으니까. 또다른 나였던 때에.

 

 

"그럼 이렇게 심도깊은 대화도 나눴으니 나도 메이의 친구가 된 건가?"

 

"하?"

 

 

나 이거 겪은 적 있는데. 데자뷰를 생각하던 메이는 곧 카라마츠의 얼굴을 떠올렸다.

 

멍해진 메이의 눈동자가 누구를 회상하고 있는지 알아서 오소마츠는 실실 웃었다.

 

 

"뭐 상관은 없다만…."

 

"아싸아―! 메이 너, 이 육둥이의 카리스마 레전드 장남 님의 친구가 된 걸 아―아주아주 자랑스럽게 여겨도 된다구?"

 

"미친."

 

"그럴게, 이제 우리에게서 완전한 남은 아니게 된 거니까!"

 

"그건 또 뭔 소리야?"

 

"카라마츠에게처럼, 우리 중 누군가를 위해서 한 행동을 함부로 판단하고 끼어들었다고 눈치보지 않아도 된다는 소리?"

 

 

오소마츠를 바라보던 눈동자가 데구르르 굴러갔다. 저 앞을 바라보다, 저 길의 끝을 바라보다, 땅을 바라보다, 또다시 한 바퀴 데굴데굴 눈을 굴렀다.

 

 

"어제는, 어쨌든 미안."

 

 

당당하게 실망하고, 떳떳하게 화를 내고, 어엿하게 부탁하던 어제의 태도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메이가 말했다. 어쩐지 하얀 밴드가 붙어있는 뺨이 조금 물든 것 같아서 오소마츠는 튀어나오려던 웃음을 삼켰다. 웃음이 목구멍 아래로 넘어가서 그런지, 가슴께가 간지러웠다.

 

 

"에~ 메이 쨩, 부끄러워하는 거~?"

 

"숨지고 싶어? 말투 뭐야."

 

"미안해할 필요 없다니까? 그럴게, 넌 카라마츠를 도와준 거고, 어떻게 보면 우리도 도와준 셈이잖아? 다른 녀석들도 반성 많이 했다구~ 물론 나도!"

 

"그래그래. 알았다."

 

 

킥킥거리는 오소마츠를 힐긋 바라보고 메이도 킥킥거리며 웃었다.

 

아, 또 묘한 기분. 메이는 이 기분을 알고 있었다. 카라마츠가 친구도 할 수 있냐며 물어오던 때, 본인이 고개를 끄덕이던 때. 갑갑하기도, 뜨겁기도 하던 열기 뒤로 이어진 묘한 기분. 아직 내 자신도 알지 못하는데 친구를 사귀다니, 그런 회의감 뒤에 될 대로 되라, 그런 식의 무책임한 기분.

 

이번에는 어쩐지 그 기분이 막 달갑지 않은 건 아니라서, 메이는 조금 숨을 골랐다.

 

 

"저기 말이야? 메이가 우리 욕을 할 때도 카라마츠는 좋은 얘기 하면서 편을 들어줬다고 했잖아? 무슨 얘기야?"

 

"음. 오소마츠 형아에 대해 어떤 좋은 얘기를 했냐는 거지?"

 

"역시 메이 쨩!"

 

"그 호칭 좀… 어휴, 됐다. 아, 나랑 너랑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넘어져서 네가 일으켜줬잖아? 그때 반말해서 쵸로마츠한테 맞았다고 했더니 카라마츠가 대신 사과했어. 오소마츠 형님은 원래 가슴 달린 여자만 보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고, 짐승이랑 비슷하다고. 모자란 형을 둬서 미안하대."

 

"이 새끼가."

 

 

오소마츠의 손에 잡혀있던 담배곽에서 우직하는 소리가 났다. 담배가 불쌍했다.

 

분개하는 오소마츠를 바라보며 낄낄거리다 무심코 집에 시선을 두었던 메이는 깜짝 놀라 시계를 확인했다. 이런 젠장, 집안일이나 좀 해놓으려했는데 모자란 친구 덕분에 시간을 통으로 날렸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메이는 울타리에서 등을 떼고 오소마츠의 앞에 섰다.

 

메이가 움직이자 오소마츠는 탱천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에. 가게?"

 

"덕분에 시간 잘 날렸어. 즐거웠다 모질아."

 

"누가 모질이냐이씨. 근데 왜 벌써 가? 어차피 할 일도 없잖아? 오빠랑 놀자구!"

 

"오빠가 다 죽었니? 내가 너처럼 니트인 줄 알아?"

 

"…아니었어?"

 

"너 진짜 그만 살고 싶냐. 무례가 몸에 배어있네. 프리랜-서 몰라? 프리랜-서!"

 

"직업분야가 뭔데?"

 

"동생한테 들어. 간다."

 

 

동생이란 건 카라마츠를 가리키는 거겠지. 메이가 집 안으로 사라지자, 오소마츠는 흥흥흥 콧노래를 부르며 집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를 만들어서 피고 오냐? 왜 이렇게 오래 걸려?"

 

"아아―!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오느라고~"

 

"새로운 친구?"

 

"오소마츠 형―아! 또 여자 꼬시러 갔다온 검까!"

 

"그렇다기엔 뺨에 손자국이 없는데…."

 

"이치맛쨩? 형아 맨날 맞고 오는 건 아니라구?"

 

 

성큼성큼 카라마츠가 앉아있는 소파로 향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팔과 다리를 가득 둘러싼 형형색색의 낙서를 보고 배를 움켜잡았다.

 

 

"야하하하! 카라마츠 인간 도화지네! 랄까 저기다가 누가 냐 쨩을 그렸냐하하하! 역시 쵸로시코라이징스키마츠!"

 

"이름 좀 자꾸 늘리지 말라고 개같은 장남아―!"

 

"훗. 브라더들의 사랑에 레인-보우로 변하는 나…!"

 

"저 안쓰러움도 같이 치료받고 왔으면 좋았을텐데."

 

"아. 카라마츠."

 

 

오소마츠가 쓱 눈물을 닦으며 카라마츠를 불렀다. 거울을 보던 카라마츠가 오소마츠를 바라보았다.

 

 

"우리 카라마츄는 짐승같이 모자란 형을 둬서 참 곤란하겠네~?"

 

"아? 무슨 소리인가 오소마츠?"

 

"갑자기 자아성찰하는 거야?"

 

"소름돋는 반성이군. 자기 자신을 저렇게 잘 알고 있다니."

 

"오소마츠 형―아는 짐승이야~?"

 

"아니야 새끼들아!"

 

"확실히 형님이 포악하고 야비하고 못돼처먹고 멍청하고 약아빠졌긴 하지만 짐승같이 모자라진… 앗."

 

"너 몸 다쳤다고 일부러 그러는 거지? 내가 못 때릴 것 같으니까? 앙? 이제 기억이 좀 나나보지~?"

 

 

오소마츠가 고개를 기울이며 말하자, 카라마츠가 삐질 땀을 흘렸다. 미소가 어색해진 건 그 직후였다.

 

 

"서―얼마 방금 사귀고 온 친구라는 게…"

 

"네 생명의 은인이다 이놈자식아."

 

"혀, 형님도 메이와 친구를 하기로 한 건가!"

 

"그래! 너만 하란 법 있냐! 나도 메이랑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

 

"와. 어제는 그렇게 무섭게 하더니 그 사이에 가서 꼬리 흔든 것 좀 봐. 얍삽이마츠 형같으니라고."

 

"또, 또 무슨 짓을 한 건가 오소마츠!"

 

"아! 아무 짓도 안 했어! 사과하고! 친구하기로 한 것 뿐이라고! 대체 형아는 너희한테 어떤 이미지인 거?!"

 

"쓰레기."

 

"짐승!"

 

"멍청이."

 

"니트."

 

"동정."

 

"그거 다 너희잖!? 랄까 쥬시마츠! 짐승은 아니라고!"

 

"하지만 오소마츠? 내가 메이에게 얘기한 것만큼은 사실이다."

 

 

카라마츠가 금방 얼굴을 굳히며 말하자, 오소마츠가 바락 소리를 내질렀다.

 

 

"마츠노 가의 장남은 가슴달린 여자만 보면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모자란 형이다! 짐승과 비슷하다! 이 중 뭐가 사실이란 거냐?!"

 

"X가 없는 퀴즈네."

 

"다 정답이랑께~"

 

"그렇당께."

 

"네~ 다음 쓰레기~"

 

"나 울어? 형아 여기서 오열해? 그걸 보고 싶은 거야 너희?"

 

"하지만 그럴게, 분명히 그 아이를 처음 마주쳤던 때에 오소마츠 형, 키도 작고 좀 예쁘게 생겼었다고, 같은 동네에 같은 나이고 우연히 형 앞에서 넘어졌다고 운명이네 뭐네 그랬잖아?"

 

"으익! 네 입은 1엔 짜리냐 쵸로시코라이징스키망할마츠!"

 

"한 마디만 더 갖다붙이면 다음 병원행은 너다 랄까 망할 마츠는 너잖아 쓰레기야."

 

"메이한테 이상한 짓 하지 말아라 오소마아츠!"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 이렇게 돼 메이…. 속으로 생각하는 오소마츠였지만, 그래도 그는 웃었다. 굳이 형제가 아니더라도, 어리광을 부릴 상대가 생겼다는 것은 왜인지 뿌듯한 일이었다.

 

오소마츠가 본 메이는 허를 찌르는 걸 잘했다. 토도마츠나 쵸로마츠처럼 영악하거나 태클을 거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하게 남이라서 객관적으로 정곡을 찌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로 인해 깨닫게 하고, 돌아보게 하고. 오소마츠가 본 메이는 생각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녀가 조금 자신을 꿰뚫었을 땐 놀랐고, 자존심이 조금 상했고, 창피하고, 쑥스러웠지만, 결과적으로는 기뻤다. 그래, 기쁘다는 표현이 가장 적합했다.

 

분명 이럴 필요까지 있을까, 싶은 마음 반과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하는 마음 반이 공존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점점 어느 마음이 커졌다. 다른 마음이 존재했던 것을 잊을 정도로. 그래서 그는 늘 한 발자국 뒤에 있었고, 선을 그었고, 그 선을 넘어 들어갈 때면 한 손에는 반드시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나올 때는 후련하도록.

 

그렇게 뒤를 보며 오느라 정작 제 앞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어쩌면 알면서도, 은근 외로워서 일부러 잊으려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첫째라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지만, 너는 그런 걸 해왔고 하려는 것 같고. 지금처럼. 근데 말이야? 가끔은 굳이 한 걸음 뒤에서 모든 걸 알려고 하지 말고 닥친 상황에 적응해도 된다고? 그럼 좀 더 솔직해질 수 있거든. 아니면 어리광이라도 좀 부리든가.

 

네가 형제들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걱정하는 건 알겠어. 어제랑 똑같은 말을 계속 반복하는 것 같아서 지겨울 지도 모르겠지만, 너도 좀 더 솔직해지는 게 어때?

 

 

그 목소리가 귀를 맴돌았다. 그 말을 하던 얼굴이 시야에 아른거렸다. 친구를 처음 사귀어보는 것도 아닌데, 어쩐지 자꾸만 들떠서 오소마츠는 카라마츠의 팔에 기댔다가 쵸로마츠에게 안면을 가격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