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おそ松さん 2F/[카라마츠 사랑받아라!] 잘 부탁해, 차남

[오소마츠상 소설(おそ松さん Novel )/카라마츠 사랑받아라] 잘 부탁해, 차남 1

※ 세계관과 원작을 포함해 충분히 다른 설정.

※ 어느 정도의 세계관 공유_파생마츠

※ Just Fiction.

 

# 오소마츠상소설

# 카라마츠

# 오소마츠

# 쵸로마츠

# 이치마츠

# 쥬시마츠

# 토도마츠

# 제이슨 이치마츠

# 카라마츠 사랑받아라!

# 카라마츠 총우케

 

 

잘 부탁해, 차남 1

 

 

 

 

언제였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자녀 다섯과 엄마, 아빠만 살기에 조금 컸던 이 집에는 기억을 되돌리기도 어려운 처음부터 빈 방이 하나 있었다. 그럼에도 그 방에는 침대도, 책상도, 옷장도, 심지어는 서랍 하나에도 공책이나 연필 등 당장이라도 누군가 쓸 것 같은 물건들이 전부 채워져 있었다.

 

몇 년이나 사람이 없는 방이라면 먼지가 쌓이고 거미줄이 앉았을 법도 한데, 가정부와 그를 돕는 정원사 제이슨은 지치지도 않는지 꾸준히 그 방을 청소했다. 가정부에게 있어서는 마츠요의 부탁이기도 했고, 제이슨에게 있어서는 가정부를 돕는 거라고 했다.

 

그리고 오늘, 그 방의 주인이 온다.

 

 

 

 

.

 

 

 

 

.

 

 

 

 

.

 

 

 

 

"저기 말이야? 다들 좀 반기는 티라도 내지 그래?"

 

"에―, 귀찮아."

 

"모처럼 만나는 거잖아."

 

"…별로, 상관없고."

 

"야구!"

 

"야구가 아니야, 쥬시마츠 형."

 

"애초에 태어나자마자 떨어졌던 거잖아? 이제 와서 형제라고 해봤자, 남이랑 다를 게 없다고오―."

 

"그걸 지금 얘기한다고?"

 

"그러는 쵸로마츠 형도 흥미없다는 눈을 하고 있었으면서―."

 

"그건, 어색하니까!"

 

 

오소마츠가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그 주머니에 들은 것이 뭔지 알아서 이치마츠는 오소마츠의 손을 붙잡았다.

 

 

"여기 집이야, 오소마츠 형. 학교가 아니니까. 마츠요한테 걸리면 담배가 두동강나듯 형도 두동강날 거야."

 

"히익."

 

"아니아니? 학교에서도 담배는 피면 안 되니까! 랄까 이 새끼, 그걸 가쿠란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거냐! 숨길 마음따윈 없네!"

 

"쵸로마츠 형―아는 담배라는 거 안 한다는 듯이 말하네!"

 

"맞아! 쵸로쨩도 할 거 다 하잖아! 학생회라면서 건방져!"

 

"이제 안 하잖아! 너희도 안 하게 하려고 학생회 들어간 거다!"

 

"쥬시마츠 형은 저런 거 하면 안돼~ 알지?"

 

"누구 입이 그런 소리를 하냐."

 

"톳티도 가쿠란 안쪽 주머니에 넣어놓고 다니는 거 모를 줄 아는 거야? 우웩! 복숭아 향이 뭐야, 여자력 높네에―."

 

"이건 냄새도 많이 안 나서 티도 잘 안 나거든? 오소마츠 형처럼 무식하게 뻑뻑 펴대고 냄새에 찌드는 것보단 훨씬 효율적이니까!"

 

"담배로 효율 따지지 말아줄래?"

 

"아아―. 아까 그 녀석은 얼굴만 남자답게 생겼지, 우물쭈물 거리는 게 재미없는 녀석일 것 같던데―."

 

 

오소마츠의 말에 형제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조금 전의 그를 떠올렸다.

 

마츠노 카라마츠. 만난 적은 없어도 얼굴과 이름 만으로도 혈연으로 인증되는 그는 형제들보다 눈썹이 조금 굵고 덩치가 조금 작은 것을 제외하면 누가 봐도 마츠노 가의 사람이었다.

 

파란 스웨터를 입고 코트를 걸친 남자와 함께 문을 넘어 다가온 카라마츠의 눈썹은 점점 아래로 떨어지나 싶더니, 반갑게 맞이하는 마츠요와 마츠조의 뒤에 선 형제들과 눈을 한 번씩 마주치고는 완전히 휘어져버렸다. 남자의 뒤로 쏙 숨은 카라마츠를 보고 마츠요는 웃으며 형제들의 머리를 꾸욱 손으로 눌렀다. 인사하렴? 내 새끼들아? 표정이 대단하구나? 복화술로 건네오는 목소리에 목숨의 위협을 느낀 형제들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고 인사했다.

 

카라마츠는 제 손을 잡아오며 눈물을 훔치는 마츠요와 마츠조를 보고서 허둥지둥 당황하며 되려 그들을 향해 괜찮다고 웃어보였다. 그 웃음은 쥬시마츠의 하이텐션 미소와도 달랐고, 토도마츠의 목적있는 미소와도 달랐다. 때묻지 않고 순수한, 오로지 남을 위한 상냥한 미소.

 

바보, 호구네―. 오소마츠가 땀을 뻘뻘 흘리며 마츠요와 마츠조를 달래려 애쓰는 그를 보고 처음 생각해낸 말이었다. 그럴게, 어쨌든 평생을 보고 살지 않다가 대뜸 마주하게 된 엄마와 아빠에게, 울지 말아주세요! 그렇게 말하는 너도 결국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한 거잖아? 스스로도 버거운 주제에 남부터 챙기려드는 그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 선하기보다는 미련해보였다.

 

카라마츠와 그와 함께 온 남자에게 집을 안내하겠다며 마츠요와 마츠조는 앞장섰다. 형제들에게도 따라오라는 무언의 압박이 있을까 걱정했지만, 웬일인지 마츠요는 형제들끼리의 시간은 따로 보내라며 그들을 붙잡지 않았다.

 

덕분에 집 안에서 마주치게 되면 괜히 불똥이 튈까 정원에서 담소를 즐기던 형제들은 문득 느껴지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정원을 관리하는 제이슨일 거라고 생각했다.

 

 

"…아, 안녕!"

 

 

입고 있던 파란 스웨터 대신 파란 파카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그 옷을 알고 있었다. 그들도 색깔 별로 가지고 있던 옷이기도 했고, 마츠요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 사이즈씩 크게 사다놓는 옷이기도 했으니까.

 

카라마츠는 일순간 그 곳의 공기가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표정이 바뀌고, 눈빛이 바뀌었다. 분명 웃음소리가 있었고, 퉁명하지만 자연스러운 목소리가 있었는데. 자신이 오자마자 전부 사라졌다. 멈춰버렸다.

 

억지로 지어내는 미소는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어색했다. 움찔거리며 끌려올라가는 입꼬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그, 마, 마미가 너희는 여기에 있을 거라고 알려줘서…! 아까는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나는 마츠노 카라마츠! 마미는 내가 차남…이라고…"

 

"차남?"

 

"아, 아아. 장남에서부터 색깔까지 전부 알려줬다! 그러니까, 오른쪽 끝부터… 보라색이 이치마츠,"

 

"칫."

 

 

혀를 차는 소리에 뻗어나가던 손가락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긴장하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깨질 듯 흔들렸다. 땀이 새어나와 파카를 붙잡고 있던 왼손에 힘이 들어갔다.

 

 

"기분나빠. 누구 마음대로 편하게 이름을 부르는 거야."

 

"…아, 그, 미, 미안하다! 그, 그러니까… 이치마츠 군…"

 

"마츠노. 마츠노 군이라고 불러."

 

"…에?"

 

 

정적이 흘렀다. 반쯤 뜬 눈으로 노려보는 눈동자가 흉흉해서 카라마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뭐하는 거야, 잇쨩~! 여기 있는 모두가 마츠노 군이라구? 그렇게 부르면 누가 누군지 알 수가 없잖아?"

 

"누가 누군지 알면 뭐해. 부를 일도 없을 텐데."

 

"하긴 그렇네! 우린 다섯이 하나잖아? 내가 너, 네가 나. 똑같아."

 

"너, 라니 톳티! 형아, 붙여줘야지!"

 

"동갑이잖아, 장남 새끼."

 

"뭐어―, 그런 의미에서 말이지?"

 

 

씨익 웃으며 오소마츠가 벽에서 등을 떼고 섰다.

 

 

"우리에게 차남은 여기, 마츠노 쵸로마츠 군 뿐이라서."

 

 

너의 자리는 없어, 그렇게 말하는 듯한 눈동자를 바라보고 숨이 막혀 카라마츠는 숨 쉴 구멍을 찾는 것처럼 다른 형제들을 바라보았다. 똑같아, 다른 눈도 모두 똑같아. 모두가 한결같이 말했다. 너는 이방인이야, 우리의 형제가 아니야.

 

겁에 질린 눈이 아래로 내리깔렸다. 아아―, 뭐야아―, 재미없어. 오소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는 제 형제들을 빙 둘러보았다. 그 중 쵸로마츠를 바라보고 켁, 오소마츠는 질린 표정으로 그를 위아래로 훑었다. 쵸로마츠가 그의 시선에 화답했다. 거봐, 너도 흥미없잖아? 오소마츠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쵸로마츠는 파트너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으로도 알 수 있었다. 쵸로마츠는 그에게 가운데손가락을 조용히 올려주었다. 우씨, 오소마츠가 입근육을 씰룩거렸다.

 

 

"…미안하다."

 

 

귀로 흘러들어오는 목소리에 오소마츠와 쵸로마츠는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소마츠도, 쵸로마츠도, 이치마츠도, 쥬시마츠도, 토도마츠도, 모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제 뺨을 긁적이는 그가 얼굴 위에 띄워놓고 있는 것이 미소라는 것이 실감나지 않았다.

 

 

"갑자기 생긴 형제가 남같기도, 부담스럽기도 하겠지. 섣부르게 다가가려해서 미안하다. 어색할텐데 마음대로 호칭을 정해버려서 미안해! 그, 이렇게 다같이 있을 때는 아무래도 마츠노라는 이름이면 헷갈릴 테니까, 이치마츠 군, 으로 이해해주지 않겠나? 개인적으로 마주칠 때는 확실히 마츠노 군, 으로 부르겠다!"

 

 

뭐야? 이 녀석? 쵸로마츠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다 힐긋 이치마츠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대놓고 드러내는 적의에 숫기없다는 듯 웃으며 되레 건네는 사과에 벙 쪄버린 이치마츠는 이미 아노미 상태였다.

 

아, 확실히, 저 녀석, 이런 천진함에 약했지. 응, 멍청할 정도로 상냥한 녀석이란 건 알겠네. 쵸로마츠는 이어서 열리는 카라마츠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기다렸다.

 

 

"그리고 마미가 이 곳에서 담배피는 녀석은 반으로 접어버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다! 특히 오, 오소마츠! 라는 브라더에게! …근데 오소마츠면… 장남이고… 장남이면 빨간 색…이니까…"

 

 

중얼중얼 관계도를 정리하던 카라마츠는 눈으로 색깔을 확인하다 오소마츠와 눈이 마주치고는 다시 시선을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오소마츠의 눈살이 움찔 떨렸다. 곧 자신을 지긋 바라봐오는 오소마츠에게 쵸로마츠는 고개를 갸웃, 기울여주었다. 자기가 시선도 못 마주칠 정도로 무서워보이는 거냐고 따지고 싶은가보네. 음―, 응, 넌 바보처럼 웃고 있어도 묘하게 날카로우니까 말이지―.

 

 

"…칫, 당신. 진짜 기분나빠."

 

 

한층 더 가라앉은 눈으로, 이치마츠는 카라마츠의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조금 작은 몸은 어깨를 가볍게 치는 것만으로도 휘청였다.

 

 

"그렇네―, 마미라던가 브라더라던가, 조금 안쓰럽네―."

 

 

토도마츠가 그의 어깨를 스쳐지나갔다. 부딪히지도 않았는데 움찔 떨리는 어깨는 약해보였다.

 

 

"아―. 뭐어―야, 마츠요. 역시 무서워, 알고있었던 건가."

 

"모르겠냐? 가쿠란에 담배냄새가 지독하게 묻어있는데. 숨기려는 성의라도 보여라."

 

"향수는 머리 아파서 싫단 말이야―."

 

"저, 저기 오, 오소마츠 군!"

 

"아?"

 

 

이치마츠와 토도마츠를 따라 오소마츠가 들어가려 몸을 움직이자, 쵸로마츠도 그를 따라 몸을 움직였다. 카라마츠의 옆을 지나치던 얼굴이 부름에 뒤를 돌았다.

 

 

"아, 그, 저… 다, 담배는 몸에 좋지 않으니까…"

 

"하? 그쪽이 무슨 상관이세요?"

 

"…그게…"

 

"걱정마셔~ 너같이 재미없는 녀석이랑은 필 맛도 안 나니까~ 가자, 쵸로쨩!"

 

 

조금 붉어진 얼굴로 입을 꼭 다무는 카라마츠를 바라보던 쵸로마츠는 오소마츠가 어깨에 팔을 걸쳐오자 쉽게 고개를 돌려버렸다.

 

카라마츠는 가슴을 채운 뜨거운 김을 분출시키고 싶었다. 답답한 가슴을 뚫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직, 남아있는 형제가 있었다.

 

 

"…저기,"

 

"으응―?"

 

 

노란 소매로 입을 가린 채, 쥬시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며 눈치를 보는 카라마츠는 몇 번을 입을 뻐끔거리고서야 목소리를 냈다.

 

 

"…마츠노 군은, 들어가지 않는 건가?"

 

"마츠노 군? 날 말하는 거야아―?"

 

"으, 응."

 

"흐―음! 저기 있잖아? 나는 다르게 불러줬으면 좋겠어!"

 

"하지만 그건 기분 나쁘다고…"

 

"그래도 나는 나잖아? 오소마츠 형―아들이나 토도마츠와는 다른걸! 구분해줘―!"

 

"아? …그, 그럼 노란 마츠노 군…?"

 

"……."

 

 

부우 볼을 부풀린 쥬시마츠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굳어진 그의 얼굴에 카라마츠는 헙 숨을 들이켰다.

 

카라마츠를 지나치고 몇 걸음 걸어가던 쥬시마츠는 대뜸 휙 몸을 틀었다. 헤벌레 벌어진 입으로 쥬시마츠는 말했다.

 

 

"여기 정원은 말이야, 정말 아름다워!"

 

"…에?"

 

"조금 둘러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그렇게만 말을 남기고 쏙 들어가버린 쥬시마츠의 빈자리를 가만히 바라보던 카라마츠는 그제야 숨을 내뱉었다. 답답하고 갑갑하다, 그걸로는 채 다 형용되지 않는 마음이었다. 카라마츠는 걷어올린 애꿎은 소매만 매만졌다.

 

카라마츠는 발을 뗐다. 쥬시마츠의 말처럼 정원을 조금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색색의 꽃들이 여기저기에서 존재감을 빛냈다. 그것들을 감싸고있는 녹빛의 풀들은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카라마츠는 지금 보고 있는 꽃들은 꽃이고 풀은 풀이라는 것밖에 알지 못했지만, 어쨌든 이 곳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건 동의했다. 그리고 태풍처럼 그를 휘몰아치고 지나갔던 형제들과의 만남을 상기했다.

 

카라마츠는 18년을 살면서, 단 한 번도 형제나 다른 가족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아주 어렸을 적에는 엄마와 아빠의 부재에 대해 호기심을 가진 적도 있었지만, 낙천적인 카라마츠는 곧 그 호기심을 금방 지워버릴 수 있었다. 그럴게, 좋아하는 할머니가 있고 좋아하는 선생님이 있고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었으니까.

 

그 곳의 모두는 상냥한 카라마츠를 좋아했고, 카라마츠 역시 그 곳의 친절한 모두를 좋아했다. 그래서 더, 지금의 분위기에 충격적이리만치 적응할 수 없었다. 적대적인 악감은 낯설었고, 그는 그것에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몰랐다.

 

카라마츠는 고개를 들었다. 그가 살던 곳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커다란 집이었다. 아니, 애초에 집 안에 정원이 있다는 것부터가 놀랍지만. 세상에 호기심이 많은 에이타로 녀석이 듣게 되면 깜짝 놀랄 이야기군. 카라마츠는 떠나온 곳에 남아있을 제 귀여운 어린 친구를 떠올리며 무심코 웃었다.

 

그와 함께 온 케이토는 카라마츠가 지내던 마을의 의사였다. 할머니와 친밀한 관계라던 그는 할머니와 카라마츠를 소중히 여겨주었다. 몸이 약한 카라마츠를 지금껏 봐준 사람도 할머니와 케이토였다. 아마 지금은 마츠요와 마츠조에게 카라마츠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해 저 집 어딘가에 있겠지.

 

…조금, 돌아가고 싶으려나. 모두가 친절하고, 작지만 평화로웠던 그 곳으로.

 

 

"앗!"

 

 

소매를 걷어올리고 걷다 장미 가시에 슥 베여버렸다. 걷어올린 소매 아래 하얀 팔에 빨간 선이 생기더니 이윽고 송골송골 피가 맺혔다. 으악, 케이토에게 혼나겠군! 카라마츠는 자연스럽게 케이토가 있을 집 어딘가를 올려다보았다.

 

…돌아가겠지? 당신은, 이 낯선 곳에, 나를 두고, 혼자, 돌아가겠지.

 

시야가 뿌얘졌다. 카라마츠는 한 팔을 들어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남자가 우는 건 쿨하지 않다제―! 하지만 울지 말자고 다짐할수록 눈물은 찔끔찔끔 더 새어나왔다.

 

카라마츠는 유일한 혈육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을 잃었다. 그건 적어도 한 달 전의 일이었지만, 그는 몸이 약해 할머니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으로 쓰러져버려 장례식이 끝나고서야 일어났던 일을 가슴에 품고 있었다. 그건 그에게 있어 인생에서 1순위로 뽑히는 죄였고, 미련이었다.

 

또다른 가족이 있었다니, 그런 건 들어본 적도 없는걸. 게다가 이 곳의 형제들이라는 사람들은, 날 미워하는걸.

 

난 이 곳이 무서운걸. 당신마저 가버린다면 난, 난…

 

 

"…뭐하는, …당신…?"

 

 

성큼성큼 다가와 불쑥 쳐들어온 얼굴에 씌인 가면보다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커다란 가위에 더 놀라버린 카라마츠는 히끅! 눈물도 멈추고 젖은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마츠노 도련님들이 아니야…?"

 

"아, 아아… 이 곳의 마츠노는 아니지만, 나도 마츠노이긴 하다만…."

 

"…일단 이거 치료부터."

 

 

남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카라마츠의 팔을 가슴께까지 치켜들고 그를 데리고 성큼성큼 집 안으로 향했다. 1층의 제일 끝, 정원과 연결되는 뒷문의 바로 옆에 자리한 곳에는 여러가지가 있었다. 책이 꽂혀있는 책장, 테이블과 의자, 커피포트와 여러 종류의 티백.

 

카라마츠를 의자에 앉혀놓고 서랍을 뒤적거리던 남자의 손이 끄집어낸 건 응급상자여서, 카라마츠는 이 곳이 뭐하는 곳인지 궁금했다.

 

남자는 카라마츠의 건너편으로 다른 의자를 끌고 와 앉았다.

 

 

"조금 따가울 겁니다."

 

 

깊은 상처는 아니었지만 부위가 길었다. 축축한 솜이 상처에 닿아 스며드는데도 카라마츠는 신음 하나,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주변만 두리번거렸다. 남자는 그런 카라마츠를 가면 너머로 힐긋 바라보고 치료를 계속했다.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을 때까지도 카라마츠는 쉴 새 없이 고개를 움직였다.

 

 

"…당신, 혹시 카라마츠?"

 

"오? 나를 아는 건가요?"

 

"…별로 아프지 않습니까? 이거, 꽤 따가울텐데."

 

"아아. 괜찮아요! 이런 아픔같은 거야 많이 겪어봤고. 그나저나 여긴 뭐하는 곳이죠? 당신의 방인가요? 아, 도와줘서 고맙습니다!"

 

 

남자는 카라마츠의 말에 눈썹을 찌푸렸지만, 가면 안의 표정같은 게 궁금한 게 많은 카라마츠에게 보일 리 없었다.

 

 

"별로…. 정원에서 피를 흘리는 건 십중팔구 넘어지거나 가시 때문일테니까."

 

"아. 그건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름다운 정원에 핏자국같은 게…"

 

"그런 건 신경쓰지 않아도 됩니다. 흙바닥이야 걸으면 걸을수록 변하기 마련이고, 복도의 핏방울은 닦으면 되고."

 

"당신은… 상냥하군요!"

 

"윽!"

 

"그런데 그 가면은 왜 쓰고 있는 거에요?"

 

 

카라마츠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얼굴을 들이밀자 남자는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말, 편하게 해도 되는데."

 

"그, 그래도 되는 건가…?"

 

"이 곳의 도련님이면, 어쨌든 내 주인이니까."

 

"도련님?"

 

"난 이 곳의 가드너, 제이슨입니다. 당신이 3층의 빈 방의 주인, 마츠노 카라마츠. 맞죠?"

 

"아아. 가드너…? 이 집에서 일하는 건가?"

 

 

제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서 일해주는 사람도 있구나…. 에이타로에게 말해줄 거리가 하나 더 생겼다.

 

 

"이 곳은 내 공간이기도 하고, 정원을 가꾸기 위한 도구들을 정리해놓은 곳이기도 합니다."

 

"과연. 그래서 저 책장에 꽂혀있는 것들이 전부 식물에 관련된 책이었군."

 

"…근데, 당신은 왜 거기서 울고 있었던 겁니까."

 

 

호오―, 제이슨의 공간을 두리번두리번 살펴보던 카라마츠는 문득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고보니, 이 사람, 울고 있을 때 나와 마주쳤었지…. 카라마츠는 머리를 굴렸다.

 

 

"아, 아파서! 가시에 긁힌 상처가 너무 아파서 울었다!"

 

"하? 치료할 때도 안 울던 사람이?"

 

"그, 그리고! 떠나온 곳에 있는 친구들도 생각이 나고… 할, 머니도… 생각이 나고…."

 

"친구들? 할머니?"

 

"…아아, 킁. 소중한 친구들이지. 나를 많이 좋아해준 친절한 사람들이다. 할머니도 둘도 없는 내 가족이었지."

 

"가족이었지? 왜 과거형인 겁니까?"

 

"…이제 없다, 할머니는. 한 달 전쯤에, 죽었어."

 

"…미안, 이상한 걸 물어서."

 

"아, 아니다! 할머니의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던 건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지만, 할머니와 함께 했던 모든 순간은 행복했으니까 난 괜찮다!"

 

 

왜 마지막을 함께하지 못했냐 묻고 싶었지만, 제이슨은 물을 수 없었다. 왜 과거형으로 말하냐던 제 질문에, 죽었다 답하던 얼굴이 처연했다. 두 번은 하게 하고싶지 않은 얼굴이었다.

 

 

"제이슨도 내게 말을 편히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아무래도 피고용인과 주인의 관계니까요."

 

"…내가 제이슨을 고용한 게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날 고용한 사람들의 자식이니 마찬가지입니다."

 

"어째서? 내가 직접 고용한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날 고용한 사람들이 당신의 부모니까요."

 

"고용도 세습되는 건가?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나도 자격을 가져야하다니, 이상하군."

 

"당신 성가셔."

 

"에?"

 

 

쯧, 제이슨이 혀를 찼다. 그 소리에 카라마츠는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일을 다시 떠올렸다.

 

머뭇거리던 카라마츠는 제이슨에게 물었다.

 

 

"저… 제이슨은 여기서 얼마나 일했어?"

 

"글쎄요, 꽤 오래 일했는데."

 

"어쨌든 나보다는 마츠노 군들에 대해 잘 알겠지?"

 

"…아무래도."

 

 

마츠노 군들? 제이슨은 자신을 고용한 이 곳의 주인들이 따뜻한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들이 자신 외에 또 고용한 다른 가정부 역시 좋은 사람이었고, 제이슨은 그를 선배, 라고 부를 정도로 따르고 있었다. 그들은 제이슨을 가족이라고 칭해주며 선의를 베풀어주었고, 모르는 사이에 그들의 울타리 안에 스며들어가게 된 제이슨은 마츠노 가의 이야기를 대부분 알게 되었다.

 

몸이 약해 따로 떨어져 살게 된 차남. 18년을 다섯으로 살다가 나타난 동생 또는 형이라는 녀석이 낯설 거고, 18년을 혼자 살다가 부딪히게 된 형 또는 동생이라는 녀석들이 어색할 거다.

 

하지만 어쨌든 가족이고, 보진 못했지만 알고는 있었던 존재들일텐데, 제 형제들을 마치 남을 대하는 듯한 호칭으로 부를 정도인가? 숨겨진 출생의 비밀이나, 숨겨진 가족이 없는 순수외동 제이슨으로서는 조금 이해할 수 없었다.

 

 

"그, 그럼… 혹시 마츠노 군들에 대해 나에게 얘기해줄 수 있어?"

 

"…아?"

 

"아, 아니, 곤란하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 그, 그저… 조금이라도 가까워지고 싶으니까…."

 

"…그 망할 쌍둥이들이 당신을 환영해주지 않나보지?"

 

"아?! 아,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진짜?"

 

"…어, 어색할 거고… 낯설 거고… 난 이해해, 이해할 수 있어."

 

"…헤."

 

 

제이슨은 상상했다. 본성은 좋은 녀석들인 건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치겠다지만, 그들 다섯만의 유대로 똘똘 뭉친 그 세상의 쌍둥이들이 낯선 형제를 얼마나 타인 못지 않게 대했을지. 더군다나 그가 겪은 마츠노 카라마츠, 라는 녀석은 그들과 분명 달랐다. 장난스럽지도, 딱딱하지도, 날카롭지도, 바보같지도, 영악하지도 않았다.

 

별것도 아닌 일에 미안해할 정도로 여리고, 자신이 받은 상처를 함부로 이해할 정도로 상냥하다. 저도 모르게 툭툭 내뱉는 말에서 언뜻 보이는 아픔들이 툭툭 흘러넘칠 정도로 텅 비었다.

 

그래서 울고 있었군. 여리고, 상냥하고, 텅 비어서.

 

 

"그런 녀석들과 왜 가까워지려고 합니까?"

 

"가족이잖아? 형제들이니까, 모르고 있던 18년의 세월을 앞으로라도 채워넣고 싶다."

 

"…하? 모르고 있었다고?"

 

"아아, 나는 할머니가 내 유일한 혈육인 줄 알았어. 엄마와 아빠라던가, 형제라던가, 그런 얘기는 할머니가 죽고나서 유언장을 보고 알았다."

 

"말이 됩니까…?"

 

"물론 궁금한 적도 있었지만…. 할머니가 먼저 이야기해주지도 않았고, 나에겐 엄마와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사랑하는 할머니가 있고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형제같은 친구들과 케이토가 있었으니까 괜찮았다."

 

"케이토?"

 

"아, 나와 함께 온 남자가 있다. 린도 케이토라고, 나와 할머니가 살던 마을의 의사야. 나를 많이 돌봐주고 구해줬지. 또다른 가족이다!"

 

 

해실 웃는 얼굴에 제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그가 마츠노 가에서 일하면서 그들과 충분히 가까워졌다고는 하나, 마츠노 카라마츠는 마츠노 가의 사람이면서도 새로 온 사람이었다. 그가 모르는 부분은 많은 게 당연했다. 그러므로 그 부분에서 제이슨이 느끼는 감정들 또한, 당연했다.

 

그럼에도 제이슨은 조금 궁금했다.

 

많은 아픔을 겪어서 익숙하다. 유일하다고 생각했던 가족의 죽음은 함께 하지도 못했다. 가족의 존재는 알지도 못했고, 또다른 가족이라는 의사는 돌봐주고 구해줬다.

 

카라마츠의 과거를 듣는 내내, 가면 속의 얼굴이 간지러웠다.

 

 

"아. 슬슬 나가봐야겠군. 케이토가 날 찾을지도 모른다. 제이슨도 나갈 건가?"

 

"나도 정원을 확인하러 가야해서."

 

 

카라마츠가 자리에서 일어서 의자를 정리하자, 제이슨도 자리에서 일어서 응급상자를 제자리에 가져다놓으며 말했다.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카라마츠가 제이슨과 함께 문을 열고 나올 때, 타이밍 좋게 2층에서 내려오던 케이토와 마주하고 카라마츠는 팔을 뒤로 감췄다. 걷어올렸던 소매를 끌어내리는 모습을 보고 제이슨이 케이토를 흘깃 바라보았다.

 

 

"카라마츠."

 

"어머? 제이슨 군이 카라마츠와 함께 있었어? 형제들과 이야기하러 간 줄 알았는데?"

 

"아, 아아! 이야기를 하고 돌아오던 와중에 정원을 둘러보다가 제이슨을 만났지."

 

"헤에―, 근데 왜 거기서 나와?"

 

 

카라마츠가 둘러대자, 토도마츠가 물었다. 스마트폰으로 톡톡 턱을 건드리는 행동은 그가 심기가 불편하다는 것을 대신 말해주고 있어서 제이슨은 눈을 깜박였다. 이 녀석이 마음에 안 드는 거야? 아님 대신 둘러대준 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그것도 아님, 나와 나타나서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물론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제이슨은 다른 말을 꺼냈다.

 

 

"이 녀석 다쳤어요."

 

"제, 제이슨?!"

 

"뭐? 카라마츠, 너 다쳤어!?"

 

"케, 케이토,"

 

"보여봐. 얼른!"

 

 

뭘 저렇게 호들갑떨어, 오소마츠가 중얼거리자 쵸로마츠가 그의 팔을 툭 건드렸다. 제 앞에 서있던 마츠요가 네모난 굽으로 발가락을 찍어오는 바람에 오소마츠는 소리없이 고통을 감내해야했다.

 

카라마츠가 우물쭈물거리자, 케이토는 그의 소매가 길게 내려와있는 팔을 들어올렸다. 카라마츠가 당황해하고, 제이슨은 그의 옆에서 생각했다. 소매를 내릴 거면 양쪽을 다 내려야지, 한쪽은 올리고 한쪽만 내리면 당연히 의심사지, 바보.

 

소매를 들춰올리고 케이토는 숨을 삼켰다. 붕대로 감싸져 있었지만 마무리도 깔끔하고, 처치는 잘 한 것 같았다.

 

 

"어떻게 한 거야?"

 

"제, 제이슨이 치료해줬다!"

 

"…조잡한 실력으로나마 최대한 한 겁니다."

 

 

케이토가 고개를 돌려 바라보자, 제이슨은 시선을 멀리 던지며 중얼거리듯 말했다. 카라마츠의 붕대 위를 쓰다듬고서 케이토는 제이슨을 바라보며 웃었다.

 

 

"고맙습니다, 카라마츠를 치료해줘서."

 

"…뭐…."

 

"카라마츠, 나 배웅 부탁해도 돼?"

 

"아아! 당연…"

 

 

활기차게 대답하려던 카라마츠는 조심스레 마츠요와 마츠조를 바라보았다. 인자한 미소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그들을 보고 카라마츠가 환하게 웃자, 그 뒤에 서있던 오소마츠가 입을 삐죽였다. 저 녀석, 저렇게 웃는 거 왠지 마음에 안 들어.

 

카라마츠는 케이토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또 뵙겠습니다."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카라마츠를 봐주신 분인 걸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마츠요와 마츠조를 향해 케이토가 꾸벅 고개를 숙이자, 마츠요와 마츠조도 꾸벅 고개를 숙였다.

 

 

"케, 케이토! 얘기하려고 했다. 하지만 제이슨이 치료도 잘 해줬고, 깊은 상처도 아니라서 케이토를 배웅해줄 때 얘기하려고 했다! 정말이야!"

 

"네네―, 알았어요―."

 

"…믿는 말투가 아닌데?"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카라마츠에게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문을 향해 걷는 발걸음은 왼발, 오른발, 정확했다.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보며 그들의 대화를 듣던 마츠요와 마츠조는 서로를 바라보고 웃었다. 마찬가지로 그들의 대화를 듣던 이치마츠는 작게 혀를 차고는 제이슨에게로 다가갔다.

 

툭, 어깨를 건드는 기척에 제이슨은 고개를 돌렸다. 이치마츠가 턱을 까닥거리며 제이슨의 공간을 가리켰다. 제이슨이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그를 앞질러 가는 이치마츠의 뒤로 오소마츠를 시작해서 다른 형제들이 따랐다.

 

천천히 눈을 깜박이던 제이슨은 걸음을 옮겼다.